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숙해야 할 곳에서의 울음소리

공병선 2024. 5. 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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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은 그 어느 곳보다 정숙해야 하는 곳이다.

국회법에 따라 질서를 어지럽혔을 경우 국회의장이 경고나 제지, 더 나아가 퇴장을 명할 수 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본회의장에 앉아있던 국회의원들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발언을 듣지 않고 머리를 돌려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어느 경호원도 뛰어와 제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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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은 그 어느 곳보다 정숙해야 하는 곳이다. 국회법에 따라 질서를 어지럽혔을 경우 국회의장이 경고나 제지, 더 나아가 퇴장을 명할 수 있다. 하지만 체감상은 그보다 더 숨죽여야 한다. 예를 들어 국회에 처음 출입하게 된 기자들이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가 경호원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2일 오후 본회의장 방청석에서는 소란이 발생했다. 그런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채 상병 특검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빨간 모자와 티셔츠를 입은 해병대 예비역들이 고개 숙여 울기 시작했다. 머리가 희끗한 한 예비역은 통곡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본회의장에 앉아있던 국회의원들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발언을 듣지 않고 머리를 돌려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어느 경호원도 뛰어와 제지하지 않았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빨간 모자를 쓴 이들은 본회의장에서 나오자마자 서로를 안으며 위로했다. 이들이 고생했다며 위로한 건 단순히 채 상병이 숨지고 10개월이란 오랜 시간이 걸려서가 아니다. 그들이 생각한 가치가 무너져서다. 자신을 해병 214기라고 밝힌 이근석씨는 눈물을 흘려 빨개진 눈으로 호통쳤다. "나는 월남전에 참전해 겨우 살아 돌아온 사람으로 어느 정당 소속도 아닙니다. 여야를 떠나 정의로운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잘못된 건 바로 잡아야 합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채 상병 특검법 통과와 함께 야당과의 협치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봤을 때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공수처와 경찰이 본격 수사 중인 사건임에도 야당 측이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는 것은 진상 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9일부터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특검법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7%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참패 후 사과와 함께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약속했다. 거부권부터 시사하는 것은 협치의 정신에 어긋나는 게 아닐까.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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