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주인공 세운 김세휘 감독 "재밌게 만들 자신 있었다"
[고은 기자]
▲ '그녀가 죽었다' 김세휘 감독 |
ⓒ (주)콘텐츠지오 |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그 끝에는 인간의 모순이 있다. 김세휘 감독은 인간의 자기합리화를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반사회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캐릭터 자체보다 영화를 향한 애정이 컸기에 가능했다. 8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근에서 감독을 만났다.
관객의 웃음으로 확신 얻었다
<그녀가 죽었다>의 주인공 구정태(변요한 분)와 한소라(신혜선 분)는 일상에서 반드시 피해야 하는 인물에 가깝다. 죄의식 없이 관음을 취미로 즐기는 구정태는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을 이용해 고객의 집을 드나들고, 인플루언서 한소라는 돈 되는 관심을 위해서라면 인간, 동물 모두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이다. 김세휘 감독은 주변의 우려에도 자신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끝까지 밀어붙였고 지금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영화를 표현한 수식어 중에 '광기의 파티'라는 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데뷔작이고, 주인공 모두 반사회적인 인물이라 상업적 문법을 벗어난 거 아니냐는 우려들 때문에 믿음이 흔들릴 때도 물론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재밌다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글이 안 써져서 결국 제 방식대로 썼다. 몇 번의 회의 끝에 고집해서 넣은 대사가 있는데 언론 시사회 당시 그 부분에서 모두 웃었을 때 속으로 '됐다'라고 생각했다."
신인 감독으로서 주연 캐스팅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김 감독은 "사실 조금 재수 없을 수 있지만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너무 좋아해 주셨다"며 "변요한 배우와 시나리오 미팅을 하고 돌아온 날에는 너무 행복해서 일기를 2장이나 썼다. 변요한 배우의 오랜 팬이었는데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다"고 전했다.
영화의 반전을 주도해야 하는 신혜선 배우의 악역 연기에도 감독은 믿음이 있었다.
"한소라는 악역이지만 인플루언서이다 보니 본인이 갖고 있는 사랑스러움 자체가 있어야 했다. 그녀가 갖고 있는 본연의 사랑스러움도 있고, 영화 <결백>과 같은 스릴러 장르에서 미세한 입술 떨림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한소라는 스스로를 옳다고 믿는 캐릭터기에 굳이 나쁜 사람이라고 의식하지 않아도 됐는데 그 지점을 연기로 잘 살려주셨다."
▲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
ⓒ (주)콘텐츠지오 |
김세휘 감독은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을 꿈꿨다고 한다. 고등학교 연극부 때 쓴 작품이 청소년 연극제에서 두 번 모두 대상을 받으면서 글재주에 대한 확신을 키워갔다. 그는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실패할 상황까지 대비해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학부 시절 영화과 수업을 놓지 않고 들었다.
"경력도 인맥도 없는 상태에서 연출부 일자리를 찾았고 모은 돈으로 글을 쓰고 돈이 떨어지면 일하는 식이었다"던 그는 2013년에 스크립터 일을 시작해 11년 만에 첫 장편 영화를 찍었다. 감회를 묻자 김세휘 감독은 함께 작업했던 감독을 향해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아무래도 스크립터는 감독님 제일 가까이에서 일한다.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왜 감독님은 직접적으로 얘기를 안 하실까, 좀 더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실까, 왜 이렇게 생각이 많으실까 이런 점들이다. 제가 감독이 되고 나니 알았다(웃음). 어찌나 죄송하던지... 확실히 감독의 책임과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의견 조율과 의견 관철 사이에서 소통하는 일이 가장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특히 엔딩 장면에서 편집 감독과 의견 차이가 있었는데 끝내 "오독의 여지를 없애자"는 김세휘 감독의 의견이 반영됐다. 영화는 엔딩을 통해 인물들의 그릇된 신념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짚는다. 감독은 "인물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없고 장르적인 장치를 둔 것이니 편하게 보러 오셔도 된다"고 전했다.
김세휘 감독은 "앞으로도 재밌는 이야기를 쓰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장르물을 좋아하지만 100번 넘게 본 영화가 정작 <타이타닉>인 데에는 '재미'를 향한 탐닉이 있었다. 차기작으로는 판타지 사극 액션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오는 15일 <그녀가 죽었다> 개봉을 앞둔 김세휘 감독은 "지금은 꿈꾸는 시간 같다"고 감회를 전했다.
"성적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를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영화를 위해 열심히 일해줬던 배우들, 스태프들, 제가 힘을 모아가는 감사한 시간이다. 즐기려고 하지만 슬픈 면도 있다. 너무 예쁜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고 있었는데 주인이 나타난 심정이다. 결국 제 손을 떠날 테니 말이다. 섭섭하지만 행복하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거짓말 일삼은 인플루언서의 죽음, 이 영화가 준 교훈
- 사람 못 죽이는 흡혈귀, 자살자 모임에 참석한 까닭
- '골때녀' 심으뜸 해트트릭... 스밍파, 이제는 어엿한 '우승 후보'
- 바야흐로 속편의 시대, '마의 4편' 법칙 깬 '혹성탈출'
- 천만 목전, '범죄도시4' 흥행이 우리 사회에 던진 일침
- '선재 업고 튀어' 서혜원의 끈기 "발송 제한 걸릴 때까지 지원"
- 홍상수 감독 영화가 독립영화계에 던지는 시사점
- 44년 전 아카데미 휩쓴 '부성애'... 집 나간 아내도 반성했다
- '백상예술대상' 나영석, 이젠 어엿한 예능인... 유재석-기안84 제친 '깜짝 수상'
- [단독] 한동훈 공격 '70억 여론조사'...실제 지출 내역 따져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