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친구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 [수산봉수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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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인문학을 결합한 미디어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제주인과 나의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 <기자말>
[이봉수 기자]
▲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현관 앞에서 김판수 공동이사장(왼쪽부터), 이봉수 기자, 염무웅 공동이사장, 김용락 시인, 박현희 운영위원, 백우인 시인. |
ⓒ 송경동 |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명나라 학자 이탁오의 말인데, 현자들의 말은 젊은 시절에는 흘려듣다가 나이 들어 무릎을 치는 때가 있다. 그는 양명학자로서 신분차별에 반대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등 유교적 질서를 거스르는 혁신사상을 펴다가 체포되자 자결했다.
지난해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 문집에서 내 원고가 빠진 데다 그 편집위원장이 몇 년 전 송년회에서 내 아내에게 혐오 발언을 한 사실까지 알게 되자 이런 부담스러운 동창생을 친구라 할 수 있느냐는 회의감에 빠졌다. (관련 기사: 남의 아내 귀에 대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니).
'머리가 커지면서 생각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자신의 가치관이나 설익은 이념으로 친구를 매도한다면 절연해야 한다'는 분노와 '그래도 50년 친구이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화해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체념 사이에서 갈등했다.
교우관계를 맺고 끊는 법
최근 한 인물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을 취재하다가 교우관계를 어떻게 맺고 끊는지에 관한 배움을 얻었다. 그는 바로 '유럽 간첩단 사건' 피의자였다가 국내 최고 도금 전문가로 성공한 김판수 익천문화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55년 전 딱 이맘때인 1969년 5월 1일 새벽 5시, "판수야" 하고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에 대문을 열었다가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체포돼 남산으로 끌려갔다. 고춧가루를 타서 물고문하는 등 갖은 고문을 당했지만 동베를린에 두 번 갔다 온 것 말고는 불 게 없었다. 동서 베를린 통행도 그런대로 자유로운 때였다.
그러나 이 수사 결과는 1967년 '동백림 사건'과 함께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크게 포장해 발표됐다. 한자로는 다르지만 겨울부터 봄까지 제주 산천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冬柏) 꽃을 연상시키는 '동백림'(東伯林)은 공안당국이 빨갱이 딱지를 붙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는 '1967년 6.8 부정 총선 규탄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 케임브리지대 교정에 서있는 박노수 교수 부부와 유학생들.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박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는 처형됐고, 유학생 김판수(맨 오른쪽)는 5년형을 받았다. |
ⓒ 익천문화재단 |
"이제 와서 본 사건 피고인들의 완전한 결백을 주장하거나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순수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저희들이 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은 엄연히 실정법 위반이었지요. 그러나 과연 그만한 과오로 한창 피어나는 젊고 유능한 학자를 사형시켜야 했을까요. 그냥 뒀으면 세계적인 석학으로 성장했을 엘리트의 목숨과 바꾸어서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유럽 간첩단 사건'은 2013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사형이 집행된 박노수 교수와 김규남 국회의원에게 뒤늦은 무죄선고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청년 김판수의 인생 행로도 완전히 뒤집혔다. 그는 감옥에서 일본어를 배워 일본 책으로 도금을 연구해 출옥 후 호진플라텍의 모체가 되는 호진실업을 설립했다.
도금 기술로 번 돈 문화계 지원
"매년 4월 말 주식 배당금이 나올 무렵이면 그중 상당액을 문학단체와 시민운동단체, 뜻있는 잡지와 개인들에게 기부했습니다. 내가 관여한 한국작가회의와 임화문학연구회에도 벌써 십수 년째 1천만 원, 500만 원씩을 후원했지요.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의 <녹색평론>에도 당연히 했고요. 마음에 드는 책을 수시로 열 권, 스무 권씩 사서 버릇처럼 여기저기 뿌리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실 겁니다."
'그런 일을 체계적으로 하고, 문인, 예술가, 활동가들이 부담 없이 아무 때나 모여서 우의를 나누고 세상을 걱정하고 미래를 꿈꾸어 보는 공간'이 바로 익천문화재단 길동무라는 것이다.
▲ 대전교도소 운동회에서 박성준(오른쪽)씨와 함께. 박 씨는 나중에 국무총리가 되는 한명숙 씨와 6개월째 신혼 생활을 하다가 통혁당 사건으로 체포됐다. |
ⓒ 익천문화재단 |
남의 얘기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인, 핍박받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행세하더라는 거였다. 둘도 없는 친구로 생각해 찾아갔지만 그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판수'일 뿐이었다. 1991년 대학가에서 분신 자살이 잇따를 때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는 글을 썼을 때는 그가 정신적으로 병든 것 같아서 오히려 연민이 느껴졌다고 한다.
소설가 이청준은 광주일고 동기생이면서 염무웅과 함께 독문과 학생이었고 셋은 하루라도 못 보면 안달이 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이청준은 너무나 가난하게 자랐지만 소설가로 성공한 뒤 어려운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2008년 그가 죽을 때까지 한번도 보지 않은 이유다.
"무웅이가 한결같이 '넌 참 괜찮은 인간이야'라며 지지해준 것이 평생 못된 짓 안 하면서 살 수 있는 힘을 줬어요. 부나 권력이나 명성을 따라 적당히 흘러가는 삶을 거부하게 만들었죠."
백낙청-염무웅-김판수 선생과 연결해준 소셜미디어
낯가림이 심한 그에게 나를 연결해준 이도 염무웅 선생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염 선생에게 나를 연결해준 이는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백낙청 선생이다. 글로만 40여 년 사숙하다시피 존경했지만 뵌 적도 없는 백낙청 선생이 2021년 가을 지인을 통해 점심을 사주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언론개혁과 관련해 내가 각종 매체에 쓴 글과 인터뷰, 토론 내용에 공감한다며 격려해줬다. 언론중재법도 찬성 논지를 줄기차게 펴면서 언론계와 언론학계에 우군이 거의 없어 크게 실망했는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언론개혁 마스터플랜을 책으로 쓰라고 권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개혁법안을 거부하면서 심한 좌절감에 빠져 그것마저 중단하고 <창작과비평> 2022년 여름호에 서론격의 논단을 쓰는 데 그쳤다.
백낙청 선생은 내가 방송에 출연한 것과 <오마이뉴스> 등에 기고한 글을 염무웅 이사장과 일부 공유한 듯한데, 한 사무실을 쓰는 김판수 이사장도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교우관계는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지난 2월 20일에는 대구의 김용락 시인이 점심 약속을 주선해 익천문화재단에서 염무웅·김판수 선생과 상임이사로 일하는 송경동 시인을 처음 대면했다.
▲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사무실에서 송경동(왼쪽부터), 염무웅, 김판수, 백우인, 이봉수, 김용락. |
ⓒ 박현희 |
사회관계망(SNS, 소셜미디어)은 큰 시간·비용 부담 없이 친분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옛 선비들처럼 누정을 지어놓고 방문객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태극기집회에 나가서 인증샷을 찍어 카톡에 올리는 친구도 있는데, 그런 행위도 나는 '다름'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대놓고 나를 모욕하거나 배제하는 이들과는 교우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친분을 쌓는 게 부담스러워 오랜 친구를 좋아하게 된다는데 나는 왜 배제 대상인가?
이승만 동상과 관련해 논쟁을 하다 영화 <건국전쟁>을 안 봐서 그렇다고 단정짓는 대구 출신 친구, 그나마 덜 보수적인 정당에 출입하면서도 당의 방향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정치인을 주로 대변해온 언론의 후배 기자들, 과거 시민단체 활동을 자산 삼아 시민사회에 역공을 취하는 논객들과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부대끼는 데는 시간낭비와 감정소모가 심하다. 아무리 오랜 친구라도 부담스럽고 배울 점이 없다면 거리를 두고 사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듯하다. 언젠가 돌아와 세상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 김판수 이사장이 감옥에서 작사·작곡한 길동무 악보. 이름이 ‘김민혁’으로 돼있는 이유는 작사·작곡자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민중혁명’을 뜻한다. |
ⓒ 익천문화재단 |
김판수 이사장은 감옥에서 작곡도 배웠다. 7월 4일에는 출옥 50주년을 기념해 후배들이 마련한 '김판수 콘서트, 키다리아저씨'가 홍대앞 하늘아래소극장에서 열려 직접 노래도 한다. 그가 작사·작곡한 '길동무'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지만 돌아와 함께 가기를 희구한다.
너를 두고 가는 길 마음은 아파도
언젠가는 돌아와 함께 가리니
사랑하던 사람들 모두 다 떠나도
우리들의 참사랑 영원하리라
일어나자 어둠 속에서
나아가자 빛을 찾아서
너를 두고 가는 길 마음은 아파도
나는 너의 길동무 세상 끝까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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