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대학이 탄소중립의 근거지가 돼야 할 때

2024. 5. 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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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용(서울대 교수·화학생물공학부)

미 하버드·MIT 등 화석연료
감축 야심적 계획 세운 뒤
이미 상당한 성과 내놔

도쿄대는 지자체와 산업계
협력 통해 녹색 전환 주축으로

한국 대학은 교육·연구와
탄소중립을 대립 관계로 봐
대학이 안 가본 길 선도해야

대학 기후환경 학생 동아리가 대학 본부에 캠퍼스 RE100(기업이나 기관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만으로 충당하는 캠페인)과 탄소중립을 촉구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 본부의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그럼 교육과 연구를 그만두라는 것이냐?”

그만큼 대학 캠퍼스 탄소중립은 어렵고 교육과 연구와는 대립적인 대칭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2020년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선언 당시 우리 사회 일각의 반응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대학의 탄소중립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8년 환경부 그린캠퍼스 사업을 시작으로 2021년 경북대, 2022년 고려대의 탄소중립 선언이 있었다. 특히 고려대는 2030년까지 40% 온실가스 감축과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가지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도 탄소중립 캠퍼스를 위한 실제적인 이행 계획이나 점검이 이를 따르지 못한다는 게 현재까지의 평이다.

글로벌 유명 대학은 훨씬 앞서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는 2016년에 이미 2006년 대비 30% 감축을 달성했다. 2018년에는 2026년까지 화석연료 중립과 2050년 화석연료 탈피를 선언했다. 미국의 다른 주요 대학인 MIT와 스탠퍼드대,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등도 이와 비슷하거나 뛰어넘는 수준의 탄소중립 캠퍼스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즉 연구와 교육을 포기해야만 대학 탄소중립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세계 QS 순위 50위 안에 드는 대학 가운데 80% 이상이 탄소중립 선언을 한 상황이다. 참고로 2024년 국내 1위를 한 서울대 QS 순위는 46위에 불과하다.

심지어 한국과 비슷하게 제조업 비율이 높고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일본에서 가장 먼저 탄소중립 캠퍼스를 선언한 국립 도쿄대의 GX(녹색 전환) 움직임은 보다 인상적이다. 도쿄대 탄소중립 전환을 일본 사회 탄소중립의 핵심 축으로 설정해 도쿄시, 일본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 사회의 탄소중립 전환을 이끌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캠퍼스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먼저 에너지 사용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사용하는 건물이나 시설의 에너지 특성만 알아도 자연스럽게 10~20% 에너지 절감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주로 전기와 가스를 사용하는 대학 에너지 사용 특성은 건물과 유사하며 건물의 탄소중립 전환은 매우 어렵고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대학의 경우 이공계 연구와 교육시설들이 있다. 대학의 탄소중립은 새로운 친환경 건물의 설계와 운영, 각종 첨단 에너지 센서 기술 개발과 도입, 태양광과 수소 기술 등 혁신적인 에너지 기술 개발과 적용 등 핵심 기술을 도입하고 테스트하고 실증해 캠퍼스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는 지적 실험의 산실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탄소중립 목표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모든 것이 비용으로 보이기 마련이고 대학 탄소중립이 교육과 연구와 병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 탄소중립은 인류를 기후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한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대학의 탄소중립 노력은 혁신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교육체계 확립과 핵심 인력 양성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더 나아가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히 기술적 측면을 넘어 인문사회적 성찰을 포함하는 행동양식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대학은 탄소중립 전환 사회의 통합적 근거지가 돼야 한다.

얼마 전 대학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서울대 캠퍼스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과제 설명회이자 이를 위한 공론화의 장이기도 했다. 서울대는 2007년 이래로 에너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국내 건물 중에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2008년 지속가능 선언 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약속이 무색해지면서 서울대조차 탄소중립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떤 기관이 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있다.

혁신을 추구하는 대학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것만큼 어울리는 일은 없다. 탄소중립은 어려운 일이고 어려운 일일수록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나 조직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윤제용(서울대 교수·화학생물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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