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우리 아이, 의료파업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이슬 2024. 5. 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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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조직검사를 할 수 있을까... 의료사태 장기화 속 희소난치질환 가정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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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기자]

 얼마 전 새로 맞춘 특수신발. 발 크기와 모양이 완전히 달라 6개월에 한 번씩 신발을 맞춰야 한다. 신발 입구의 둘레 차이로 다리 부피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
ⓒ 서이슬
나의 아이는 10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진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을 안고 산다. 정맥과 모세혈관, 림프관의 이상 증식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발과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두 배 이상 컸고, 발등과 발바닥, 발가락의 생김이 일반인과 완전히 다르며, 오른쪽 다리뼈가 과다 성장해 양 다리 길이 차이가 4cm가량 난다. 다리 길이 차이로 인해 척추측만증이 생겼고, 오른쪽 종아리는 피딱지와 물집으로 가득하다.

외국 유학 시절 낳은 아이였기에, 아이는 5세가 될 때까지 해외의 아동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곳에서 아이는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1년 전, 우리를 5년 넘게 봐오던 혈관 전문의가 내 손에 논문 한 부를 쥐여줬다. 당시 막 1상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된 신약에 관한 논문이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이제 겨우 1상 임상시험을 진행했을 뿐인 신약에 대해 신중하자는 입장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 유학을 마치고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임상시험 중인 약물을 섣불리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 약물에 대한 정보를 한국에 있는 환자들에게 전달했다.

당시 나는 온라인 카페 형태로 한국 환우회를 조직하고 있었는데, 해당 논문을 카페에 올려 이 약물을 한국에서도 쓸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 후 이 약물은 2019년부터 한국의 환아들에게 '치료목적사용승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일부 공급되고 있다.

문제는 이 약물을 쓰려면 유전자 검사를 먼저 해야 한다는 데 있다. 2018년 처음 이 약물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가 이 약에 관심 가질 날이 과연 올까 싶었는데, 이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어느새 사춘기 초입에 접어든 아이는 한국에 온 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원인 불명의 급성 감염에 시달려왔다. 고열과 통증을 호소하며 걷지 못하는 날이 늘던 2022년과 2023년을 거치며 신약을 시도해 봐야겠다,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2023년 말의 일이다. 그 와중에 일이 터졌다.

너무나도 척박한 한국의 의료환경  

"유전자 검사 하시죠."

지난 2월 27일, 몇 달을 기다렸던 유전의학과 방문일에 의사는 내게 말했다. 한눈에 봐도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아이이기에, 그간 의사 쪽에서 먼저 몇 번 권유했는데도 마뜩잖아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하니 의사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단서가 붙었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는 전공의 파업이 끝나야 가능하실 거예요."

2월 20일부터 시작된 전공의 이탈의 여파였다. 유전자 검사가 전공의 영역이었기에 전공의가 없으면 검사 진행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날 원무과에서는 우선 4월 중순으로 날짜를 잡아주었는데, 만일 전공의 이탈이 그때까지 해결이 안 되면 연기될 것이라 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아이의 조직검사 날짜는 5월 말로 미뤄졌으며, 이 역시 다시 미뤄질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특정 유전자변이를 검출하기 위해 시행되는 유전자 검사는 결과를 받기까지 수개월 걸린다. 해당 유전자변이가 검출되었다는 결과를 받고서도 식약처에 '치료목적사용승인'을 내 최종 허가를 받고, 약을 들여오고, 실제 투약을 시작하기까지 다시 수개월 걸린다. 그 사이에 환자가 아프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실제로 나의 아이는 작년 12월에 이어 올해 3월에도 급성 감염을 한 차례 더 겪었다. 급성 감염이 오면 항생제를 열흘 가까이 먹으며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감염이 올 때마다 다리가 뜨거워지면서 크게 붓기 때문에, 안 그래도 왼쪽보다 두 배 넘게 큰 다리가 더 커져 지켜보는 엄마로서는 가슴이 미어진다.

그나마 아직은 경구 항생제가 듣고 있지만, 이 선을 넘어서면 입원해서 주사로 항생제를 맞아야 한다. 초유의 의료대란 속에서 입원까지 갈 일은 아니었으니 다행이지만, 그게 과연 다행이라며 좋아할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이런 때는 아프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난치성 질환,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 암 등 계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한 사람 중에는 지금 이 순간 검사와 치료가 절실한 이들이 있다. 우리 환우회 환자들을 주로 보는 의사는 고된 일정에도 지금까지 병원을 지키고 있지만, 그의 의지와 선한 마음에 기대기에는 한국의 의료환경이 너무나도 척박하다.  

무엇보다 절실한 건 환자중심 의료환경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에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며 한국 병원의 진료환경에 매번 좌절했다. 두 진료실에 동시에 환자를 들여 중간 문을 여닫으며 오가는 바쁜 교수들 앞에서, 아이의 진행상황과 치료계획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할 염치는 없었다. 매번 다른 과를 개별적으로 예약해서 이 증상 따로, 저 부위 따로 논의해야 하는 게 힘에 부쳤다.

몇 년 전까지 다니던 해외의 아동전문병원에서는 대여섯 진료과의 교수진들이 시간을 맞춰 아이의 진료기록을 진료실 옆 방에서 함께 본 다음, 진료실로 다 같이 들어와 다음 치료계획을 놓고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 양육자와 함께 논의했다. 우리 같은 희소질환 환자들에겐 이런 '협진' 체계가 정말 중요한데, 한국에서 이런 일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비아냥거리듯 말한다. 그럼 그 좋은 해외 병원 다니지 뭣 하러 한국에 왔느냐고. 한국만큼 건강보험 잘 돼 있고 의료진 기술 좋은 데가 있는 줄 아느냐고. 그 좋은 해외 병원에서 돈 얼마나 썼는지 밝혀보라고.

그러나 건강보험이 아무리 잘 돼 있고 의료진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환자와 의사가 만나는 공간이 한낱 컨베이어 벨트 또는 북적이는 쇼핑몰에 불과하다면 그 자랑스러운 제도와 인적자원도 소용없다. 실제로 해외의 '그 좋은' 병원에서 우리는 무상진료 대상자였고, 한국에서 우리는 산정 특례 대상자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차이는 무상진료와 유상진료의 차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정부와 의사 집단 간 갈등으로 인해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지 못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 지금 이 사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는 우리 아이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이 있다. 2021년 기준 '국내 등록 희귀질환자'는 5만 5874명에 이른다. 국립보건원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희귀질환 종류는 대략 7000가지. 이중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거나 증상 조절이 가능한 질환은 5% 정도라고 하니, 나머지 환자들은 모두 그때그때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입원실을 오가며 살아왔을 것이다.

의정 갈등 70일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 그 사람들의 안위를 바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 나의 아이는 과연 5월에 조직검사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 더 나은 의료환경을 만나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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