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소쿠리 투표였다…49명 검찰행, 감사원·선관위 악연

박태인 2024. 5.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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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사전투표 마지막 날이었던 2022년 3월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 측이 준비한 코로나19 확진자 및 격리자용 투표용지 박스의 모습. 연합뉴스

선거관리위원회와 감사원의 질긴 악연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선관위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인지 여부다. 지난달 30일 감사원이 선관위 전·현직 직원 49명을 검찰에 넘긴 채용비리의혹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두 기관의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감사 과정에서 선관위 직원들이 채용 서류의 인적 사항을 까만 펜으로 지운 뒤 제출하는 등 거세게 저항했던 일화들도 뒷이야기로 전해졌다.

불화의 출발점은 지난 대선 당시 소쿠리투표 논란이었다.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뒤 감사원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선관위의 대선 사전투표 부실 관리에 대한 감사 계획을 보고했다. ‘소쿠리 투표’란 조롱까지 받는 등 선관위의 허술한 선거 관리 체계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당시 선관위가 “대통령 직속 기관인 감사원이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대해 감찰을 하는 건 위헌일 뿐 아니라 직무수행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당시 감사원은 “선관위는 적법한 감사 대상”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선관위와 감사원이 선관위의 감찰 범위를 둘러싸고 충돌한 건 직무감찰에 대한 감사원법의 모호한 조항의 영향 탓이다. 감사원법 24조 3항엔 직무감찰의 제외 대상으로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만 명시돼있다. 헌법 제97조에선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행정기관 및 그 공무원의 직무’로 열거했는데, 감사원법상 직무감찰 예외 대상에서 다른 헌법기관과 달리 선관위가 빠진 상태다. 이에 감사원은 감사원법을, 선관위는 헌법을 내세우며 감찰 범위 포함 여부를 다르게 해석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해 5월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긴급회의에 참석하던 모습. 연합뉴스

소쿠리투표 논란과 관련해선 감사원이 한발 물러섰었다. 선관위의 자체 점검 결과를 존중하는 선으로 협의를 본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선관위 고위직 자녀들의 특혜채용 의혹이 드러났을 때는 감사 필요성을 밝히며 물러서지 않았다. 선관위는 이때도 초기엔 감사를 거부했지만, 결국 여론에 떠밀려 특혜채용 감사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지난해 7월부터 50여명의 감사관을 투입한 감사원은 선관위의 채용 비리를 낱낱이 파헤쳤다. 현재로썬 두 기관이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셈이다.

두 기관의 갈등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상태다. 선관위는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에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의 결론은 이르면 올해 나올 전망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통제받지 않는 선관위의 문제점은 이번 채용비리의혹 감사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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