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책이 뭐길래

2024. 5. 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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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됨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문화의 유무를 근거로 든다.

그리고 글자로 역사를 써서 남긴 '책'이라는 물건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수의 운명이 때로는 자기가 부른 노래 제목을 따른다는 말이 있듯 책 제목도 잘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헌책방에선 여전히 절판된 한 권짜리 '혼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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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됨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문화의 유무를 근거로 든다. 그중에서도 언어와 글자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고유한 문화다. 인간이 일구어 온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도 바로 글자다. 그리고 글자로 역사를 써서 남긴 ‘책’이라는 물건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종이에 글자를 적어 엮은 단순한 물건이다. 어쩌면 그저 종이뭉치일 뿐이다. 이렇게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책이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과거를 들춰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우선은 독보적인 베스트셀러 ‘성경’을 예로 들어 보자.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으로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으로 성경은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모든 게 넘치도록 풍족한 현대사회인데도 책 절도는 끊이지 않는다. 책을 훔치는 이유도 여러 가지인데, 재미있게도 제목 때문에 많이 도난당하는 책도 있다. 미국 작가 애비 호프먼이 1971년에 쓴 책 ‘Steal This Book(이 책을 훔쳐라)’은 무정부주의 행동지침에 관한 내용인데 오늘날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 중 하나다. 가수의 운명이 때로는 자기가 부른 노래 제목을 따른다는 말이 있듯 책 제목도 잘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면 최명희의 ‘혼불’이 원래 단행본 한 권짜리 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이 소설은 1981년에 신문사 장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돼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그 후 이야기를 덧붙여 1995년까지 신문 연재를 이어나가다 작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미완성으로 남았다. 연재분은 열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그런데 헌책방에선 여전히 절판된 한 권짜리 ‘혼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최명희는 병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순간에도 글을 쓰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을 자식처럼 아끼곤 한다. 완성도를 높이고자 몇 번이고 집필과 수정을 반복하는 일은 예사다. 심지어 책이 출간된 뒤로도 고쳐서 새로 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 작품에 자그마치 10회나 개정판을 냈다면 어떨까.

수능시험에도 자주 인용되는 소설 ‘광장’은 최인훈의 대표작으로 1960년 잡지에 연재하며 처음 세상에 나왔다. 작품은 호평을 받았고 즉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최인훈 자신도 이 소설에 큰 애정을 품고 있어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열 번이나 개정판 작업에 몰두했다. ‘광장’을 좋아하는 독자 중에는 연도별로 달라진 개정판을 사 모으려고 헌책방에 발품을 파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책방에서 일하며 책을 쓰지만, 때론 도대체 책이 뭐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읽고 쓰고 가지려고 애쓰는지 궁금하다. 그만큼 소중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것도 있으니 책을 읽고 얻은 삶의 지혜가 그것이다. 어쩌면 그게 책의 가장 신기한 부분이 아닐까. 작은 책 한 권이 때론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뒤바꿀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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