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부실기업 구조조정, 주저하면 재앙만 키운다

2024. 5. 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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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문제됐던 건설사 PF 사업
대부분 업체 또다시 발목 잡혀
금융계로 부실 전이 땐 일파만파
경쟁력 잃은 기업 단호한 퇴출을

제주지역 골프장이 경영이 어렵다며 당국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코로나 호황일 때에는 가격을 그렇게 올려대더니 상황이 바뀌자 지원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어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골프업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장 4월 위기설 등으로 국민을 불안케 했던 건설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건설회사들은 철근 빼먹기 등 숱한 부실 공사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듯 위기에 처해 있다. 업계가 앞다투어 뛰어들었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이 벼랑 끝에 몰렸기 때문이다. 물론 건설업계가 이렇게 위험에 빠지게 된 데에는 금융의 책임이 작지 않다. 사업의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상황이 어렵다고 그저 도와주기만 해서는 비슷한 위기를 반복시킬 뿐이다. 이번 기회에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과 금융회사는 단호하게 퇴출해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켜세울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건설업계가 위기에 빠졌다

요즘 건설업계가 큰 시름에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건설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에 불가피하게 남의 돈에 의존하게 되는데, 사업이 부진하니 빌린 돈을 갚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미 올해 3월 말까지 파산한 건설회사가 9개에 달하여 작년 같은 기간의 3배에 이르고 스스로 폐업한 업체도 134개나 된다.

건설업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고물가다. 코로나 사태 이후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는데 건설기자재나 인건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건설공사비지수가 코로나 전보다 185%나 올랐다. 큰 건물을 짓는 데 수년이 걸린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건설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계약서보다 훨씬 커졌을 것을 쉽게 알 수 있겠다.

둘째는 경기 부진이다. 비용이 늘어도 분양이 순조롭다면 다행일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니 상가 분양이 어려워지고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한다. 지난 3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가 6만5000채에 달하고, 악성이라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도 8개월 연속 늘어나 1만2000채를 넘어섰다. 더구나 경기 부진을 가속화시키는 고금리 상황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건설업계로서는 부담이다. 차입금이 많은 건설업계의 상환 부담이 커진 것이다. 당장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이자보상배율 1 미만) 취약 기업의 비중이 40%를 넘어섰다. 부도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셋째는 건설업계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경영 행태다. 과거에도 심각한 상황을 일으켰던 PF 사업이 수년 전부터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거의 모든 건설회사가 이 사업에 진출해 있다. PF라는 것이 잘 알려진 대로 자기 돈은 한 푼도 없이 추진하는 것이라 차입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잘되면 대박이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그런데 원래 PF는 해당 사업의 예상 수익을 기초로 대출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우리 은행들은 건설사에 지급보증을 요구하기 때문에 건설회사가 감당해야 할 부채는 훨씬 크다고 봐야 한다. 작년 말 정책 당국이 급하게 파악한 PF 대출 규모가 136조원이었는데, 지급보증과 같이 가려져 있는 부분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그 규모는 엄청날 것이다.

PF 부실, 금융회사로 전이 위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이러한 건설업계의 부실이 금융계로 전이될 가능성이다. 당장 PF 대출의 연체율이 3년 전 0.37%에서 작년 말 2.7%까지 올라갔다. 최근에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특히 브리지론(토지매입 단계에서의 고금리 대출)을 많이 취급한 증권회사, 저축은행은 우려할 정도다.

금융회사의 부실은 건설업계의 부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금융회사가 무너지면 거래하는 모든 기업체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당국은 금융회사가 부실 사업장에 대한 대출채권을 매각하고, 향후 발생할 손실에 대비해 충당금을 더 많이 쌓도록 권고하고 있다. 개별 금융회사로서는 이렇게 손실을 확정짓는 것이 달가울 리 없지만, 현재까지는 대체로 협조하는 분위기다. 어느 정도 손실을 각오하고 더 큰 부작용을 막겠다는 차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개별 금융사가 맞닥뜨리는 상황의 심각성을 반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런 노력으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은 가까스로 모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경제의 전반적인 불안을 나타내는 금융불안지수(Financial Stress Index)가 다행히 위험 수준을 밑돌고 있다.

그렇더라도 시장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PF 대출 규모가 훨씬 크다든지, 대출 연체가 엄청나게 늘어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그 시금석이라 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촉각’

지난주 주거래은행인 산업은행이 발표한 태영건설 기업개선 계획을 보면 대주주 지분은 거의 없애버리는 대신 차입금은 주식으로 전환해 금융회사가 기업 경영을 맡도록 했다. 다만 기업주가 자금을 충원토록 해 후일 대주주 자격을 회복할 발판을 만들어줬다. 물에 빠진 이를 건졌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떠오르지만, 그만큼 신규 자금 충원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이번 조치의 성패는 자금 확보에 달려 있고 그것은 시장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금융회사가 추가 자금 지원을 꺼릴 수 있고 매각 대상 사업장의 매입 희망자가 없을 수도 있다. 이제 공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다만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구조조정의 기준과 강도를 제시하는 정책 당국이 그 역할을 내팽개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리가 떨어지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어영부영 기다려서는 곤란하다. 구조조정을 늦추는 것은 부실 기업에는 축복이 될지 몰라도 건실한 회사에 돌덩이를 매달고 뛰라는 것과 같다. 이래서는 다 같이 죽을 뿐이다. 정책 당국의 현명한 판단과 결연한 의지를 기대해 본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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