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리겠다”던 의대생, 여친 ‘헤어지자’ 말에 계획범죄
8일 구속 심사…계획범죄 인정, “속죄하겠다” 밝혀
유족, 피해자에 대한 관심 자제 호소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의대생 최모(25)씨가 8일 구속 기로에 섰다. 최씨는 이날 구속 심사에서 사전에 계획한 범죄라는 점을 인정하며 “유족에게 평생 속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씨의 구속 여부는 이날 오후 늦게 결정될 전망이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자친구의 결별 통보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범행 전 미리 흉기를 구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피해자 유족은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피해자를 불러냈고, 이후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6일 오후 5시쯤 서울 서초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 건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 A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당시 경찰은 “옥상에서 남성이 투신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고 한다. 이후 투신 위험이 있다고 보고 최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그러나 최씨가 ‘약이 든 가방을 두고 왔다’고 말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경찰이 현장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숨진 A씨를 발견하고 최씨를 긴급체포한 것이다. A씨 곁에는 약이 든 가방과 흉기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약은 마약류가 아닌 개인 복용 약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장소는 영화관이 위치한 강남역 인근의 건물로, 최씨와 피해자가 자주 데이트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평소 개방돼 있지만, 별도 통로를 통해야 접근할 수 있어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만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시 최씨는 술을 마시거나 약을 복용한 상태는 아니었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헤어지자’고 말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최씨가 범행 2시간 전 경기 화성의 한 대형마트에서 흉기를 미리 구입한 점, 이후 피해자를 불러낸 점 등도 드러났다.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흉기에 찔린 출혈(자창에 의한 실혈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8일 오후 3시30분부터 서울중앙지법 신영희 영장 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법원으로 향하기 전 서울 서초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온 최씨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썼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취재진이 범행 이유와 계획범죄 여부 등을 질문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다만 “유족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죄송하다”고 짧게 답했다.
이후 법원에 도착한 최씨는 수많은 취재진에 당황한 듯 얼굴을 가리려 두 팔을 올렸다. 팔이 붙잡혀 있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자 고개를 숙이며 모자를 눌러썼다. 그는 이때도 “죄송하다”는 말만 했을 뿐,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최씨는 아직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상태다. 이날 최씨의 영장심사에 출석한 국선변호인은 “피의자가 (법정에서) 유족과 피해자에게 평생 속죄하면서 살겠다고 했다”며 “피의자 역시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심사에서 최씨는 계획범행임을 인정하면서도 “오랫동안 계획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온라인에는 최씨의 학교, 사진, 소셜미디어(SNS) 계정 등이 확산되고 있다. 최씨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고, 서울 명문대 의대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시인하며 자신이 의대생이라는 점을 직접 언급했다고 한다.
최씨가 수능 만점을 받은 뒤 한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도 캡처돼 퍼지고 있다. 당시 그는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갖춘 외과의사가 되고 싶다”며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씨가 다닌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그의 학내 평판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이미 기수에서 열외됐다” “학내 평판이 좋지 못했다” “지난해 실습 때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다녔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문제는 최씨와 함께 피해자의 신상 정보 역시 공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씨의 SNS 등을 토대로 피해자의 사진, SNS 계정 등이 확산됐다. 이에 자신을 피해자의 친언니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동생이 조금이라도 편히 잠들 수 있게 동생의 신상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동생의 계정을 비공개 또는 삭제하려고 했으나 오류가 걸려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나친 억측과 관심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동생이 피의자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는데 (피의자가) 갑자기 ‘죽고 싶다’고 하면서 옥상에서 수차례 뛰어내리려 했다”면서 “동생은 착한 마음에 죽으려는 것을 막다가 이미 예정돼 있던 계획범죄에 휘말려 죽음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저희 가족은 지금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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