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보다 자유 중요시하면…윤 대통령이 꼽은 그 책, 세줄 요약

김창우 2024. 5.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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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 『선택할 자유』(1980)


세줄 요약

-자유보다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없다. 평등보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있다.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단,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한다.
-부패란 정부가 규제로 사장에 개입해 사회, 경제적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 내용

윤석열 대통령은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 ‘본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았다.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의 추천으로 처음 접한 뒤 수차례 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후 행보를 보면 그다지 감명을 받지는 않을 듯하다. 아니면 정치에 입문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던지. 하긴 정치인이 정부의 개입을 극혐하는 노선을 유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대선 토론에서도 "프리드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답변했었지.

밀턴 프리드먼 '선택할 자유'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반대하는 통화주의(monetarism)의 창시자로, 그 유명한 시카고학파의 거두로 잘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수괴로 악명이 높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사상을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로 규정하지만 말이다. 자유주의(liberalism)만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쓰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유럽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자유주의는 왕권에 대한 거부에서 출발한다. 존 로크에서 시작해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이 발전시켰다. 시민 혁명의 기반이 됐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탄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의 자유주의는 '사회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 또는 new liberalism) 또는 '개혁적 자유주의'로 개인의 자유 증대, 복지 정책을 통한 약자 보호, 공정한 시장경제 등을 내세운다. 그래서 현대의 '리버럴'이라고 하면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다. 미국 민주당을 생각하면 된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자유지상주의를 계승했다. 자유지상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나타난지 100년 후에 무정부주의에서 생겨났다. 태생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거부한다. 작은 정부, 규제 철폐, 낮은 세금을 지지한다. 로널드 레이건 이후 미국 공화당 노선이다.

19세기 쇠퇴했던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하이예크, 프리드먼 등이 20세기 들어 되살리면서 자유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실 프리드먼은 자신을 자유지상주의자로 표현했지만 반대파들이 신자유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신자유주의라는 말 자체가 가치 중립적인 개념은 아닌 셈이다. 프리드먼은 현대의 자유주의를 진보주의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비판한다. 개인의 자유를 유일한 궁극적인 가치로 인정하는 고전적 자유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사회 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다른 가지다.

갑자기 자유주의 타령을 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 대한 지식 없이는 프리드먼이 주장하는 경제 정책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다뤘던 토드 부츠홀츠의 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하편에서 프리드먼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경제에 개입하는 대신 "그냥 멍청하게 거기 서 있도록 해요"하고 겸손하게 제안했다. 정부가 나서서 뭔가를 하면 그만큼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왜 그런지 잠깐 살펴보자. 고전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가치론이다.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상품의 가치를 만든다고 보았지만, 애덤 스미스는 노동+자본+토지에서 나온다고 봤다.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바로 여기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갈라졌다.

경제 정책에서는 어빙 피셔(1867~1947)의 화폐수량설(MV≡PT)이 가치론 역할을 한다. 화폐수량설은 통화량(M)과 화폐유통속도(V)를 곱한 것은 물가(P)와 거래량(T)을 곱한 것과 일치한다는 항등식이다. 항등식 자체로는 당연한 얘기다. 소비자가 낸 돈 전체(MV)와 팔린 물건값(PT)은 일치할 수밖에 없다. 피셔는 이를 두고 사회 관습과 제도에 따라 장기적으로 화폐의 유통속도(V)는 일정하기 때문에 물가(P)는 통화량(M)에 비례한다고 해석했다.

케인스는 화폐의 유통속도(V)가 안정적이라는 가정을 부정한다. 화폐 수요는 이자율의 영향을 받기 때문(유동성 선호이론, 이자율이 높아지면 현금을 쥐고 있기 보다는 채권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에 상수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가 나빠지면 이자율을 낮춰서 돈을 풀고, 경기가 좋아지면 이자율을 올려서 돈줄을 죄는 정책이 필요하다. 신화폐수량설을 내세운 프리드먼은 화폐 수요가 이자율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 영향력은 케인스가 유동성 선호이론에서 가정한 것보다 작다고 봤다.

여기서 프리드먼의 '샤워실의 바보'가 등장한다. 샤워실에서 물을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온다. 샤워실의 바보는 수도꼭지를 더운물 쪽으로 돌린다. 갑자기 뜨거운 물이 쏟아지자 깜짝 놀란 바보는 수도꼭지를 찬물 쪽으로 확 돌린다. 다시 냉수가 쏟아지고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 프리드먼은 물이 차갑다고 느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인식시차)과 수도꼭지를 돌린 뒤 물이 따뜻해진 것을 확인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효과시차) 때문에 정확한 정책을 펴는 것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정부가 일정한 통화증가율을 정하고 장기간 준수하는 편(준칙주의)이 낫다고 봤다.

35년 전 강의실에서 경제학을 배울 때 세상은 너무도 명쾌했다. 존 힉스(1904~1989)가 케인스 모델을 수학으로 표현한 'IS-LM' 곡선에 따르면 이자율을 낮추면 투자가 늘어 국내총생산(GDP)이 늘었다. 경기가 너무 과열되면 이자율을 올리면 그만이다. 이런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정부 관료들은 나쁜 X이거나 바보로 보였다.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라는 말이 딱 맞던 시절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멍청히 서 있으라니. 저런 사람이 어떻게 노벨상을 받았단 말인가.

하지만 전공 지식이 쌓일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경제에 큰 충격이 오면 'IS-LM'은 무용지물이었다. 정부 지출 확대는 민간투자가 줄어드는 구축효과 탓에 생각만큼 효과가 없었고, 약삭빠른 개인과 기업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이면을 읽고는 바로 태도를 바꿨다. 결국 학사 학위를 받을 때쯤 깨달은 것은 '나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 프리드먼 센세(先生), 당신은 어디까지 내다본 것입니까. (중편으로 이어집니다)


TMI

밀턴 프리드먼은 191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유태계 가정 출신으로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아침에는 백화점에서 모자를 팔고, 점심에는 학교 근처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밤에는 소방서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노력 끝에 뉴저지의 럿거스대를 졸업한 그는 시카고대에서 석사, 컬럼비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아메리칸 드림을 몸소 실천했다. 1976년 '소비분석, 통화의 이론과 역사 그리고 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에 관한 논증' 등의 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책 『선택할 자유』는 1980년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 방송한 한시간짜리 TV 프로그램 열 편을 정리한 것이다. 30년간 재직한 시카고대 교수에서 물러난 직후 자신의 경제, 사회 철학을 소개해 달라는 PBS의 제안에 따라 3년간 준비했다. 케인스학파에 대항하는 시카고학파의 거두로 자유 시장과 교역을 중시한다. 통화주의를 확립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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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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