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반도 안 간 엄마,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었네

임병도 2024. 5. 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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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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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인들이 천천히 느리게 건너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저 또한 우리 부모님은 결코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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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치듯 통화하는 노인들의 숨은 사연... 노화는 죄가 아닙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임병도 기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기자의 부모님
ⓒ 임병도
  
최근 본가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봤습니다. 보행자 신호등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지만, 어머니는 횡단보도의 반에도 미처 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인들이 천천히 느리게 건너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노인들은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뀔 때까지도 횡단보도를 건너가지 않습니다. 속으로 "빨리 좀 가시지"라며 짜증을 냅니다.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왜 노인들이 횡단보도를 빨리 건너지 못하는 줄 깨달았습니다. 무릎이 안 좋아 걷기가 불편한 어머니는 빨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님께 전화를 하면 종종 TV 소리가 너무 커서 통화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아들인 저는 매번 그러니 제발 TV소리 좀 줄이라고 화를 냅니다.

언젠가는 본가에 갔을 때 TV리모컨의 볼륨을 아예 작게 줄여놨습니다. 얼마 뒤에 전화를 했더니 배경으로 들리는 TV 소리는 여전히 컸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소리가 작으면 잘 안 들린답니다. 

더구나 아버지께 전화를 하면 잘 받지 않습니다. 거의 두 번의 한 번 꼴이길래, 언젠가는 대체 왜 전화를 안 받으시냐고 짜증을 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전화벨이 계속 울려도 받지 않는, 소위 말하는 '민폐 노인'은 아닐까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보니, 아버지는 전화벨이 울려도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벨소리를 잘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가 귀가 안 들려서인지 그제사 깨달았습니다. 

쉽게 비난했던 행동들... 알고 보니 신체 저하 때문
 
 비난하기 전에 일단 상대방의 사연을 먼저 떠올려보자고 말하고 싶다.
ⓒ unsplash
 
온라인커뮤니티를 둘러보다가, 우리 부모님처럼 '민폐 노인'이라고 지적받을 수 있는 행동들이 알고 보면 사실 다 이유가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생각난 김에 그 비슷한 사례들을 모아 정리해봤습니다. 

○ 지하철 옆자리에 손 짚고 자리를 침범하는 노인
- 허리가 불편해 바로 앉지 못하는 것일 수 있음

○ 무단 횡단하는 노인, 횡단보도 중간에 서 있는 노인
- 다리가 아파 시간 안에 건너지 못함, 중간에 신호가 바뀌어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것일 수 있음

○ 큰 목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노인
- 귀가 안 들려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음 

○ 벨이 울리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 노인
- 벨소리를 잘 못 듣거나, 자기 핸드폰인지 모르거나 몸이 둔해 진동을 느끼지 못해서 일 수 있음

○ 공중화장실에서 문 열고 볼일 보는 노인
- 문 닫고 화장실에서 쓰러지면 발견이 늦어져 위험할 수 있다고 의사가 문 잠그지 말라고 했을 가능성  

○ 집에서 화장실 문 열고 볼 일 보는 노인
- 황혼 육아 때문에 아이들 보느라 문 열고 일 보는 게 습관된 경우일 수 있음 

물론 다 여기에 속하는 것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그저 쉽게 비난하기 전에 일단 상대방의 사연을 먼저 떠올려보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노인들이 빨리 걷고 싶어도, 작게 말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이유는 나이가 들며 떨어지는 신체 능력 저하가 원인이지 주변에 의도적으로 폐를 끼치려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저 또한 우리 부모님은 결코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든이 넘으시면서 부쩍 잘 듣지 못하고 빨리 걷지 못하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 "빨리빨리 걸어", "전화 통화하면서 왜 이리 목소리가 커",  "음악 크게 들으면 귀 나빠진다"고 잔소리하던 부모님, 그 정정하시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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