[데스크시각] 누가 포퓰리즘을 견제하나

권기석 2024. 5. 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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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24차례 민생토론회에서 내놓은 정책들 때문이다.

총선 공약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정책들은 상당수가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러웠다.

올해 전 세계에서 많은 국가가 선거를 치러 포퓰리즘 논란이 곳곳에서 일고 있지만 이런 식의 현금살포 정책은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글로벌 학계에서 명성을 쌓아 말 한마디의 무게가 남다른 경제학자, 정책학자가 있었다면, 그래서 포퓰리즘 현상을 호되게 비판했다면 상황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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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경제부장


여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24차례 민생토론회에서 내놓은 정책들 때문이다. 총선 공약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정책들은 상당수가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러웠다. 우리 부서에서 기사로 다룬 것 중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B·C노선을 연장하고 강원·충청까지 연결되는 2기 GTX인 D·E·F노선을 신설하겠다는 발표가 걱정스러웠다. 재원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고 사업성도 낮아 보여 선거 결과 정부·여당에 힘이 실려 추진됐다면 여러 문제를 낳았을 것이다. 지난 3월 말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에 요구한 ‘가공식품 등의 부가가치세 한시적 인하’도 지금은 거론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대다수 전문가와 관료들마저 회의적이던 이 공약은 여당이 승리했어도 소모적인 논쟁만 낳았을 것이다.

반대로 야당이 승리해 우려스러운 이유도 선거 공약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추진하는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과 쌀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 보전(민주당은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은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민생지원금을 지급하려면 국채를 10조원 이상 발행해야 하고, 양곡관리법이 통과되면 쌀 매입·보관비만 3조원 이상이라고 한다. 정책이 시장에 불러올 부정적 효과도 상당한데 민주당은 이를 고려하기보다 유권자 마음을 얻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

올해 전 세계에서 많은 국가가 선거를 치러 포퓰리즘 논란이 곳곳에서 일고 있지만 이런 식의 현금살포 정책은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포퓰리스트에 대처하는 법: 최고경영자의 생존 가이드’ 기사를 보면 미국 인도 멕시코 등은 자국 산업을 지키고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식, 또는 기업을 압박하는 식으로 포퓰리즘을 구현하고 있다. 소득과 일자리를 요구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유무역의 원칙을 포기하고 기업에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지난 총선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 상관없이 선심성 공약이 쏟아졌다. 과거엔 복지 확대를 이야기할 때 ‘보편 복지냐, 선별 복지냐’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엔 이를 언급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수년 전만 해도 ‘중부담 중복지’ 담론에서 복지국가가 되려면 국민도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이 극에 달한 모습이지만 이를 견제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경제·정책 전문가들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한국의 전문가 집단은 그럴 의지도 권위도 없는 것 같다. 글로벌 학계에서 명성을 쌓아 말 한마디의 무게가 남다른 경제학자, 정책학자가 있었다면, 그래서 포퓰리즘 현상을 호되게 비판했다면 상황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그나마 일부 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거대 야당을 향해 제 의견을 내고 있어 다행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최근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가격안정법 개정안에 대해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물가 안정세를 교란할 수 있는 대규모 내수 부양은 자제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1인당 25만원 민생지원금은 다시 고물가를 불러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출 수 있고 이는 다시 내수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추경에 관한 질문에 “현재는 재정이 좋다고 하더라도 고령화로 인한 복지 비용을 고려하면 근시안적 시각”이라고 했다. 이런 목소리에 힘을 더 실어야 할 때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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