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대학에서 본 텀블러 세척기, 우리도 좀

곽지은 2024. 5. 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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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을 적게 쓰는 게 편리한 환경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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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말>

[곽지은 기자]

 개인 컵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10% 할인을 제공한다는 카페 안내문.
ⓒ 곽지은
"개인컵 이용 고객께는 할인해 드립니다." 

최근 많은 카페에서 개인컵 이용 고객에게는 할인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커피를 달고 사는 대학생인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회용품 사용도 줄이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니 일석이조다.

과거에는 환경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자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좋으니까'라는 마음으로 보다 자발적으로 텀블러를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디자인의 텀블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스타벅스에서 MD(Merchandise, 홍보용 상품)로 출시하는 텀블러는 한정판 제품들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누가 봐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한창 환경 보호를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자는 열풍이 일 때 기업에서 과도하게 만들어내는 텀블러가 과생산·과소비를 조장해 오히려 환경파괴를 부추킨다는 비판도 존재하곤 했으나, 텀블러가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일상 용품의 범주에 들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본다.

유튜브에서 '잘 산 템', '삶의 질 향상템' 추천 콘텐츠에도 종종 텀블러가 등장하곤 한다. 추천을 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보온이 잘 된다,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용량이 크다, 가볍고 들고 다니기 편리하다 등이 좋은 텀블러의 기준으로 꼽힌다.

요즘 20~30대 사이에서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은 습관으로 언급되면서, 500mL 가량 큰 용량의 텀블러에 물을 가득 받아 곁에 놓고 틈틈이 마시면 좋다는 팁과 함께 대용량 텀블러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크기가 커도 무겁지 않아야 하며, 찬 음료를 담았을 때 겉면에 물방울이 맺히지 않도록 이중벽으로 된 것이면 더욱 좋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덧붙이자면, 입구가 넓고 설거지하기 편리한 것이 좋다. 내 입에 닿는 것이니만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텀블러를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도 씻기 쉬워야 좋다. 디자인은 예뻐도 안쪽까지 설거지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으면 손이 잘 가지 않게 된다. 나 또한 설거지하기 어려운 구석에 물때가 끼어서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된 텀블러가 여럿 있다.

설거지와 관련해서 텀블러를 이용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바로 외출해 있는 동안에는 씻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커피나 음료수를 담아 마시고 나면 헹구어야 다른 음료를 담을 수 있는데, 외출 중에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생 입장에서도 학교에서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골치다. 카페에서 텀블러에 음료를 주문할 때 텀블러 안에 다른 음료를 마신 흔적이 남아 있다면 한번 헹궈 달라고 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시던 텀블러를 내밀고 세척을 요구하기도 민망한 노릇이다. 
 
 아일랜드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교내 카페에 있던 텀블러 세척기.
ⓒ 곽지은
 
지난 학기 아일랜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내가 다닌 학교의 카페테리아에는 텀블러 세척 머신이 있었다. 미니 식기세척기 같은 구조로, 30여 초 만에 텀블러를 세척해주는 이 기계를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회용 컵 대여 시스템이 잘 정착되어 있었는데, 주문 시 보증금 2유로(한화 약 3천 원)를 내고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는 방식이다. 보증금을 낼 때와 받을 때 모두 현금 또는 카드 결제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며칠이 지난 뒤에 반납해도 문제없었기 때문에 편리했다.

교내 카페는 학교 구성원들이 매일 찾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의 도입이 비교적 용이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개인 물통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물통에 아직 물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카페테리아에서 빌려주는 다회용컵을 이용하면 편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시스템을 활용했다.

우리나라에도 일부 대학교에서는 교내 카페에 다회용컵 보증금제를 도입하고, 텀블러 세척 머신을 구비하는 등 다회용컵 사용 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학교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일부 학교의 경우에만 그치는 것이 아쉽다.

지난해 세종시와 제주도에서 시범 도입된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관해 실효성이나 형평성 측면에서 부정적 반응이 적지 않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래 쉽게 쓰고 버리던 일회용컵을 보증금을 받기 위해 반납 장소까지 들고 다녀야 하는 낯선 번거로움을 겪어야 하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보증금제를 시행하지 않는 가게를 선호하다 보니 가게 주인 입장에서도 피해를 겪는 등 불편함이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텀블러를 이용하고 일회용컵을 적게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로 필요한 것은 플라스틱을 적게 쓰는 것이 편리한 환경이 마련되는 것 아닐까.

현재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정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얼마 전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캐나다 오타와에서 협약 내용을 논의하는 정부간협상위원회 4차 회의가 진행되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유통, 소비, 그리고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관리하기 위한 협약이다. 올해 11월, 부산에서 마지막 5차 회의를 거쳐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제정될 예정이다.

일회용 및 수명이 짧은 플라스틱 제품과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된 제품은 특히 환경적으로 유해하다. 미세 플라스틱은 생물체 내로 스며들어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고, 병원체를 옮기기도 한다. 뱃속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차 죽은 채 발견된 고래가 큰 충격을 주었던 것처럼, 생물들이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해 삼키고 결국 굶어죽는 경우도 발생한다. 미세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큰 플라스틱 조각에서 떨어져 나와 만들어진 것이고, 플라스틱 폐기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자체로 인한 오염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과 처리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하면서 기후변화 또한 앞당기고 있다. 이렇게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의 3.6퍼센트를 차지한다(UNEP, 2024).

우리 사회에서 필수적인 물질이 된 플라스틱을 당장 사용을 중지하자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환경에 악영향이 큰 것들부터 순차적으로 줄여보자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미세 플라스틱을 첨가한 제품,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그만 사용하고, 플라스틱을 보다 적게 생산하고 다 쓴 폐기물은 잘 처리하자는 것에 국제사회가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것에 모두가 합의하고 동참하는 미래는, 아직 구체적으로 상상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단순히 팩 음료에 부착된 플라스틱 빨대가 종이 빨대로 바뀌는 것보다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이 뒷받침되고 있으니 충분히 변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불편하지만 환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까운 마음으로 썼던 텀블러가 이제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처럼, 환경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우리는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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