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빚쟁이로 살라는 정부, 정말 너무합니다

안상미 2024. 5. 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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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임기 내에 전세사기특별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세요

[안상미]

 지난 4월 30일, 국회 앞에서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 참여연대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입니다. 정부 정책의 제도적 결함으로 발생한 대규모 피해사태인 것을 이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5월 2일,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었음에도 정부와 여당은 아직도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막고있습니다. 겉으로는 피해자에 공감하는 척하고 민생을 최우선 과제라 이야기하면서 내놓는 변명과 대책들은 실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전 정권인 문재인 정부의 탓이라고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지 않았으면 전세사기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전세사기는 미약한 임차인의 권리와 무자본 갭투기를 가능하게끔 한 제도적 환경이 만들어낸 것으며, 오랫동안 축적된 부동산 정책의 결과입니다. 관리, 감독하지 않은 정부는 여기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할 주체입니다. 변명만 하고 일을 할 수 없다면 그 자리를 비워줘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인간의 거래라고요? 부동산 정책은 개인이 만들 수 없습니다. 정부가 주관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연이어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것 역시 반증입니다.

모든 사기는 평등하다고요? 말씀드렸듯이 정부가 만든 제도를 이용한 사기인데 평등이라는 단어를 감히 여기에 붙이는 것은 망발입니다. 평등해야 하는 것은 정부, 은행, 가해자들이 져야할 책임일 것입니다. 

사기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안 좋은 선례라고요? 아니요, 전세사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허그(HUG, 주택도시보증공사)입니다. 이미 허그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대신 돌려주고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위변제를 하고 있습니다. 기존 법률에 따라 전세보증보험을 통한 세금 투입은 하고 있으면서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한 세금 투입은 안 된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 것입니까.

또한, 기업의 부동산 투자 실패와 은행의 경영 실패로 인한 손실에는 거대한 세금을 투입하고 부자들에겐 감세까지 해주면서 전세사기 문제만 안 된다는 정부와 여당, 참으로 뻔뻔하고 비논리적인 주장이 아닐수 없습니다. 전세사기와 같은 사회적 재난이야말로 세금을 사용할 적소입니다.
 
 지난 4월 30일,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 참여연대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저희에겐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피해자들의 고통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특별법에서 지원하는 대출조차 기관마다 안내와 이해가 다릅니다. 법원은 지금도 경매중지 신청을 더 받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5월 13일이면 피해주택이 매각될 것입니다. 지금의 특별법은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앞으로 20년간 빚쟁이로 살라는 것 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구제 후회수'로 최소한의 숨통이라도 트일 수 있게 특별법을 개정하자 했더니 정부는 다시 한 번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5조 가까이 세금이 든다는 거짓말까지 일삼고 있습니다. 정부가 계산한 5조는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전액 보상한 뒤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한 뻥튀기 계산법으로 부풀려진 금액입니다.

특별법 개정안에서 말하는 '선구제 후회수'는 임차인의 보증금 채권을 평가금액에 따라 매입하고, 이를 다시 경·공매를 통해 회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증금 전액을 보상하는 것도 아니고,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 만큼 모든 피해자가 '선구제 후회수'를 신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입니다. 즉, 정부의 '수조원 혈세 투입' 주장은 근거 없는 엉터리입니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꼭 필요한 이유

전세사기 피해자의 입장에서 특별법 개정안의 '선구제 후회수'가 꼭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각종 사실 확인, 민형사적 조치를 하러 직접 뛰어다녀야 합니다. 임대인의 금융관계, 가족관계, 은행, 법원, 경찰서, 인터넷에 퍼진 부정확한 정보 등을 파악하고, 수임료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변호사와 법무사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느라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소모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직장을 잃기도 하고, 끝이 없는 빚을 감당하느라 건강을 잃기도 하고, 결혼과 출산 계획을 포기하거나 불화로 가족을 잃기도 합니다. '선구제 후회수'의 진정한 효용은 이 과정을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정부가 대리한다는 데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재정이 소요됩니다. 피해자들의 보증금 채권을 너무 헐값에 사면 실질적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최우선 변제금(보증금의 30%)에 미달하는 채권도 최우선 변제금 수준으로 매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것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중 가장 먼저 돌아가신 분이 최우선 변제금도 못 받는 처지였다는 것, 법률에서 임차인 보호를 위해 최소한 최우선 변제금만큼은 보장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가 진행한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에 투입되는 재정은 최대 5000억 원 수준입니다.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경매장을 쫓아다니고 고발장을 내려 경찰서를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사건을 수임해 제대로 조사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부정확한 정보와 감당할 수 없는 부채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마십시오. 국민인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일상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의무이며 우리의 재정을 사용할 적소입니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제정될 당시부터 전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현행법상 보호되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특별히'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6개월마다 개정을 약속한 시간이 두 차례 가까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4월 10일 총선에서 민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1대 국회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신속히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이후에도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후순위, 다가구, 신탁사기 등을 지원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안상미 공동위원장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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