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격노가 시발점" "박 대령 월권"…윗선 향하는 '채상병' 수사

정진우 2024. 5.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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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지난 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소환돼 14시간 가량 조사받았다. 사진은 조사 후 귀가하는 김 사령관.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 수사가 대통령실 등 윗선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채상병 특별검사법’을 단독 처리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놓고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지만, 공수처는 오히려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공수처 수사팀 내부에선 “특검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가 해야 할 수사에 충실해야 한다”(공수처 관계자)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

공수처는 채 상병 특검법 본회의 처리 전후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지난달 26·29일)→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지난 2일)→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지난 4일)에 대한 소환 조사를 마쳤다. 이들 3명은 경북경찰청에 이첩됐던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기록을 회수하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지목된 이들이다.


수사 외압 의혹 첫 단추는 'VIP 격노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연합뉴스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은 대통령 보좌기구인 용산 대통령실과 각 군을 지휘하는 국방부, 해병 1사단을 지휘하는 해병대사령부 등 상급 부처·기관이 얽혀 있는 구조다. 수사외압 의혹의 시발점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보고된 지난해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 분야 수석보좌관 회의다. 이 회의는 채 상병 사건 조사 결과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된 회의이자, 이른바 ‘VIP 격노설’이 제기된 자리다. 윤 대통령이 당시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질책했다는 게 격노설의 내용이다.

이후 대통령실·국방부가 임성근 1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한 조직적 개입에 나섰다는 게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인 만큼 VIP 격노설은 진상 규명의 첫 단추에 해당한다. 실제 대통령 주재 회의 직후 채 상병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언론 브리핑 및 국회 보고가 취소됐고, 관련 사건 기록의 경찰 이첩 보류 지시가 하달됐다. 채 상병 건을 놓고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사령부 간 통화를 주고받은 것 역시 대통령 주재 회의 직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 대령 혐의자 특정, 의무인가 월권인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측은 혐의 내용을 파악해 혐의자를 특정하는 것까지가 관련 기록의 경찰 이첩 전 해병대수사단의 임무라는 입장이다. 뉴스1
윤 대통령이 회의에서 격노했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사령관으로부터 윤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김 사령관은 “그런 사실은 없다”(지난 2월 1일, 박 대령 항명 사건 중앙군사법원 재판)고 부인했다.

반면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격노 여부와 무관하게 해병대 수사단이 사단장 등 지휘관 8명을 특정해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 자체를 ‘월권’으로 보고 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과 대통령령에 따라 군인 사망 사건 중 ‘범죄 혐의를 인지’한 경우 군은 지체 없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박 대령이 혐의자를 특정하는 작업까지 진행한 것은 범죄 혐의 인지를 넘어선 사실상의 수사 행위이자 월권 행사라는 것이다.


법사위선 "범죄사실 알면 바로 이첩"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사법원법 개정이 논의될 당시 인지의 개념에 대해 "범죄사실을 알면 바로 딱 신속하게 이첩해야 하는 것"이라며 사실적 인지를 강조했다. 중앙포토
문제는 ‘범죄 인지’의 정확한 개념과 시점에 관해선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2021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군사법원법 개정을 논의할 당시에도 인지의 개념은 논란이 됐다. 당시 법사위 간사였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지를 “(발견했다는 의미의) 사실적 인지로 봐야 한다”며 “범죄 사실을 알면 바로 딱 신속하게 (기록을 경찰에) 이첩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심나는 정황만 발견하면 지체없이 이첩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박 의원의 설명대로라면 국방부가 조사 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재조사에 나선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지만, 마찬가지로 박 대령이 과실치사 혐의 적용 대상자까지 파악해 조사 결과에 담은 것 역시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에는 반하는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인지통보서 쓰려면 혐의자 특정해야"


지난해 9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출석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과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 연합뉴스
반면 박 대령 측은 혐의자를 특정하는 것까지가 ‘범죄 혐의 인지’에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군 당국의 경찰 이첩용 ‘인지통보서’ 양식엔 죄명과 함께 피의자의 성명을 적도록 하고 있다. 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인지통보서 내용을 채우기 위해선 혐의명과 함께 혐의자를 특정해야 하고,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에도 군은 늘 경찰 이첩 전 혐의자 명단을 정리하는 작업까지 해 왔다”고 설명했다.

혐의자 특정은 경찰이 해야 할 수사의 영역이자 박 대령의 월권이었다면 국방부 조사본부가 재조사를 통해 임성근 사단장을 제외한 대대장 2명으로 혐의자를 축소·발표한 것 역시 월권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박정훈 대령이 혐의자 8명을 지목한 것이 월권이라면 국방부 조사본부가 재조사를 거쳐 혐의자를 대대장으로 특정한 것은 월권이 아니고 무엇인가”라며 “혐의자를 특정한 박 대령에 대해 항명이나 월권을 주장하는 것은 수사 외압을 가리기 위해 법 해석 자체를 뒤트는 행위”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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