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에서 살아남은 이 나무... 보길도의 보물
[완도신문 유영인]
격자봉
넓은 바다 큰 물결에
우뚝 서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네
자미(紫薇)에 있는 임금의 뜻 바루고자 하면
먼저 정도(正道)를 찾아 치격(恥格)해야 하리
- 고산 윤선도 -
1637년 이월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온 나라가 어려울 때 판옥선(板屋船) 한척이 제주를 향해 남해의 창파를 가르고 있었다. 이 배에는 세파에 지친 한 선비가 타고 있었으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였다.
고산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솔을 이끌고 봉림대군을 구하고자 강화도(江華島)로 향했으나 오늘날의 안면도(安眠島)부근에 다다라 강화도가 함락되고, 인조가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성하지맹(城下之盟)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고산은 남은 생을 은둔하기로 결심하고 제주로 향하던 중 겨울 파도가 심하게 일자 보길도의 대풍구미(對風口尾)에 배를 정박하였다.
길지의 섬 보길도
대풍구미에 정박한 고산 일행은 황원포(황원포)로 다시 배를 몰아 뭍에 오르고 산세를 둘러보니 굳이 제주까지 갈 필요가 없는 길지의 섬 보길도(甫吉島)였다.
"園中草木春無數″ 원중초목춘풍수 (정원의 풀과 나무는 봄이 오면 그 수를 알 수 없건만),
″只有黃楊厄閏年″ 지유황양액윤년(오직 황양목(회양목)은 윤년에 재앙을 당한다네.)"
인쇄문화 발전시킨 회양목
회양목의 더디 자람을 말했다.
"여기서 평생을 살었어요. 그란디 저그 마당에 회양목이 내 삶을 이야기 해 주요, 회양목은 잘 안 커요. 내가 지금 야든이 넘었는디 우리아부지가 산에 나무 하로 갈 때 따라가서 적자봉 정상 부근에 누룩바위라고 큰 바위가 있어요.
거그서 캐온 나무가 저 나무인디 그때 아부지 말씀이 한 40~50년은 컷을 것이라고 그랬어요, 내가 한 70년을 키웠으니 저 나무도 100년이 넘었어요, 내가 캐서 가져올 때 굵기가 손가락 같이 가늘었어요, 오랫동안 공들여서 키우니까 지금은 수형도 좋고 남들이 나무가 멋지다고 팔라고 그란디 안 폴고 있어요.
"나는 스무살 되던 해 정월에 당사도(唐寺島)서 여그로 시집을 왔는디 그때 어른들이 또가리(똬리의 전라도 사투리)하고 몸빼(일상생활의 현대화가 이루어지기 전 여성들이 일할 때 입는 일반적인 바지로 입고 벗기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를 꼭 해가라고 그래, 그란디 나는 안 해갔고 왔어, 왜근고니 하먼 내가 시집올때만 해도 당사도서 한 인물 했거등, 그란디 부용리로 시집가먼 해변 산중이라 날마다 적자봉서 땔나무를 해다 노화에다가 폴아야 된다고 그래, 그래도 자존심 때문에 또가리 하고 몸빼는 안 해 왔는디 나무는 날마다 해 날랐어.
그때 적자봉이 어찌께나 나무를 하든지 민둥산 이었어 개인 산에서는 땔나무를 못해 그랑께 동내산에서 나무를 한디 산꼭대기에 가먼 간장주름한 회양목이 징하게 많애, 또 산 중턱 곳곳에 회양목 군락지가 있었는디 그란디 불쏘시게가 안된께 그것은 안비어 와.
내가 시집와서 본께 그때는 집집마다 회양목을 케다가 화단에다가 심궈놨어, 둥그랗게 분재를 많이 맹글었어 또 여그 초등학교에서도 화단을 가꾼다고 회양목을 가져오라고 그래, 우리 애기들도 학교에 나무를 내야된다고 산에가서 회양목을 모다 케오고 그랬어.″
적자봉에서 굴취하여 70년을 키웠다는 윤성하씨의 회양목이 잘 자랐으면 하는 소원을 빌며 펜을 놓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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