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진석만의 바둑으로 감동 드릴 것” [쿠키인터뷰]

이영재 2024. 5. 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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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둑 위기 상황에서 등판해 중국 넘고 ‘세계 1위’ 탈환
1995년 중국 녜웨이핑 격파하고 ‘괴동’으로 불렸던 목진석
만 44세인 현재, 다시 승부 세계 일선 복귀해 후배들과 경합
5월2일 쿠키뉴스와 만난 목진석 전 바둑 국가대표 감독. 사진=이영재 기자

태동부터 ‘세계 최강’으로 시작했던 한국바둑이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지날 때, 역대 최장 기간 사령탑을 맡아 라이벌 중국의 만리장성을 끝내 넘어섰던 주인공이 다시 승부 세계로 돌아왔다.

프로 입단 2년차 시절이던 1995년 8월, 만 15세 목진석 1단은 제2회 롯데배 한중대항전에서 당시 중국 최강자였던 거장 녜웨이핑을 쓰러뜨리면서 ‘괴동’으로 불렸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 목진석 9단은 대한민국 바둑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임기를 마치고 만 44세 ‘현역 기사’로 복귀를 신고했다.

목 9단은 2016년 12월1일, 한국 바둑을 이끄는 사령탑으로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소통’과 ‘열정’을 강조하며 첫 발을 내디뎠던 목 전 감독은 많은 부분에서 귀중한 성과를 거뒀다. 먼저, 중국에 네 번 연속 내줬던 ‘바둑 삼국지’ 농심배 우승컵을 가져온 이후 최근 5년간 이 대회에서 4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 기록을 남겼다.

메이저 세계대회인 LG배에서도 최근 5년 동안 한국에 네 번 우승트로피를 안겼고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바둑 국가대표팀에 ‘멘털 코치’를 섭외해 심리적 안정이 중요한 기사들에게 효과적인 코칭을 시작했고, 청소년 국가대표팀을 육성하고 국가대표 리그전 체제를 확립하는 등 의미 있는 일들을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해냈다.

지난 2일, 한국기원이 위치한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 ‘상록수’ 바둑 연구실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목진석 9단은 국가대표 지휘봉을 내려놓고 다시 ‘승부사’로 돌아온 소회를 밝혔다.

2016년 12월1일 바둑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취임한 목진석 9단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는 모습. 쿠키뉴스 자료사진

“30대 중반에 감독을 맡아 40대 거의 중반까지, 약 7년 동안 국가대표팀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달려왔다. 7년이면 긴 시간이지만, 돌아보면 금방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귀중한 경험이었고,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목진석 9단)

목 9단은 고난과 역경,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 아쉬움도 많았던 지난 7년을 이같이 회고했다. 이어,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으로 2018년 3월1일, 6년 전 삼일절에 농심배 우승을 차지했던 날을 꼽았다. 김지석 9단이 중국 최강자 커제 9단을 제압하고 4년 연속 중국에 내준 우승트로피를 되찾아온 순간이었다. 목 9단은 “최근 몇 년 동안 신진서 9단을 필두로 영광스러운 순간이 많았는데, 이때가 가장 중국에 억눌려 있던 시기라 승리가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로 가장 아픈 기억으로는 지난해 6월 아쉽게 정상을 내줬던 란커배 결승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이 승부는 결승전 당사자인 신진서 9단도 현재까지 가장 쓰라린 패배로 거론하는 대결이다.

목 9단은 “감독을 하면서 실패도 많고 아픈 패배도 많았는데, 작년 란커배는 기억에 많이 남는다”면서 “당시 신진서 9단이 결승 상대였던 구쯔하오 9단에 비해 전력이나 기세 등 모든 면에서 앞선 상황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제가 함께 동행했던 승부였는데, 1국을 이기고 2국에서 졌을 때 신 9단이 조금 흔들리는 게 보였다”고 회상한 목 9단은 “결국 3국에서 멘털이 흔들리면서 심리적으로 지는 상황이 나왔다. 신 9단 본인이 누구보다 가장 아픈 패배겠지만 제 입장에서도 잘 케어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이 아픈 패배였다”고 여전히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에 4년 연속 내줬던 우승트로피를 되찾아온 순간(2018년 3월1일)을 목진석 9단(오른쪽)은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으로 꼽았다. 사진=이영재 기자

국가대표 체제 기틀 잡아…다소 부족한 지원은 아쉬운 점

그동안 바둑 팬들에게 국가대표 바둑 선수들의 공부 환경, 훈련 시스템 등이 공개될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바둑계에선 목진석 9단이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지난 7년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게 중론이다.

목 9단은 “바둑 국가대표 선수단은 남자 16명, 여자 8명, 청소년 대표 8명 등 총 32명으로 운영된다”면서 “남자 국가대표는 8명씩 1개조로 나뉘어 1조⋅2조로 승강 리그전을 펼치고, 남⋅여 통합으로 운영하는 청소년 대표 리그전에서 6개월 누적 성적 1위를 차지하면 국가대표 리그전으로 승격한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 리그전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겨 청소년 대표에게 아주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부연한 목 9단은 “이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청소년 대표 선수들의 기량이 부쩍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바둑 국가대표 선수단에 ‘기술위원’ 제도가 도입된 점, 사실상 자율에 가까웠던 세계대회 대국 전날 일종의 ‘루틴’이 생긴 점 등도 목 9단이 지휘봉을 맡은 이후 바뀐 점이다.

상대적으로 기술적인 보완이 더 필요한 청소년 대표, 여자 대표들은 랭킹 상위권 기사들로 지정되는 기술위원과 실전 대국은 물론 연구회 등을 통해 기량을 갈고 닦는다. 청소년⋅여자 대표가 기술위원과 대국에서 승리할 경우 리그전 점수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통해 ‘연습을 실전처럼’ 펼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세계대회 전날에는 추첨식 이후 항상 선수단이 함께 모여 다음날 대국 상대에 대해 ‘공동 연구’하는 문화도 정착시켰다. 

목 9단은 “바둑은 개인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이런 문화가 없었다”면서 “국가대표 선수단에 소속된 선수들끼리 예전에는 서로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한 팀’이라는 마인드로 바뀌었고, 이 점은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진서 9단은 중국 선수와 세계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박정환 9단, 변상일 9단 등과 종종 스파링을 진행했고, 이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5월2일 목진석 9단이 안조영 9단 등 동료 기사들과 함께 개원한 ‘상록수 연구실’에서 기보를 놓아보고 있다. 사진=이영재 기자

다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없지 않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술위원을 섭외하거나 국가대표 선수단 리그전 운영 비용으로 쓰이는 바둑 예산이 올해 대폭 삭감된 점이다. 이는 지난해 12월21일 쿠키뉴스 단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던 사건으로, ‘바둑진흥법’ 제정이 유명무실하게도 2023년도에 21억6200만원의 예산을 받았던 대한바둑협회가 올해는 단 한 푼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전액 삭감’이라는 이례적인 처분을 받게된 데 따른 것이다.

목 9단 후임으로 바둑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홍민표 감독이 이로 인해 취임 이후 여기 저기 발로 뛰면서 후원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삭감된 바둑 예산이 예년 수준으로 복원될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적어도 1년 이상 선수단 운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7년 내내 한국기원 4층 국가대표 연구실로 출근했던 목진석 9단의 발걸음은 여전히 왕십리로 향한다. 서울 성동구에 동료 기사들과 함께 바둑 연구실을 열었기 때문이다. 

목 9단은 “안조영 9단(1979년생)과 함께 의기투합해 연구실을 열었고, 이후 원성진⋅윤준상⋅박영훈 9단이 차례로 합류했다”면서 “최근에는 조한승 9단도 들어오며 약 15명(홍성지⋅김지석⋅진시영⋅홍무진⋅한웅규⋅나현⋅김채영 등) 가량의 기사들이 함께 연구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계절에 상관없이 늘 잎이 푸른 상록수처럼 나이에 관계없이 열심히 바둑 공부를 하고 최선을 다해 대국을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연구실 이름을 ‘상록수’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근지가 국가대표실에서 상록수 연구실로 바뀌었을 뿐 요즘도 매일 오전부터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와 바둑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새로운 시도도 시작하고 있다. 감독을 맡기 전부터 이미 ‘전공 분야’로 정평이 나 있던 바둑TV 방송 해설은 물론, 명지대 바둑학과 등에서 강연도 예정돼 있다고. 최근에는 전남 순천에 위치한 한국바둑고등학교에서 다면기와 강연을 진행했는데 인기가 높았다는 후문이다.

5월2일 쿠키뉴스와 만난 목진석 전 바둑 국가대표 감독. 사진=이영재 기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바둑을 두고 싶다

인공지능(AI) 광풍은 지난 2016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바둑계에 날아들었다. 지금은 이미 전설이 된 이름, ‘알파고’가 그 주인공이다. 알파고 이전과 이후, 즉 AI 시대가 도래하기 전과 후 바둑 패러다임은 완전히 달라졌다. 프로기사들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배운다. 

이런 가운데 바둑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또, 바둑을 업으로 삼는 프로기사들의 지향점은 무엇이 돼야 할까. 10대 중반부터 이미 프로 바둑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20대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목 9단은 자신만의 바둑 철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10대⋅20대 때는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매판 대국할 때마다 승부욕이 가장 강했던 시기였고, 졌을 때 아픔이 그만큼 굉장히 컸다. 30대가 된 이후에는 마음가짐이 바뀌면서 좋은 바둑을 두자는 쪽으로 변했다. 편한 마음으로, 평온한 마음으로 좋은 바둑을 두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 4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시점에 다시 승부사로 돌아왔다. 지금은 그저 바둑을 두는 것 자체가 즐거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목 9단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 하나를 강조했다. 인공지능 시대, 사실상 거의 모든 프로기사들이 이른바 ‘AI 정석⋅포석’을 외워서 두는 시기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해서는 안 되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프로기사는 각자 자기 이름을 걸고 바둑을 두기 때문에 바둑판에 자신의 바둑을 둬야 한다. 예컨대, 목진석이면 ‘목진석의 바둑’을 두어야 한다. 바둑은 기력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자신이 두고 싶은 바둑을 바둑판 위에 그려나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프로기사라면 자신의 색깔을 갖고 바둑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4년 프로 입단에 성공해 어느덧 30년 동안 바둑계에 몸 담고 있는 목진석 9단에게 바둑이란 무엇일까. 목 9단은 “바둑은 항상 설렘을 주는 존재”라며 “물론 승부이기 때문에 졌을 때는 괴로움도 수반 되지만, 새로운 바둑을 둘 때마다 설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40년 동안 바둑을 둬왔지만 지금도 바둑을 둘 때 설렌다”면서 “바둑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프로기사로서 목 9단이 향할 종착지는 어디일까. 목 9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바둑을 두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계적으로 인공지능을 모방해 늘어놓는 그런 기사가 아니라 보는 사람 마음에 울림을 주는 바둑, 목진석만의 바둑으로 감동을 드릴 수 있는 기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목 9단은 “제가 있는 위치는 달라졌지만, 승부 현장에서 그리고 방송으로도 바둑 팬 여러분들과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항상 팬을 먼저 생각하는 기사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전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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