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위기 원인은 '영성 부재' 때문
[정병진 기자]
▲ 김상봉 교수의 책 『영성 없는 진보』 김상봉 교수의 신간 『영성 없는 진보』 |
ⓒ 정병진 |
"한국 정치의 파행과 민주주의 위기 원인은 한 마디로 '영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영성 없는 진보>의 저자 김상봉 교수의 진단이다. 이때 말하는 '영성'이란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 원인에 대해 저자가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영성'을 꺼내 든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동학농민혁명 이래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 활동이란 '전체를 위한 자기희생'"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먼저 그가 말한 '영성'이란 개념부터 적절한지 살펴보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영성(靈性)을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이라 간략히 정의한다.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다만 일반적으로 종교 신학에서는 영성을 "자기를 초월하여 이웃과 신을 위한 희생이나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성품"이라 본다. 따라서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을 영성으로 본다는 저자의 영성 개념 정의는 그런대로 무난해 보인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에 응답하고 공공선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지금껏 '진보'하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희생해 고통당하는 이웃을 돕겠다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권력 쟁취'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지닌 자들로 넘쳐난다. 그러기에 이 나라가 '민주주의 위기'를 맞았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글쎄, 혹시 세속 '정치'에 고담준론(高談峻論) 같은 종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 "길을 잃었다면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처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 근원을 헤아리는 일은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 나라 '진보'의 현주소에 대한 저자의 명료한 진단은 경청하며 곱씹어볼 만하다. 이는 비단 '정치' 영역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시민사회 가릴 것 없이 그가 말하는 '영성'이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한국 민주화 세력은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에서 공화국의 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결정적인 지점에서 국가 형성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공화국'이란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 세력이 "국가의 의사 결정의 형식에 있어서 시민 주권"은 쟁취하였지만, "모두의 이익을 위한 국가" 형성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한국 민주화 운동은 지금껏 "현존하는 불의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부정"에 집중하였지, 정권 타도 이후 "우리 모두를 위한 나라" 형성에는 그 열정을 쏟아붓지 못하였다는 지적이다.
민주화는 '정치 민주화'에 그쳐선 안 된다. "반드시 경제 민주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다들 '경제 발전'에만 골몰할 뿐, 경제의 공공성 확립에는 너무 무관심하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령 "영국의 기간산업 국유화 모델"이나 "독일의 노사 공동 결정 제도"처럼 한국도 '민주공화국'을 이루려면 '기본 소득 제도'와 같은 경제의 공공성을 구축하는 작업을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본의 전면적 지배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인간과 자본의 전도된 관계를 바로잡는"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흔히 진보 운동에서는 '합리적 이성'을 중시한다. 그러기에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과 합목적성'을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진보'를 이끄는 힘은 '이성'이나 '정념'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사랑'에서 비롯한 믿음과 영성"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의지 활동의 동기도 될 수 없다"는 흄의 지적처럼, "이성은 결코 진리의 자율적이고 최종적인 주체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성이 본분과 한계를 넘어 "그런 주체처럼 행세"하려 들면 "실제로는 정념의 노예 노릇을 하게 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가령 정치 활동 영역에서 이성이 정념의 노예 노릇을 하게 되면 "당파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은 "한국의 진보적 민중 운동의 대중적 참여"를 위한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저자는 전태일을 '분신'으로 이끈 그 기저에는 '계급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이 오랜 세월 은폐되었다고 지적한다. 전태일은 그 신앙에 기초해 "타인은 자기와 상관없는 타자가 아니라 '나의 전체의 일부"로 보았기에, "총칼이 되기보다는 사랑을[!]" 위한 불꽃이 되었건만 그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저자가 든 사람은 유물론자이자 혁명적 무신론자인 서준식이다. 서준식은 수감 기간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삶"을 추체험하며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사랑'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이고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의지할 수 있는 지표"라고 말한다. 서준식은 '속류'들의 분개(내지 증오)를 넘어선 예수의 완전한 사랑에서 진보의 올바른 방향과 이상을 발견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70년대까지는 서준식 같은 유물론자도 적에 대한 증오와 원한에 근거한 '승리'만을 외치진 않았다. "예수처럼 언제나 약자 곁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의 원칙에 성실하리라 다짐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70년대 지식인들 내면의 풍경이던 '부끄러움'이나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사랑의 원칙'은 80년대 이후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의 진보 운동은 1980년 "5.18을 통한 저항 에너지에 힘입어" 맑스-레닌주의, 주체사상 등을 받아들이며 "세속 정치 운동"으로 치달았다. 그 과정에서 "사랑은 증발하고 증오만 남은 속류들"로 채워져 '세속화'되고 말았다.
정말 그럴까? 1970대 이후의 한국 진보 운동사에 대한 이러한 분석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80년대 이후에도 전태일 못지않게 가난하고 고통당하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온 몸을 던져 희생한 사람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가령 5.18 당시 시민군으로 도청을 사수하다 희생한 문용동, 빈민운동가 김흥겸(김해철)과 허병섭, 18대 대선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분신한 이남종 등이 있다. 그들의 삶과 행동에도 '이념'이나 '증오'를 넘어선 '사랑'과 '믿음'이 그 밑변에 깔려 있었다.
더욱이 사실 70년대 진보 운동이라고 하여 대체로 세속적 '증오' 아닌 '사랑'의 원칙에 충실하였다고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늘 그렇듯이 당파적 이념이나 권력 욕망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더욱이 1970~1980년대야말로 한국 정치사에서는 군부 독재에 의한 '민주주의 말살'과 정치적 암흑기에 속한다. 어쩌면 워낙 캄캄한 밤이라 전태일 같은 인물의 별빛이 유난히 밝아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의 진보 운동 밑바탕에 무엇보다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사랑' 같은 '영성'이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핵심 주장에는 물론 동의한다. 저자는 종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영성의 적용 범위를 '진보'적 정치 활동 영역으로 넓혀 적용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다.
상대를 '적대 세력'으로 여기고 그들을 눌러 기어코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정치 운동은 더 나은 세상을 이루는 대신 실제로 끊임없이 '증오심'과 '분열,' '갈등'을 낳을 뿐이다. 일찍이 간디는 7대 사회악 중의 하나로 법치를 무시한 '원칙 없는 정치'를 첫째로 꼽은 바 있다. 그런데 저자는 나라의 '진보'를 위해서는 '법치'와 같은 원칙에서 더 나아가 '영성'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반가운 통찰이다. 하지만 자칫 뼈 아픈 성찰과 각성에 이르는 일침이 아니라, 그저 귀에만 듣기 좋은 '공자님 같은 말씀'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사실 종교계에서는 80년대 이래 '영성'이란 말이 대유행한 지 오래다. 그리스도교만 하더라도 오랜 세월 '경건'을 중시하였으나, '영성'이 그것을 진즉 대체한 상황이다. 교회에서 아무리 '사랑'을 강조한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지 않듯이 '영성' 역시 그럴 위험이 있다. '사랑'이나 '영성' 같은 누구나 공감할만한 좋은 개념어 대신에 더욱 중요한 일은 어려움을 겪는 가까운 이웃을 실제로 사랑하며 겸허히 공공선을 위해 힘쓰는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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