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설마…‘한 번 보고 끝’인가요 [신율의 정치 읽기]

2024. 5. 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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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행위, 견제 아닌 통제
이재명 대표 의료개혁 동의는 영수회담 성과
尹 대통령, 채 상병 특검법 입장 없어 아쉬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인 보수 일간지 칼럼 제목에 ‘용산 대통령’과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 표현은 작금의 정치 상황을 정확히 묘사한다. 우리나라는 분명 대통령 중심제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이 확연히 분리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제 국가에서 여소야대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여소야대가 돼야만, 입법권력에 의한 행정권력 견제가 ‘원활히’ 이뤄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인 여소야대가 국회를 지배할 경우,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는 사라지고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통제’가 발생한다. 견제는 상대방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통제는 통제하는 측의 ‘의지’에 따라 상대방 행동이 제약됨을 의미한다.

지금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행위가 ‘견제’가 아닌 ‘통제’라고 할 때, 우리나라 권력 구조는 대통령 중심제가 아닌 이원집정부제와 유사한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진다. 국가 운영을 행정부와 입법부가 ‘공동’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됐다는 얘기다. 결국 개헌을 하지 않고도 우리나라 권력 구조를 바꾼 셈이 된다.

이때 국정 운영을 놓고 어느 일방이 상대에 대해 책임 추궁을 할 수 없다. 본의 아니게, 싫든 좋든, 국정 운영에 있어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이 공동으로 책임지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만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만남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 회동이 아닌,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회동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연히 ‘이원집정부제’ 혹은 ‘권력 분점’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하는 프랑스에서는 ‘동거 정부’가 발생하기도 한다. ‘동거 정부’란, 외교와 국방 등 외치를 주로 하는 대통령과 내치에 책임이 있는 총리가 각기 다른 정당 소속일 때를 의미한다. ‘동거 정부’가 등장하면 원활한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프랑스는 ‘동거 정부’를 피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와 하원 선거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치르도록 했다.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을 뽑고 하원의원 선거를 하면 여대야소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직후에 치러지는 하원 선거에서는 유권자 상당수가 대통령이 속한 정당 후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장 이런 식의 ‘인위적 조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행정권력 수장인 대통령과 압도적인 입법권력 수장인 야당 대표와의 회동이 절실하다.

영수회담 이전부터, 갖가지 난관이 즐비했다. 의제 조율의 어려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은 의제 상관없이 일단 만나자는 입장을 천명했고, 이재명 대표가 ‘화답’함으로써 두 사람의 회동이 가능했다.

이재명 대표가 ‘조건 없이’ 만나자는 데 동의한 이유는 이렇게 추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수회담에서는 무엇이든 ‘양보’한 측이 승자처럼 비쳐질 가능성이 높다. 영수회담이 실패로 끝날 경우, 양보한 측은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양보했는데 상대방은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영수회담이 실패로 끝났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회담에서 나름의 성과를 도출한다면, 여론은 양보한 측 공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민생을 위해 양보까지 해가며, 이런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재명 대표의 양보로 이래저래 민주당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그렇다면 이번 영수회담의 성과는 있었을까?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가장 큰 성과는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의료개혁에 이재명 대표가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주요 과제고, 연금개혁은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인데, 참으로 어려운 과제”라며 “민주당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언급은 의료 공백에 불안해하는 국민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키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행정권력이 추진하는 의료개혁 문제에 입법권력도 동참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의사 단체 행동 반경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행정부에 기댈 수도 없고, 입법부에 의지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여론에 호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재명 대표는 국민으로부터 매우 후한 점수를 얻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두 번째 성과는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이 ‘종종’ 만나기로 한 부분이다. 이번 회동이 영수회담의 ‘시작’이라는 것인데, 앞으로 이런 회담이 정례화되면 정국 교착 상태는 상당 부분 극복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상황 전개를 봐야, 이런 ‘약속’이 선언에 그칠지 아니면 실천이 될지 알 수 있다. 다만 이번 영수회담에 대한 국민 반응이 나쁘지 않을 경우, 영수회담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영수회담에 대한 ‘반응’은 영수회담 이후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인될 수 있다. 대통령 지지율과 이재명 대표의 차기 지도자 선호도가 동반 상승하면, 영수회담에 대한 여론의 긍정적 평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영수회담에서 아쉬운 부분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을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야 현재 공수처가 수사하고 있으니, 수사 결과를 보고 그 이후에 특검을 말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 수사(修辭)일 뿐이다. 해병대 채 상병이 고귀한 목숨을 잃은 지 10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수사는 미적대고 있다. 따라서 일반 국민 시각에서는 이런 식의 미진한 수사를 기다리는 것보다 특검을 통해 해당 사안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채 상병 특검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있기를 바라는 여론이 많았다. 대통령이 특검 수용 내지 전향적 검토를 언급했더라면, 대통령이 여론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테다. 그러나 그런 언급이 없었기에 이번 영수회담에 실망하는 이가 적지 않다. 또한, 이재명 대표가 김건희 여사 문제를 우회적으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최소한 제2부속실 설치 혹은 특별 감찰관 임명과 같은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약속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영수회담의 성과가 부족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영수회담에 대해 민주당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만일 영수회담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갖고 대여 공세 명분을 삼으려 한다면 이는 문제다. 야당이 양보해 회담을 성사시켰지만, 대통령의 요지부동만 확인했으니 우리는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모처럼 조성된 대화 분위기가 다시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한민국을 운영하는 권력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의 권력을 인정하고 상대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8호 (2024.05.08~2024.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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