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국 보수는 ‘진보를 사랑할 때’ 부활했다

2024. 5. 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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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농지개혁·은행국유, 신용할당
모두 보수 집권 때 추진

역대 보수정부, 진보정책 채택
위기 돌파하는 게 '패턴'

유권자들은 복지국가도
민주화·산업화도 지지한다

윤석열정부, '탈냉전+따뜻한
보수'로 거듭나야

2024년 4월 총선이 끝났다. 국민의힘 108석, 거대 야당 192석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당 기준으로 최대의 참패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정부는 왜 이렇게 참패하게 됐을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1994년에 출간됐던 리영희 선생의 책 제목이다. 당시 이 책은 진보 역시 보수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진보의 자기성찰’을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를 길게 조망해 보면 보수 역시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면서 진화해 왔다. 지금은 ‘보수의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엔에는 약 210개 국가가 가입되어 있는데 식민지 경험 있는 제3세계 국가 중에서 산업화, 민주화, 복지국가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이 산업화, 민주화, 복지국가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는 보수와 진보가 모두 역할을 했다. 보수에 국한해 보면 한국 보수는 과감하게 ‘진보 정책’을 채택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왔다. 역대 보수 정부가 ‘진보정책의 채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역사를 간략히 정리해 보자.

이승만정부의 업적 중 하나는 농지개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적의 경제성장’을 했던 일본, 한국, 대만은 공통점이 있다. 강도 높은 농지개혁을 했다. 이들 세 나라가 농지개혁을 했던 이유는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공산화를 막기 위해 공산주의 세력의 핵심 정책을 수용한 경우였다.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보수가 ‘진보정책을 채택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박정희정부의 산업화 성공은 수출노선과 중화학공업이 결정적이었다. 두 가지 정책은 모두 ‘은행 국유화’ 정책이 선행됐기에 가능했다. 은행 국유화는 사회주의 세력의 정책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원래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하던 정책이다. 반공주의자 이승만정부가 끝까지 반대했던 이유다. 이외에도 환율에 대한 인위적인 저평가, 물가통제, 중화학공업 기업에 대한 신용할당 정책을 폈다. 모두 자유시장 경제 원리와 구분되는 ‘좌파적’ 정책들이었다.

전두환정부는 5·18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했다. 역대 정부 중 정통성이 가장 취약했다. 전두환정부는 정당성을 만회하려는 취지에서 공정거래법을 제정하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제정했다. 공정거래법은 1981년 4월에 시행됐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은 1981년 3월에 시행됐다.

노태우정부는 87년 6월 항쟁의 열기 속에서 간신히 집권했다. 36.6%의 지지율로 당선됐는데, 87년 이후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노태우정부의 대표적인 업적은 공산주의 국가들과 수교했던 북방정책이다. 특히 공산주의 국가들과 수교했던 북방정책은 ‘보수 정부’였기에 가능했다. 1989년 2월 헝가리와 수교를 시작으로 1990년 3월에는 소련과 수교했고, 1992년 8월에는 중국과 수교했다. 공산권의 30여개 국가와 수교했다. 1997년 11월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겪게 된다. 외환위기 극복의 동력 중 하나는 ‘중국 수출 대박’이었다.

김영삼정부는 작년에 상영했던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재평가되기도 했다. 김영삼정부는 하나회 해체,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5·18특별법 제정, 고용보험법 제정 등을 했다.

이명박정부는 2008년 집권 직후 ‘광우병 촛불시위’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갤럽 분기별 지지율 기준 21%까지 떨어졌다. 이후 공정사회론과 동반성장론을 화두로 던지며 지지율을 끌어올린다. 2009년 1분기에는 대통령 직무평가 지지율을 34%까지 끌어올린다. 이때 추진했던 정책들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 서민금융론, 동반성장위원회 신설 등이다.

박근혜정부는 2012년 총선을 앞둔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걸었다.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순환출자 규제, 대주주 적격성 강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가맹사업법 개정 등을 입법으로 통과시켰다.

작년 8·15 경축사 때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의 투쟁”을 선언했다. 시대착오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뜬금없고 황당한 선언이었다. 한국 유권자들은 산업화도 지지하고, 민주화도 지지하고, 복지국가도 지지한다. 한국 보수는 ‘탈냉전+따뜻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역대 보수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진보’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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