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세균에게 배우는 과학철학

2024. 5. 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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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세균이라 하면 우선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소독제나 항생제를 써서 박멸하는 것이 우선이며, 균을 없애는 것은 위생과 보건의 가장 기본적 조치다. 그런데 세균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유익한 세균도 있다는 것은 요구르트 등 유산균 음료를 마시며 자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리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그 반면 서양에서는 좋은 세균도 있다는 것이 요즈음 새로운 이야기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생리학이나 의학의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지만 서양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아직 새로운 이야기이다.

유산균 음료 애호가들도 그것이 왜 유익한지는 잘 모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의 창자 속에 살고 있는 각종 세균은 음식물을 분해하여 우리 몸에서 흡수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다. 또 그러한 정상적 세균들은 인체에 무해하며, 그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진짜 해로운 다른 세균들이 번식하는 것을 막아준다.

「 세균이라고 전부 해롭진 않아
신진대사와 면역 돕는 세균도
인간·세균 공생하며 함께 진화
다른 생물에 없어선 안될 존재

인체 세포 수보다 많은 몸속 세균

류코노스톡 메센테로이드의 현미경 사진. 김치에서 생성되는 유산균 중 하나로, 김치가 익을 때 증가해 김치의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그런데 근년에 나온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세균이 하는 역할은 그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하며 복잡하다. 첫째, 세균은 우리 몸속에 그냥 조금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하나의 몸 안에 살고 있는 세균의 수를 따져 보면 몇 조 개로, 인체 자체의 세포 수 보다도 많은 엄청난 수라고 한다. 그 종류도 1000가지를 넘으며,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세균들이 하는 역할도 다양하다. 우선 신진대사를 돕는 부분을 보자.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 중 곡식이나 채소에 포함된 복합적 탄수화물은 인체 자체에서 생산하는 위액이나 담즙 등으로 분해할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은 세균의 작용으로 분해되어야만 인체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풀을 뜯어먹고 사는 소나 다른 유제류의 동물들에게는 더 심각한 이야기다. 소는 인간보다도 위장에 더 많은 세균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균이 일 할 수 있도록 내장이 엄청나게 크다. 세균이 없으면 초식동물이란 없다. 초식이 불가능하다면 인간과 같은 잡식동물도 있을 수 없다.

너무 깨끗하면 필요한 세균 못 가져

세균이 하는 역할은 소화를 돕는 것을 넘어서 또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 몸에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세균들이 없을 때 여러 가지 건강상 문제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세균의 부족으로 천식·비만에 각종 암까지도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인체에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세균들은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을 훈련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훈련이 되었을 때 진짜 해로운 병원균이 들어오면 그것을 공격하는 능력이 갖추어진다. 또 위장과 뇌의 기능은 서로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위장에서 세균들이 정상적 활동을 하지 못할 경우 심리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보았을 때 우려되는 점은, 현대 문명사회의 환경과 관습은 너무 깨끗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필요한 세균을 보유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근년에 땅콩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대한 치명적 알레르기 반응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문명사회의 어린이들이 세균을 충분히 접촉하지 않고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출생 전의 태아는 세균에 거의 노출되지 않지만, 출생 과정에서부터 우선 모체에 있는 세균을 접하게 된다. 태어난 후에는 먹는 음식이나 접촉하는 환경에서 수많은 세균을 만나고 그것들을 흡수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몸속의 세균 집합체도 늘어나며 성숙해진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청결을 강조하고 조금만 아파도 몸에 항생제를 투여하며 세균을 무차별하게 없애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미생물 집합체가 형성되지 못하면서 도리어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세균은 인체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공생(symbiosis)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요즘 첨단적 연구를 하는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과 같은 생물이 진화할 때 그 자체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하는 세균과 함께 이루고 있는 복합체(holobiont)가 적응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인간의 유전자 자체를 분석해보면 많은 부분이 각종 세균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한다. 공생하는 세균과 유전자를 교환하는 그 과정이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 지에 대해서도 더 자세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간들은 세균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비교적 근래에 와서야 알아내었다. 1850년대에 프랑스의 파스퇴르가 세균을 감염증과 부패의 원인으로 확실히 지적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에 독일의 코흐 등 여러 학자의 연구를 통해 각종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한 기본적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균은 병원균으로만 간주되었고, 그 후로 약 150년이 지난 후에야 과학자들은 세균이 유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게 되었다. 거기에 대한 활발한 연구들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150년이 더 지나면 또 얼마나 신기하고 예측하지 못했던 지식을 얻게 될지 알 수 없다. 무언가 하나를 발견했다고 기뻐할 것만이 아니라, 그 발견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참으로 우리가 모르는 것도 많고 연구해야 할 것도 많다. 하찮게 여기는 인간의 뱃속이 이렇게 오묘할 줄이야. 세균에게서 겸허함을 배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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