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에 빠진 새알과 연대합니다, 생명의 강에서"

임도훈 2024. 5. 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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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농성 일지-5일차] 재가동 초읽기 들어간 세종보 상류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하다

[임도훈 기자]

밤 9시경이 되면 어김없이 세종보 농성장 천막 위 한두리대교에서 쿵탕 쿵탕 뛰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며칠째 그러는걸 보면 매일 조깅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종보 수문이 닫히면 부지런한 러너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어둠 속에서 소리없이 흐르는 강, 새들의 지저귐, 차들이 쉼없이 교차하는 교각 밑 천막 안에 홀로 남아 노트북을 켰습니다. 

수위가 상승하면서 검은 물이 금은모래와 자갈, 수풀을 덮을 겁니다. 깊은 숨을 들이킬 때 천막을 덮은 하루살이가 입으로 코로 들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이 되면 수온이 오르면서 녹조가 창궐할 겁니다. 이 녹조에서 공기를 타고 전파되는 마이크로시스틴은 간에 치명적인 맹독성 물질입니다. 강변을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몸에도 차곡차곡 쌓이겠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세종보에 막혀 하류로 흘러가지 못한 펄에선 악취가 풍길 겁니다. 수문이 열리고 드러난 모래톱이 수장되면 수많은 야생생물들의 삶터가 수장되는 것입니다. 새소리와 야생생물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적막한 강에는 시끄러운 차량의 굉음만이 들려오겠지요. 세종보가 다시 닫히면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 4대강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겁니다.

 
 밤 사이 세종보 상류 수위가 20cm 이상 불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지난 4월 30일, 세종보 상류 300m 지점의 하천부지인 이곳에 농성천막을 친 지 5일차입니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과 한국환경회의가 주관한 당일 기자회견에는 세종과 대전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4대강에서 강을 지켜온 많은 활동가들이 참여해 환경부의 세종보 담수 계획을 성토하는 목소리를 쏟아냈습니다. 그 뒤에도 세종지역단체와 시민들의 연대와 응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5월, 담수 초읽기에 들어간 세종보 재가동만은 함께 막아야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제 밤사이 금강 수위가 다시 올랐습니다. 대청호 조정지댐 방류로 수위가 상승한 겁니다. 이로 인해 물길 건너 하중도에 있던 흰목물떼새 둥지의 두 알은 다시 물에 잠겼습니다. 부모 물떼새는 망연자실한 뒷모습을 보이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얼른 건너가 상황을 살폈습니다. 어제보다 수위가 더 올라와서 깊이 잠겼고, 새알 한 개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가만두면 강물에 쓸려갈 것 같아 둥지 안으로 살며시 넣어줬습니다. 어미새는 물 빠진 뒤에 다시 포란을 할까요? 안쓰러웠습니다. 
 
▲ 밤사이 물에 잠긴 흰목물떼새 둥지 ⓒ 임도훈
 
 물에 잠긴 둥지를 바라보고 있는 흰목물떼새
ⓒ 대전충남녹색연합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동이 트고 3~4시간이 지나자 잠겼던 둥지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수위가 내려갔습니다. 한참을 지켜보니 부모 물떼새가 분주하게 둥지를 정돈하고 다시 포란을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 안도의 한숨이 저도 모르게 입밖으로 새어 나왔습니다. 아이들 건강이 걱정이지만, 10여일만 더 버텨서 알을 깨고 비단결처럼 흐르는 금강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 두번째 물에 담긴 둥지를 포란하기 위해 오는 부모 물떼새 ⓒ 임도훈

  
세종보의 수력발전소가 있는 3번 수문이 닫히고, 다시 1, 2번 수문을 들어올려 유압실린더를 장착하기 위해 포클레인이 모래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물길을 바꾸려고 물새떼의 땅에서 커다란 삽날을 마구 휘둘러 댑니다. 흰목물떼새가 포란을 포기하지 않은 둥지 근처에서 작업하지 않을지,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물떼새들이 이미 짓밟혀 난민이 됐을 겁니다. 
 
 세종보 상류 물떼새 서식지에 들어간 중장비. 물떼새 둥지는 모조리 짓밟힌다.
ⓒ 임도훈
 
환경부는 대체 뭐하는 곳일까요? 흰목물떼새를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자고 선언한 정부 기관입니다. 최소한 물떼새 서식지를 전수조사하고, 번식산란기에는 이런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앞장서야 할 환경부가 산란터 파괴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5월부터 9월까지는 용수공급을 위해 대청댐 방류량을 늘린다는데, 이게 현실화된다면 상당수의 멸종위기종을 수장시킬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을 보전하려고 한다면, 산란 번식기에는 대청댐 방류량을 조정해야 합니다. 세종보 가동은 당연히 중단해야 하겠지요. 물관리가 중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물관리를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한 지 2년만에 환경부는 '국토부'가 됐습니다. 현 정부 환경부가 내세운 물관리 핵심 정책이 댐건설, 하천 준설이라는 것만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환경보전의 최후 보루이어야 할 환경부가 환경 학살에 나서고 있는 셈입니다. 

천막농성을 시작한지 만 5일이 지나고 있는데, 보 재가동의 실무 책임 부서인 환경부는 연락도 없습니다. 환경부 해당 부서에 수차례 전화를 해도 '불통'입니다. 

 
 30억 예산을 들여 재가동 점검 중인 세종보. 재가동시 전부 물에 잠기게 된다.
ⓒ 임도훈
 

'그깟 물떼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지.'

우리는 사람을 뒷전에 두고 흰목물떼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종보 재가동을 막는 일은 4대강에 사는 생명의 터전을 회복하고 지키는 일입니다. 4대강 사업은 우리나라 온 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물떼새와 연대하고, 세종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강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대합니다. 

 
 세종보 상류. 천연기념물 원앙 부부.
ⓒ 대전충남녹색연합
 

오늘도 전국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방문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온생명 어울림 문화제(편경열 / 밴드 프리버드)
시간 : 5월 6일(월) 오후 3시 
장소 :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551-93(금강스포츠공원)

 
 온생명 어울림 문화제
ⓒ 대전충남녹색연합
 

천주교대전교구생태환경위원회 거리미사
시간 : 5월 9일(목) 오전 11시
장소 :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551-93
(주차 후 강변쪽 게이트볼장 지나서 농성장)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위한 천주교 거리미사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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