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버리고 ‘GYM’ 챙길 때… ‘초등 1·2체육’ 40년 만 부활

이도경 2024. 5. 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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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초등 1·2체육’ 40년 만 부활
‘운동’보다 ‘놀이’ 중심 교육과정이 비만·과체중 불러
게티이미지뱅크


#세종시에서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Y군과 아빠의 대화. “1·2학년 때 학교에서 언제 제일 재밌었어?”(아빠) “쉬는 시간하고 점심시간”(Y군) “쉬는 시간이 왜 좋아?”(아빠) “애들하고 교실이나 운동장에서 놀 수 있잖아”(Y군) “체육수업은 얼마나 자주 해?”(아빠) “없는데?”(Y군) “체육시간이 없다고?”(아빠). 듣고 있던 엄마가 한마디 했다. “그래서 줄넘기학원 보냈잖아.”

#전북 A초등학교. 이 학교는 1·2학년을 주로 고경력 여교사가 맡는다. 베테랑 교사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일장일단이 있다. 교실 안에서 그리기와 만들기, 음악수업은 다채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신체 활동은 그림을 보고 몸으로 표현해보거나 음악을 듣고 가벼운 율동을 하는 정도다. 학교는 유치원·어린이집과는 다르다. 잡담이나 수업 중 이동은 금지여서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에겐 힘든 공간이다.

초등학교 1·2학년 체육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나 교사 성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오랫동안 지적돼 온 문제다.

3일 교육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대략 세 가지 원인으로 좁혀진다. 먼저 교사 성비 불균형 문제다. 남성 교사가 학교에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1·2학년은 고경력 교사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겐 학교 적응기이고 학부모 민원도 잦아 베테랑 교사가 낫다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국가교육과정이 ‘굳이 신체 활동을 안 해도 되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국가교육과정을 먼저 손보기로 한 이유다. 교사 배치는 구조적 문제이고 일장일단이 있어 쉽게 손댈 사안이 아니다. 국가교육과정 개정은 교육부가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0월 국가교육과정 개정 권한이 있는 국가교육위에 요청했고, 국가교육위가 지난달 26일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결정했다. 음악·미술·신체 활동으로 구성된 ‘즐거운 생활’에서 신체 활동 파트를 떼어내는 게 핵심이다. 즐거운 생활에서 떨어져나온 신체 활동은 안전 교과와 합쳐 통합 교과로 추진될 예정이다.

음악과 미술, 신체 활동을 뭉뚱그려 가르치지 말고 체육을 별도로 가르쳐 정규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신체 활동을 보장하란 얘기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는 달리고, 던지고, 점프하고, 구르고,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잡는 등 실질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숨을 헐떡이는 수업이 이뤄지도록 교육과정을 짤 계획이다.

현행 국가교육과정은 2022년에 완성(2022 개정 교육과정)돼 올해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에 적용됐다. 국가교육과정은 초·중·고교 학생들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배울지 규정해 놓은 국가교육의 ‘설계도’다. 학교 입장에선 ‘잉크도 마르지 않은’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 설명은 이렇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9년 발표를 보면 한국 청소년의 운동량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WHO에서 권장하는 운동량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 비율이 94.2%로 세계 평균 81%보다 높았다. 캐나다 76.3%, 핀란드 75.4% 등 교육 선진국과는 격차가 상당했다. 교육부는 이런 우려를 담아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설계했다. 지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즐거운 생활은 총 400시간 중 80시간을 신체 활동에 할애했지만,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선 144시간을 배정했다.


하지만 즐거운 생활에서 신체 활동 시간을 늘리는 방식만으론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의 운동량이 줄어 비만과 과체중 학생이 늘었기 때문이다. 초·중·고 학생 비만군(비만+과체중) 비율을 보면 2017년 23.9%에서 지난해 29.6%로 상승했다. 초등학생의 경우 같은 기간 22.5%에서 30.3%로 더 가파르게 뛰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초등 저학년 신체 활동 관련 인식 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2674명 중 1562명(58.4%)이 초등 1·2학년의 신체 활동 강화 필요성에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초등 1·2학년 신체 활동이 부족하다는 데 강하게 공감했다는 얘기다. 교육전문직(장학사)이 75.6%로 가장 높았고 학부모 61.5%, 학생 58.8%, 교사 52% 순이었다. “즐거운 생활이 ‘운동’보다 ‘놀이’ 중심이어서 적정한 신체 활동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 그룹의 다수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학교 수업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니다. 체육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의 국가교육과정을 고치고 교과서를 새로 쓰려면 2~3년은 걸린다. 1982년부터인 4차 교육과정 이래 체육이 분리되는 것은 40년 만의 일이어서 진통은 불가피해 보인다. 교사 중에는 신체 활동 중 아이가 다쳤을 때 학부모가 민원할 우려와 안전하게 신체 활동을 할 공간 부족을 걸림돌로 꼽기도 한다.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저학년 담당 베테랑 교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경우 저학년 기피 등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전담교사 확충이나 안전한 공간 확충 등 섬세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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