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큰 만큼 실망 클 수 있다"…22대 국회를 바라보는 이재명의 각오
"결정 과정에서는 반대해도, 당론 정해지면 따라야"
"역사에 없는 압승…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어 걱정"
"원래 말 길게 안 하는 편인데…, 오늘 조금 말씀드릴 것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의원총회 등에서 발언이 길지 않은 편이었다. 의총은 주로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탓도 있지만, 길어지면 좋게 봐야 ‘훈시’고, 아니면 ‘잔소리’라고 받아들여지는 탓도 크다. 기초·광역자치단체장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보궐선거로 들어온 터라 다른 초선의원보다도 국회 경험이 짧아, 스스로를 0.5선이라고 소개해왔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3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 당선인 총회 당시 이 대표의 발언은 이례적이었다. 길었다.
축사 인사말로 말문을 연 이 대표는 압승으로 발표된 22대 총선 출구조사 발표 당시 웃지 않았던 이유를 언급했다. 그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가 났습니다만 웃을 수가 없었다"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는 모두가 웃을 때 낙선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우리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 대표는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결과를 받아들고도 환호나 미소 대신 무표정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국회의원 당선의 영광은 후보 개개인이 아닌 당원과 국민들이 이뤄낸 성과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당선인을 화려한 꽃에 비유한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영남 지역 등에서 고배를 마신 낙선자 등을 언급하며 "우리는 한 개인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이라고 하는 정치결사체 구성원이고, 당을 구성하는 당원들과 후보들, 이 많은 사람의 뿌리 역할, 줄기 역할, 잎의 역할, 가지의 역할 등 그 역할의 결과로 화려한 꽃의 자리를 우리가 차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절대 우세 지역의 후보들, 또 절대 열세 지역의 후보들이 타고날 때부터 그런 지역의 후보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 어려운 지역에서 당 전체 승리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하는 그분들 생각에 제가 오히려 웃음보다는 안타까운 눈물이 나려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소회를 전하며 그는 "여러분들이 차지하고 있는 그 지위, 역할이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만들어 낸 개인의 전과가 아니라는 생각을 앞으로 의정활동 할 때, 정치 활동을 할 때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과 정당의 구성원으로서의 관계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당론 등과 관련해서도 ‘논의 과정에서 반대의견을 내는 것은 좋지만, 논의에서 반대하지도 않고 당론 입법을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당 구성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개개 독립된 헌법기관 아니냐"며 "두 가지를 잘 조화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일단 소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각각의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에 따른 주장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 처음 당선된 초선을 지목하며 이 대표는 "각각의 개인들이 사적 욕구가 아니라 공익적 목표에 따른 주장은 강하게 해야 한다. 당의 발전을 위한 개혁적인 발언은 세게 해줘야 한다"며 "그러한 것은 클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당내 갈등과 대결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구성원과 당원, 지지하는 국민들의 힘으로 이 역할을 맡게 되었기 때문에, 최소한 모두가 합의하고 동의한 목표에 대해서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정말 양심상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론을) 따라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21대 국회에서) 아쉬웠던 것은, 당론으로 어렵게 정한 어떤 법안들도 개인적인 이유로 반대해서 추진이 멈춰버리는 사례를 제가 몇 차례 봤다"며 "당내 갈등 때문에 (이 점을) 지적하진 않았지만, 새로 당선되신 여러분들께서는 그러한 일은 최대한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좋다"면서도 "반대하지도 않아놓고 정해진 당론 입법을 사실상 무산시키는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 민주당에서는 당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다, 표결 과정 등에서 반란표가 나오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개딸’로 불리는 강성지지층의 시선을 의식해 공개적으로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반론이 있긴 했다. 하지만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당론 논의 과정에서 침묵했다 본회의 표결 과정 등에서 ‘커밍아웃’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었다. 이 대표는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과 당원으로서 국회의원의 균형과 관련해, 당내 토론 등에 있어서 눈치 보지 말고 세게 붙어보되 결론이 났다면 양심에 반하지 않는 한 당론을 따라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을 내놓은 것이다.
이외에도 지역구 관리를 튼튼히 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압도적 우세, 열세 지역은 대책이 없긴 하지만, 상당 기간 개인적 노력을 기울였던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들이 실제로 결과로 드러난 곳이 몇 곳이 있다"며 "여러분들의 뿌리, 출발점이 해당 지역의 국민이라는 점, 특히 지역구 당원과 지지자들, 유권자들 정말 소통 많이 하시고 대화도 많이 하시고 요구도 많이 들어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주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압도적 승리 ‘그 이후’에 대해서도 당부했다. 국민이 부여한 책임이 실망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만큼 책임과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여당인 상태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처음으로 이뤘고, 이제는 야당인 상태에서 역사에 없는 압도적 다수 의석을 이뤘다"며 "국민들이 기대하는, 또는 부과한 책임을 우리가 잘 수행하지 않으면 그 기대만큼 또는 부과된 책임만큼 똑같은 양의 실망으로 되돌아올 것 같다는 큰 걱정이 있다"고 했다. 지난 총선에서 대승했지만, 대선에서 패하고 지방선거에서 패했던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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