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문재인 그리고 김영한, 조대환
다들 알다시피 앞서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가 16개월 만에 되살린 건 DJ(김대중)였다. 당시엔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12년 후 발간한 자서전엔 생각을 담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신설했다. 여론 수렴을 강화하란 재야 및 시민단체의 건의를 수용했다. 민정수석에 김성재 한신대 교수를 임명했다. 김 수석에게 당부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상의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딱 다섯 문장이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짧은 설명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막강한 민정수석이란 자리와 대비된다. DJ는 부인이 거명된 옷 로비 의혹 사건 등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다잡고 싶어 했다. 처음엔 학자를 기용했지만 이내 검찰 출신으로 바꾸었다. 업무 범위도 민정(民情·백성들의 사정과 형편)에다 사정(司正)을 더했다.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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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정수석의 공간, 이전보다 줄어
쓴소리 해도 신뢰 거두지 말아야
대통령 의지 관철 통로로는 한계
」
어떤 자리이기에 싶을 것이다.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모든 권력기관 위에 있다.” 한 민정수석 출신의 말이다. 그래선지 MB(이명박) 정부 시절 여권 중진은 신임 민정수석(권재진)에게 이런 조언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통령 말만 들어선 안 된다. 문재인이 사람 좋다 어쩐다 하지만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불행한 말로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
김성재 이래 7일 임명된 김주현까지 민정수석은 26명에 불과하다. 배타적 세계다. 이들 중 3명 정도만 직·간접적으로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가려져 있기도 하다.
우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그는 자서전(『운명』)에서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나 검찰·국가정보원·국세청·감사원 개혁은 물론이고 전시작전통제권 회수와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방폐장 건설, 노동문제까지도 주도했다고 썼다. 대선자금 수사나 측근 비리(나라종금) 사건을 관리했고, 한·미·대북 관계 등 외교안보 문제도 중재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 인사권을 언급할 때도 ‘우리’라고 했다. “우리는 첫 국방장관으로 준비된 카드가 없었다”고 말이다. 실로 ‘왕수석’이었다.
반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두 수석의 기록은 처연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김영한의 업무일지다.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120쪽 분량인데, ‘영(領, 박 전 대통령)’과 ‘장(長,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의 지시에 어떻게 짓눌렸는지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7월엔가 이렇게 적혀 있다. ‘領·죽음에 대하여 관대한 전통. 동정론/ 음모론. 사기·조작론/ 지연책임론/ 오로지 fact, 신뢰성을 얻는 것이 중요/ 수사 方向(방향) comment (검찰)-후속 조치/ (중략)/ 성범죄자 身上情報(신상정보) 확인-잘한 일. 弘報(홍보)되도록/ X 휴가철 犯罪(범죄) 유관부처 협조-대처’.
마지막 수석인 조대환은 “(출근) 1주일 만에 혈압약을 다시 복용했다”고 할 만큼 격무였지만, 정작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건에 대해선 사전협의조차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남듬길』). 스스로 ‘앉은뱅이 용틀임’이라고 했다.
셋을 가른 건, 결국 대통령과의 관계였다. 대통령이 어디까지 용인하느냐였다. 대통령이 신임을 거두면 아무리 내로라하던 인사(최재경·신현수)도 몇 달 못 가곤 했다. 분명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민정수석에 앉혀야 하지만 민정수석에 앉혔다면 어떻든 계속 신뢰해야 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게 직(職)의 본질이어서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정수석의 관점에서 보면 썩 좋은 보스는 아니다.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 민정수석의 공간을 확 줄이는 바람에 훨씬 고난도가 됐는데,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 됐다. 윤 대통령은 게다가 불편한 소리를 하면 “내 편 안 든다”고 서운해 한다고 소문나 있다. 과거와 같이 ‘활약’을 하기에 가혹한 조건이다. 그나마 민심의 통로로는 쓸 만할 테지만, 대통령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으론 턱없이 미흡할 것이다. 그런데도 기대한다? 험로에 들어선 윤 대통령에겐 사치다.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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