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6)

홍석원 2024. 5. 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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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에서 주요 감상 포인트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를 세움, 1610~1, 패널에 유채, 462x341cm(가운데 판넬) 462x150cm(측면 판넬), 벨기에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1610년 안트베르펜의 성 왈부르(St. Walburga) 교단으로부터 첫 제단화 주문을 받았다.

그 지역의 부유한 향신료 상인이며 미술품 수집가인 헤에스트(Cornelis van des Geest)는 그에게 작품 의뢰가 가도록 주선했다. 이 세 폭 제단화는 십자가를 세우는 장면을 그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는 펼치면 전체 폭이 6.4m이고, 높이는 4.6m로 겐트 제단화보다 더 크다.​

‘십자가를 세움’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군인들이 밧줄로 땅에서 끌어올려 세우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예정된 운명을 담담히 맞는 그리스도가 마치 연극 무대 위의 배우처럼 대각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런 강렬한 빛의 효과에서, 명암법의 멘토인 카라바조와 틴토레토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육체의 다이내믹함을 바로크식의 곡선과 명암법으로 루벤스만큼 잘 표현한 화가는 없었다. 

루벤스를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바로크(Baroque)’란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전반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가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미술 양식이다. 본래 포르투갈어의 뜻은 ‘비뚤어진 모양의 기묘한 진주’라는 뜻이다.

바로크 미술은 로마에서 화가 카라바조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한 사조이다. 

그는 에너지를 포착한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과장되고 왜곡되게 표현하여 본래의 가치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바로크 미술은 ‘그로테스크’하거나 ‘불규칙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정적이고 고요한 르네상스 그림의 등장인물을 꺼내다 격렬한 운동을 시킨 게 바로 바로크 미술’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두 미술 사조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말해준다. 

대부분 세 폭의 제단화들은 각각 다른 내용이 그려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패널들은 같은 주제를 다뤘다. 왼쪽 패널에는 ‘구경꾼과 애도하는 이들’을 그렸고, 오른쪽 패널은 ‘로마 군인들과 예수 옆에서 처형당하는 두 명의 도둑’을 그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루벤스의 능력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한다.

“그는 정신적이고 격렬한 육체적 동작을 한 공간 안에 편안한 대칭 배열로 덩어리로 표현한다. 그의 그림은 주로 빛과 생명이 중심에서 퍼진다. 훌륭한 색의 조화, 원근의 거리, 빛과 그늘의 조성이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말해왔던 능력과 조화가 무르익으면 비로소 그때서야 그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십자가를 세움’ 가운데 패널.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을 아래와 같이 하나하나 짚어 본다. 

1)십자가 위에 쓴 글

루벤스는 고전교육을 받으며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다. 아마도 B.C 500~A.D 600년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용하던 국제어인 ‘아람어’도 배웠을 것이다.

아람어는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 유대인들이 쓰던 모어(Mother Tongue)로 구약 일부는 그 언어로 쓰였다.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에서 꽤 중요하게 여겨지는 언어다. 루벤스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대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를 위 세 언어로 써넣었다. 

루벤스는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의 지침을 충실히 따르며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재현하고 역사적 정확성을 준수하고 있었다. 이는 종교개혁에 대비해 소집된 반종교개혁(Conunter-Reformation)의 조치로, 빠르게 개신교화 되는 유럽을 다시 가톨릭화 하려는 시도로 내려진 지침이었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지침은 제단화 등에서 무엇보다도 화려하고 장중한 바로크 미술로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톨릭의 우위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2) 그리스도

고뇌하는 그리스도는 십지가에 매달려 세워진다. 예수의 얼굴은 가장 밝은 부분이다. 손에 못이 박혔으니 피가 팔 아래로 흘러내리고, 청회색을 띠는 피부는 점차 창백해지고 있다. 핏기 없는 입술이지만 내면의 강인함을 담은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그리스도의 팔 아래에는 갑옷을 입은 한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이지만,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그를 바라보는 유일한 군인이다. 

십자가에서 매달린 채 세워지는 모습은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없던 구도였다. 이는 반종교개혁에 대한 승리를 상징한다. 십자가에 올려지는 고통받는 그리스도도 영웅적인 모습으로 재현되어야만 했다.

‘십자가를 세움’ 부분.

3) 군인

‘십자가를 세움’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세우기 위해 힘을 쓰는 건장한 헤라클레스 같은 초인적인 병사들의 육체미 향연으로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가장 많이 묻어난다. 루벤스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천지창조’를 로마에서 보았다. 

십자가를 세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고통은 외면한 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화면을 대각선으로 분할하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적인 X자 구도를 적용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화면의 중심이 된다. 십자가를 한쪽 구석에 고정시키는 강렬한 사선구도는 이 사건이 관람자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틴토레토의 영향을 받은 구도이다. 잔뜩 힘을 주며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파란색 옷을 허리에 질끈 두른 남자의 응축된 근육을 볼 수 있다. 맨발과 종아리도 격렬한 운동감이 느껴지는 순간을 잘 포착했다. ​​ 

4) 빨간 옷의 남성

반대편의 흑백 터번을 쓰고 붉은 옷에 수염이 난 이교도는 이집트인 듯하다. 십자가를 세우는 병사들의 피부색은 더 짙게 표현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교자를 강조하였다. 흰 천을 두른 그리스도와 대조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에게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을 더했다.

이는 X자 구도에 삼각형으로 무게중심을 잡아 안정감을 준다. 루벤스는 움직임의 극단적인 강조, 균형, 대조로 순간적인 것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화가이다.

‘십자가를 세움’ 부분.

5) 개

왼편 구석에 털북숭이 개가 보인다. 곱슬거리는 털이 만져보고 싶을 만큼 실감난다. 어느 동물화가보다 뛰어난 루벤스는 털에도 움직임을 담았다.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이라면 루벤스의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묘사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개는 주인에 대한 충직함의 상징이니 오히려 개의 눈빛에 안타까움을 담았다.

왼쪽 패널: 구경꾼과 애도하는 이들

 이제 왼쪽 패널 ‘구경꾼과 애도하는 이들‘을 보자. 

6) 금발 여인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상반신을 드러낸 여인에게 관람자의 눈이 가장 먼저 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강렬한 빨간색 의상, 글래머러스한 몸매, 그리고 상반신 누드이니, 이 세 폭 제단화가 놓인 위치를 감안하면 루벤스가 그렇게 의도적으로 배치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풍만한 여인의 관능적인 표현에 뛰어난 루벤스가 제단화에서 누드를 그리기 위해 영리하게 수유하는 장면으로 설정한 것이 아닐까? 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깜짝 놀라 왼팔을 하늘로 치켜 올리다 아이를 떨어뜨릴 지경이다. 아이는 벌써 위험을 인지했으니, 역시 루벤스는 표정 묘사의 달인이다. 

금발의 출렁임에 바람과 몸의 움직임도 느껴진다. 이 여인을 시작으로 노파와 여인 그리고 사도 요한과 성모까지 지그재그로 시선을 유도한다. 이전의 성화와 달리 이 패널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낙천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십자가를 세움’ 부분.

7) 성모의 낯빛

​다른 화가들은 앉거나 쓰러져 통곡하는 성모로 묘사했다. 그러나 루벤스는 사도 요한과 손을 잡고 서로 위로하며 서 있게 만들었다. 이젠 루벤스는 어떻게 성모의 고통을 표현했는지 찾아보자.

죽음을 앞둔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어머니는 이미 ‘십자가의 내림’에서 죽은 예수의 시신과 같은 납색으로 안이 변했다. 그렇게 성모의 감정을 호소하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노파 뒤에 숨은 소년이 보인다.

​8) 노파와 소년

평생 힘든 일로 굵고 깊은 주름, 성한 이는 거의 보이지 않는 노파는 단축법으로 까맣고 거친 커다란 손을 그렸다. 젊고 탄력 있는 주변 여인들과 피부와 비교해 보자. 루벤스는 신분 차이에 의한 피부와 생기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따를 이가 없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세워지는 현장에서 노파의 팔에 숨어 있는 소년을 어느 화가도 그리지 않았다. 소년은 두렵지만 두 눈을 또렷이 뜨고 역사의 한 장면을 지켜보고 증언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제단화의 주인공은 바로 이 소년이다.

오른쪽 패널: 로마 군인들과 예수 옆에서 처형당하는 두 명의 도둑

10) 말

루벤스는 말의 상체와 다리를 대각선 구도로 전면 배치하여 움직임을 극대화하였다. 말이 오히려 주인공 같다. 도둑 한 명은 병사들에게 포박되고, 단축법으로 또 다른 도둑은 바닥에 누워 있다.

‘단축법’이란 인체를 그림 표면과 경사지게 또는 평면과 직각을 이루도록 배치하여 축소되어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루벤스는 고난과 구원의 성경을 그림으로 구현했으며 인간의 사랑과 증오의 이야기를 말한다.  

십자가의 세움’에는 그가 받은 영감, 상상력, 능력, 의도가 모두 조화롭고도 생생하게 나타난다. 루벤스의 차분하고도 냉정하게 메시지를 선별해 전달하는 화가로서의 능력이 경이롭게 표출된 제단화이다. 

예술은 모든 충동의 표출이며, 예술은 삶과 하나이다. 그리하여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삶에 대한 이해가 따라야 한다. 예술 작품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를 읽어내는 일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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