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용배 (5) 고향 폐가에서 돈 한 푼 없이 고달팠던 방위병 생활

신상목 2024. 5. 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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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구로 와 동성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데 방위소집이 됐다.

훈련 중 고향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할 사람은 미리 고향 주소를 적어내라는 광고가 있었지만 나는 미리 부탁해놓았으므로 적어내지 않았다.

옆집에서 낫을 빌려다 풀을 다 베고 방 한 칸을 청소하고 거기서 자취하면서 18개월간 방위병 근무를 했다.

석유곤로에 냄비 하나와 숟가락으로 보리쌀로 밥을 짓고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방위병 근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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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 근무하면서 돈 벌어볼 생각으로
업소 단골인 한 군인에게 근무지 부탁
일 틀어져 군기 센 전투방위부대 배치
1980년 경북 의성군 춘산면 방위병 시절 빈집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던 폐가에서 자취하던 때의 박용배 목사.


다시 대구로 와 동성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데 방위소집이 됐다. 단골손님이던 육군 대위에게 3주간 훈련 후 동사무소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냐고 했더니 가능하다며 관계자들 접대비로 30만원을 달라고 했다. 나는 돈을 전달하고 훈련소에서 3주간 교육을 마쳤다. 훈련 중 고향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할 사람은 미리 고향 주소를 적어내라는 광고가 있었지만 나는 미리 부탁해놓았으므로 적어내지 않았다. 대구에 있으면서 낮에는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업소에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훈련받을 때 조교 말로는 31경비대대와 32경비대대가 사단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거기 배치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거기는 전투 방위부대라 현역병보다 훨씬 고돼서 자살하는 병사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돈을 써서 부탁해놓고 왔으니 대구 중구의 어느 동사무소 중대로 배치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동사무소가 아닌 31경비대대로 배치됐다. 복무하는 첫날부터 6시에 퇴근하지 않고 밤 10시까지 기합을 받으며 바짝 군기를 잡는 고달픈 방위병 생활이 이어졌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어 알아보니 돈을 받았던 그 대위는 제대해서 자취를 감추었고 연락도 닿지 않았다.

친구에게 부탁해 대구 중구에 있던 주소를 퇴거해 고향인 경북 의성군 춘산면 효산리 본적지로 전입신고를 했다. 그리고 31경비대대를 다닌 지 2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고향 면사무소 예비군 중대로 보직 변경됐다. 중대장은 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자신이 살다가 팔리지 않는 빈집에서 자취하며 방위 근무하라고 했다. 그 빈 집에 가보니 그때가 8월 중순이었는데 마당에 풀이 어른 키만큼 자라 있었다. 옆집에서 낫을 빌려다 풀을 다 베고 방 한 칸을 청소하고 거기서 자취하면서 18개월간 방위병 근무를 했다.

대구에서 근무지로 급히 이사 오는 바람에 친구에게 전세방이 나가면 보증금을 받아달라고 했는데 친구는 그 돈을 가지고 사라졌다. 그래서 돈이 한 푼도 없는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생활이 시작됐다. 석유곤로에 냄비 하나와 숟가락으로 보리쌀로 밥을 짓고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방위병 근무를 했다. 내 보직은 전령이었다. 의성읍에 있는 찰파 부대에 매일 보고서를 가지고 가서 전통문을 다시 받아오는 일이었다.

군부대 일이 끝나면 다른 방위병들이 항상 붙잡아 퇴근을 못하게 했고 식당의 온갖 궂은일을 하다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보내주곤 했다. 면 소재지 중대의 박찬석 중대장이 예천의 연대장을 만나 나의 딱한 사정을 얘기해주고 전령에서 무기고 야간 경비병으로 보직 변경을 해줬다. 무기고 경비는 이틀에 한 번씩 밤 근무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낮에는 춘산 지서(파출소)에서 급사로 일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지서에서 근무하니 월급이 나왔다. 그래서 월급을 받으면서 방위병 생활을 했다.

춘산 교회에 출석하면서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았다. 제대하면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 달라고 간구했는데 방위 제대 2개월을 앞둔 어느 날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길이 열렸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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