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서라, 서울시의 멍때리기 대회

2024. 5. 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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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2013년, ‘경복궁 간장 게장’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궁궐 야간 개장’ 소식을 잘못 이해하고 ‘개장(開場)’을 ‘게장’으로 입력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자 문맹(文盲)이 낳은 희극이다. 이런 해프닝이 어디 한 둘인가? ‘감기 다 낳았어요?’ ‘할머니 오래 사시네요(사세요)’ ‘삶과(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죽었는데 복을 빈대. X웃겨 ㅋㅋ’ 영면(永眠)에 든 세종대왕도 웃을 일이다.

이런 국내 버전과 달리 세계를 놀라게 할 웃음거리도 있다. 몇 년 전, 진천의 ‘우산 사건’이 그렇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마당 강모 법무부 차관이 브리핑에 나섰다.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정착 지원이 주제였다. 이날 시간당 10mm 안팎의 꽤 많은 비가 내렸다. 차관의 발언은 10분 이상 걸렸다. 거기 차관의 뒤에는 무릎을 꿇은 채 양손으로 우산을 받쳐 든 직원이 있었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인권 감수성으로 국격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닌가? 네티즌들은 격하게 반응했다. ‘우산 조공,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우산도 혼자 못 드시는가?’ ‘실내를 두고 왜 굳이 밖에서 생쇼를….’

잠시 시선을 바꾸어 1831년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가 메스(Metz)에서 열병식을 하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부가 망토를 건네주려 하자 국왕은 도로 가져가라는 손짓을 한다. 병사들도 망토를 입고 있지 않았다. 홀로 비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프랑스 국민들은 망토를 외면하고 함께 비를 맞은 국왕을 향해 소리쳤다. ‘브라보!’ ‘국왕 만세!’

그런데 또다시 그 부끄러운 일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서울시가 자랑하는 ‘멍때리기 대회’다. 멍은 오래된 우리나라의 전통 힐링 문화였다. 아낙네들은 시집살이 서러움을 부엌이라는 ‘케렌시아(querencia)’에서 ‘불멍’으로 태웠다.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냇가에서 빨래 방망이질로 다스렸다. 흐르는 물에 시름을 떠나보내고 마음의 분노를 헹궈냈다. 물멍이었다. 세탁기가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항우울증 복용이 늘었다. 나무하러 산에 올라 ‘숲멍’으로 영혼의 피톤치드를 들이켰다. 우리 선조들의 정신건강의 비책이었다.

배철현 교수는 ‘멍때리기’는 마음속에 있는 멍을 자신도 모르게 가만히 바라보는 내면 응시라 했다. 인간이 이 멍을 잘 다스리면, 면역력이 생겨 이전보다 건강해진다. 그러나 이 멍을 숨기면 마음의 병이 되어, 건강한 자신을 해치는 괴물이 된다는 거다. 멍은 빈둥거림이다. 비워서 채우는 뇌의 들숨 날숨이다. 지친 몸이 쉼을 누린다. 회복이 찾아든다. 새로운 활력으로 일어선다.

멍때리기는 열정의 상징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의 오후 수면 시에스터(Siesta)와 같다. 여름 낮 40도의 작렬하는 더위를 견디는 것은 끔찍하다. 깨어 있는 동안 뇌에는 피로 유발 물질인 아데노신이 쌓이게 된다. 낮잠은 이 농도를 낮춰 준다. ‘애프터눈 슬럼프’에서 오후를 활기차게 한다. 사라 C. 메드닉의 지적처럼 낮잠을 자면 창조성이 증진되고, 수익도 높아진다. 건강 또한 좋아진다.

그런데 멍때리기를 측정해서 상을 주겠다는 나라가 지구촌에 있다. 대한민국 서울이다. 멍때리기로 멍고수를 뽑는단다. 멍때리기를 심박수로 측정한다. 투표로 등수를 매긴다. 멍석을 깔아준다. 구경꾼을 모은다. 이것은 멍상도 명상도 아니다. 보여 주기다. 등수가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에게 낭패감을 심는다. 왜 이렇듯 경쟁에 피곤한 사람들을 또 경쟁으로 내몰아야 하는가? 더 경악할 일은 ‘멍때리기에 실패하면 퇴장 카드를 받고 진행자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대회 규칙이다. ‘멍’을 ‘멍들게’ 한다. 이런 따위를 축제라고 한다. 지자체마다 이런 싸구려 축제는 널려있다.

한마디로 말해 키치(kitsch)다. ‘천박하며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 등이 마치 훌륭한 진품인 것처럼 스스로를 기만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영한사전을 펼치면 ‘저속한 작품’ 혹은 ‘공예품’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겉으로 봐서는 예술품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싸구려 상품이 바로 키치다.

멍때리기 대회이다 보니 우승 트로피가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난 아연실색했다. 조각가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한 작품 의뢰를 받는다.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190여 명의 조각을 만든다.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이다. 정 중앙에 우뚝 솟은 남자 하나를 조각해 넣었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옥문 앞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없다. 죽음 직전에 비로소 무언가를 깨달아도 너무 늦었다. 죽기 전에 깨달아 돌이켜야 한다는 메시지다. 전도서의 교훈 그대로다.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전 12:7, 새번역)

이런 배경을 알고서 <생각하는 사람>을 멍 모델로 빌려 쓴 것일까? 흰 국화로 뒤덮인 영안실, 쭉 늘어선 플라스틱과 생화가 섞인 3단짜리 조화(弔花), 공동묘지의 조악하기 짝이 없는 조화(造花)와 딱 어울리는 키치다. 이번에는 세종대왕이 아니라 고인(故人)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꽃을 줬으면 그만이지 왜 줬다 빼았다 저 난리를 치는 건지.

앞서 배교수는 멍을 ‘영생의 경험’이라며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를 소환한다. “길가메시는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영원처럼 만드는 기술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멍때리기를 언젠가 서울시가 꺼냈던 영어 슬로건 ‘Seoul, my soul’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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