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종교와 과학이 입맞출 때

신상목 2024. 5. 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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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미션탐사부장


최근 기독교계 안팎에서 창조론과 유신진화론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한 신학대가 소속 교수의 저서와 강의, SNS 게시글 등에서 유신진화론을 주장하고 소속 교단의 창조론과 맞지 않는다며 징계 절차에 나섰다. 그러자 국내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비판과 옹호의 목소리가 연달아 나왔다.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유신진화론이란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와 생명의 진화론상 역사를 수용하고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창조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이론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그 이후 세계는 자연법칙에 따라 발전됐다는 것이다. 반면 창조론에서는 유신진화론을 일반적인 진화론의 한 형태로 간주한다. 유신진화론이 성경을 상징적 또는 상황에 따라 해석하고 있으며 특별계시(성경)보다 자연 계시(자연법칙)를 더 중시한다는 점 등의 이유에서 반대한다.

창조론과 유신진화론 논쟁은 모두 기독교 내부의 쟁점이다. 주로 신학자와 기독교인 과학자, 목회자 사이에서 논의돼 왔다. 이번 논란은 신학자들의 학문적 자유와 교단 및 교회의 신앙이 충돌한 모양새다. 해당 신학대 교수 일부도 “교수들은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칠 학문적 자유가 있다”면서도 “유신진화론은 교회가 고백하는 창조신앙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논란이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교계에선 학자의 학문적 자유와 교회가 추구하는 신앙이 따로따로 전개돼 온 측면이 있다. 게다가 교단의 영향력이 학계에 파급되면서 민감한 이슈의 경우 일종의 ‘종교재판’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겪는 사이 기독교 신앙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은 점점 더 자리를 잃고 있다. 창조론자와 유신진화론자가 만나 대화하는 대신 정죄하고 이단시화하듯, 목회자 중엔 과학 자체를 이단시화하며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로선 창조론이 매우 중요하다. 창조론을 포기하는 건 기독교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여기에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의 고민이 있다. 창조론은 포기할 수 없는데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신 없이 우주를 설명하는 과학 혁명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탁월한 신학과 깊은 신앙적 내용이라 해도 21세기에 이해될 방법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에겐 감동을 주지 못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겐 과학으로 신앙을 입증하지 않고선 설득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도 교회 당국이 과학을 경멸하고 이단시한다면 교회는 이 사회 속에서 고립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김동건 영남신대 교수 같은 분은 “만약 교회가 창조론을 포기할 수 없다면 창조론과 과학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종말론 권위자 이광복 흰돌선교센터 목사도 “지금은 과학적 성과로 성경의 진리를 입증해야 할 시대다. 교회가 과학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외친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가 쏟아진다. 교양과학 서적도 인기다. 이젠 이과 출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접근할 수 있다. 쉽게 쓰인 과학책을 읽노라면 학창 시절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던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기독교인들에게 추앙받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도 그의 작품 ‘전쟁과 평화’에서 수학 방정식을 사용하며 군대의 힘을 묘사했다. ‘전쟁과 평화’ 제4권 3부에서 톨스토이는 “군대의 힘은 그 질량에 뭔가를, 미지의 x를 곱한 것”이라고 정의하며 무려 3쪽 분량을 할애했다.

교회학교에서라도 과학을 활용해 성경을 해석할 순 없을까. 가령 빅뱅이론을 창조의 순간이라고 설명한다든가,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원자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할 때 사용해보면 어떨까. 자연 물질이 변형돼 원래로 돌아갈 수 없거나 퇴화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는 결국 종말이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는가. 물질의 이중성 또는 중첩 현상이 특징인 양자역학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한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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