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제국’의 꿈...하이브 흔들린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5. 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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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5조·65개 기업…메가 플랫폼 하이브

무한 확장 노리다 내부 갈등에 ‘와르르’

허점 드러낸 지배구조·멀티 레이블 입길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 간 갈등이 악화 일로를 걷는다. 이번 갈등으로 ‘총수’ 방시혁 의장과 함께 ‘멀티 레이블(Label·소속사)’ 시스템이 경영 시험대에 섰다는 평가다. 사진은 민희진 대표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 간 갈등이 악화 일로를 걷는 가운데, 이번 갈등으로 ‘총수’ 방시혁 의장과 함께 ‘멀티 레이블(Label·소속사)’ 시스템이 경영 시험대에 섰다. 하이브는 지난해 말 연결 기준 자산 5조원을 넘겨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대기업집단 지정을 눈앞에 뒀다. 연결 대상 종속기업만 65개에 달한다. 국내외 레이블을 대거 인수해 수평적 다각화(Horizontal Diversification)로 ‘콘텐츠 플랫폼 제국’을 이루겠다는 게 대기업 총수 지정을 앞둔 방시혁 의장의 구상이다. 엔터 업계와 시장에서는 이번 갈등을 어떻게 봉합하느냐에 따라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와 시장에서는 멀티 레이블 시스템에 내재된 리스크가 이번 갈등을 촉발시킨 주된 요인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창업자이자 하이브 이사회 의장인 방시혁은 최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멀티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이브를 지배구조 최상단에 올려두고 상호 독립적인 여러 레이블을 선단식으로 거느리는 ‘플랫폼 제국’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하이브는 국내외 엔터 시장에서 공격적인 다각화로 멀티 레이블 체제 구축을 노렸다. 국내에선 쏘스뮤직·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등 기존 레이블 지분을 사들이고 어도어 등 신규 레이블을 설립했다. 해외에선 미국과 일본에 각각 2개, 멕시코에 1개 레이블을 뒀다. 하이브는 2021년 완전 자회사 하이브아메리카를 통해 미국 레이블 이타카홀딩스를 1조515억원에 인수했다. 이타카홀딩스는 세계적인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와 저스틴 비버가 소속된 곳이다. 하이브아메리카는 지난해 미국 힙합 레이블 QC뮤직도 약 3000억원에 사들였다. 일본에서는 하이브레이블즈재팬과 네이코(NAECO)를 레이블로 뒀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국내 엔터 산업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돼온 손익 변동성을 낮출 경영 시스템으로 기대를 모았다. 기존 엔터사 수익 모델은 주력 아티스트 활동 기간과 공백기에 따른 손익 변동성이 커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단 지적을 받았다.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엔터 산업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멀티 레이블 체제가 주목받았고 국내에서도 JYP를 시작으로 YG, SM엔터 등도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구축했거나 시도 중에 있다. 다만, 하이브를 제외한 국내 엔터사 멀티 레이블은 이수만(SM), 박진영(JYP), 양현석(YG)이라는 독보적인 아티스트 아래 구축되다 보니 각 독립 레이블의 정체성이 뚜렷이 구분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막강한 자본력을 지렛대 삼아 국내외로 수평적 다각화를 통한 범위의 경제 구현을 노린 것은 국내에서는 하이브가 사실상 처음이다. 자회사 격 독립 레이블이 분권(Decentralization) 기반 자율 경영을 이어가면서 차별화되는 IP를 양산하는 게 멀티 레이블 체제 핵심이다. 다만, 하이브는 수평적 다각화 과정에서 ‘플랫폼 기업’ 확장성을 강조하다 보니 각 레이블을 아우르는 하이브만의 ‘정체성(Identity)’이 흐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음악 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유니버설뮤직과 소니뮤직 등의 정체성은 ‘음악’으로 집중돼 있다. 하이브는 결이 다르다. 2020년 상장 당시 하이브는 엔터 기업이 아닌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히며 “영역에 관계없이 산업을 혁신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음악뿐 아니라 게임, 인공지능(AI),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확장해 지식재산권 보유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이브 사내이사진에 넥슨, 엔씨, 크래프톤 등 게임·IT 업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것은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2020년 하이브에 합류한 박지원 최고경영자(CEO)는 넥슨코리아 대표 출신이다.

하이브-어도어 양측이 첨예한 공방을 빚는 주주간계약(SHA)에는 멀티 레이블 체제 구현의 난도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시각이다. 창의적인 IP를 생산해야 하는 엔터 산업 특성상 자회사 격 레이블에 일정 수준 독립성을 주고 자율 경영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서로 중복되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IP를 생산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어도어 이사회에 하이브 측 사내이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이브 측은 주주간계약으로 어도어 수장 민희진 대표에 대한 직간접적 통제력을 확보함으로써 극단적 분권에 따른 부작용을 제어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상호 반목으로 치달았다. 하이브와 민희진 대표 측은 지난해 3월 체결한 주주간계약과 풋옵션 배수·행사 비율 등을 두고 극한 대립을 빚는다. 결국 하이브 입장에선 멀티 레이블 자율 경영의 적정 범위를 주주간계약으로 통제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는 게 뼈아픈 대목이다.

갈등의 핵심은 ‘경쟁 업종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경업금지 조항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계약에 따르면 민 대표는 어도어 보유 지분 18% 가운데 13%는 향후 하이브에 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가 있다. 나머지 5%는 하이브 동의 없이 하이브 혹은 외부에 매각할 수 없도록 했다. 문제는 민 대표가 어도어 주식을 1주라도 보유하고 있거나 주식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어도어 대표이사 혹은 사내이사로 재직 중이면 경업금지를 지켜야 한다는 데 있다. 경업금지 자체는 일반적이지만 주식을 1주라도 갖고 있을 경우까지 경업금지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다수다. 민 대표 입장에선 풋옵션이 설정돼 있지 않은 잔여 지분 5%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할 수 있다. 잔여 지분 5%는 하이브 동의 없이 처분이 불가능한 데다 경영권 지분이 아닌 소수 지분을 사줄 투자자를 찾기도 매우 힘들다.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민 대표 입장에서는 주주간계약이 족쇄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하이브 시각에선 다를 수 있다”며 “지금은 뉴진스가 대박을 쳤지만 자본금을 댄 하이브 입장에선 뉴진스 실패라는 잠재적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하므로, 주주간계약에는 일정 수준 비대칭적 관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VC 업계 관계자는 “오징어 게임이 대박을 쳐도 제작사 몫 수익이 생각보다 적은 것은 넷플릭스가 잠재적 실패까지 감수하고 투자를 단행하기 때문”이라며 “뉴진스가 실패했다면 민 대표는 지분 정리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하이브는 그만큼 손실로 인식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리하면, 독창적인 IP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려면 분권형 지배구조로 일정 수준 자율 경영을 보장해주는 게 필수지만, 어도어는 극단적 분권 경영의 부작용이 드러난 사례로 지적된다. 어도어 이사회에 하이브 측 인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게 단적인 예다. 적정 수준의 집권(Centralization) 기능 접목 없이는 분권 경영의 폐단을 사전에 제어하는 데 실패하고 종국에는 조직 전체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보여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안도영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팬덤과 대중이 민 대표 영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그의 사임 가능성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며 “민 대표 영향력이 높게 평가받았던 만큼 단기 주가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8호 (2024.05.08~2024.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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