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진짜 멘붕"…17만명 태어났던, 40년 산부인과 폐업

황수연 2024. 5.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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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40년 역사가 지네요. 괜스레 슬퍼지네요.”

최근 한 여성은 경기도 성남의 분만 병원인 곽여성병원이 폐업 소식을 전한 걸 두고 인터넷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곽여성병원은 대표원장 명의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객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공지해 분만 중단을 알렸다. 원장은 “본원은 코로나 위기와 저조한 출산율을 겪으면서 경제적 운영 악화에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더이상 분만병원 운영이 힘들어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라며 “5월 26일부터 분만 및 제왕절개 출산이 불가하다”고 했다.

원장은 “병원을 믿고 진료받고 계신 많은 산모분께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해 죄송하다”라고도 덧붙였다. 또 “외래에서 검사 결과지를 요청하면 전원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라며 전원이 가능한 근처 병원도 안내했다.

병원에 다니던 임신부들은 날벼락 같은 소식에 당혹해 하고 있다. 2일 인터넷 맘 카페에 한 예비 산모는 “오늘 병원과 조리원 다 옮기고 왔다”라며 “이럴 거면 처음부터 다른 병원에 다닐 걸 그랬다. 출산이 두세 달밖에 안 남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진짜 멘붕(멘탈 붕괴)”이라고 썼다. 다른 이도 “20주쯤 분만 병원으로 선택하고 전원했는데 담당 원장이 35주(4월 23일)될 때까지 수술 날짜 조율도 하고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이번 달까지만 근무한다고 하더라”라며 “그러더니 대표 원장이 장문의 문자로 5월 말부터 분만 중단을 통보하더라”라며 당황스러워했다. 6월 출산 예정인데 분만을 못 하게 됐다는 한 임신부는 “무책임하다”라고 했다.

곽여성병원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분만 중단 소식을 공지했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이 병원 부설 산후조리원을 같이 계약한 경우 더 혼란을 겪는 분위기다. 한 예비 엄마는 “병원 폐업 사실을 알고 심란하다”라며 “무슨 일 생겼을 때 대처가 빠를 것 같아 병원 부설 조리원을 선택한 건데 산부인과나 소아과 연계가 안 되면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다른 이는 “조리원과 병원은 별개고, (조리원은) 재정 상태가 좋다고 한다”라며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삼스레 저출산 위기를 실감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여성은 “우리 때는 애 낳는 공장이라고 했다”라며 “진짜 출산율이 심각한가 보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도 “항상 대기실이 가득 차 주말에 하염없이 기다렸던 곳인데 믿기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를 이어 다닌 병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에 착잡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나도 여기서 태어나고 내 아이도 여기서 낳았는데 씁쓸하다” “성남의 역사가 진다”라면서다.

곽여성병원은 1981년 곽생로산부인과란 이름으로 개원해 40여년 분만 외길을 걸었다. 병원은 개원 이후 이곳서 17만900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10년간 전국서 분만 건수가 많은 상위 병원에 속해 있다.

임신부 이미지. 사진 셔터스톡.


새 주인이 병원을 인수해 수술실 등을 리모델링한 뒤 새로운 병원명으로 8월 초 다시 운영할 것이란 얘기도 돌고 있다. 병원은 이와 관련, “본원의 운영 예정에 대해서는 추후 공지를 통해 알려드릴 것”이라고만 밝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분만 진료를 하는 의료기관은 2012년 729곳서 2022년 461곳으로 10년간 36.7% 감소했다. 저출생뿐 아니라 위험 부담이 큰 분만을 의사들이 기피하는 것도 영향을 줬다. 최근 정부가 필수 의료 지원 차원에서 2600억원을 투입해 분만 수가 인상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의료계에서는 분만 사고로 인한 소송 위험 등이 달라지지 않으면 이런 정책이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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