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짐 되느니”… ‘연명의료’를 거부한 사람들 [삶과 죽음 사이①]
“연명의료 받지 않겠다” 선언
가족 경제부담, 무의미한 치료 기피
백씨는 ‘연명의료’ 의사를 묻는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그는 “병원에서 인공호흡기 끼고 눈만 깜빡깜빡 뜬 채로 머무는 비용이 하루 90만원”이라며 “여기에 드는 돈 수천만원을 마련하려고 가족들이 대출받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갈 사람은 가야 가족들이 고통을 덜 받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2년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접수했다.
임종 과정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는 대신 그대로 죽음을 택하겠다는 이들이 200만명을 넘어섰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8년 이후 6년간 200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현장에서 연명의료를 포기하는 이들을 지켜본 의료인들은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고통스럽고 긴 노후’가 아닌 ‘웰 다잉(Well-Dying·존엄사)’에 대한 환자의 열망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2018년 2월 일명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 결정제도)’이 시행되면서 제도화됐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의 생명만 연장할 뿐인 의학적 치료를 유보 혹은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살아날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 고통스럽기만 한 ‘생명 연장용’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절차다.
의향서를 제출하는 이들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8년 3월 첫 시행 이후 3년 5개월 만인 2021년 8월 누적 100만건을 넘어섰고, 이로부터 2년 2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200만건을 넘어섰다.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라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 300만건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 교수는 “방문하시는 분들은 ‘나는 (나중에) 콧줄은 절대 안 달고 싶다’ ‘치매 걸리면 오래 살고 싶지 않다’ 등의 얘기를 하신다”며 “자녀들은 부모가 죽기 전까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를 받자고 하겠지만 그걸 원치 않는 부모들도 많다. 그런 상황이 되면 의사 전달이 잘 안 될 수 있으니 미리 의향서를 쓰겠다는 분들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다만 많은 이들의 희망처럼 의향서를 쓴다고 해서 ‘콧줄’ 등 필수 의료조치를 무조건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존엄사 필요성을 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고령층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의향서 건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조정숙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노인 인구가 증가한 게 (의향서 제출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고, 과거 어르신들과 달리 요즘은 ‘좋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중시하는 문화가 추구되는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의향서를 제출하시는 분들도 많다”며 “여러 중증 질환에 대해 어떤 치료 과정을 거칠지, 회복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얘기를 듣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본인의 의사를 결정하게 된다”고 했다.
사전연명의료 중단 선언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가족이 고통받는 모습을 봐온 이들 사이에서 특히 많이 나온다고 한다. 김씨는 “연명의료 과정에서 의미 없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를 보호자들이 지켜보고 경제적·감정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장면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 세대가 이런 식으로 치료받는 모습을 본 50~60대 환자들이 특히 적극적으로 의향서를 제출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삶과 죽음을 환자 임의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특히 죽음이 임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육체적으로 고통스럽다 해도 자의적으로 치료를 포기하기 어렵다.
유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환자의 의학적 상태와 무관한 시점에도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효력 여부를 판단하려면 담당 의사가 임종이 임박한 순간의 의학적 상태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임종이 임박했다고 느끼지만, 의료진은 ‘실제 사망하기 며칠 전’부터를 임종 임박 상태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연명의료 중단 시점에 대한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이 때문에 ‘왜 한국은 생사 결정도 내 마음대로 못하게 하느냐’며 화를 내시는 내담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천양우·최다희 인턴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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