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 이광사가 그리워 달려왔습니다

완도신문 정지승 2024. 5. 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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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 정지승]

ⓒ 완도신문
지난달 27일, 새벽 댓바람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오래전 알고 지낸 이들 중 내 젊은 시절 몇 차례 함께 문화유산 모임을 가졌던 지인 중 한사람이었다.  

통화 중에 대뜸 그는 "완도군 홈페이지에 고금면 묘당도에 있는 월송대에 이순신의 시신을 왜 아직도 83일 모신 걸로 되어 있느냐"로 시작해 "18억 원 이상 들여서 신지면에 원교문화의 거리와 생가복원을 해놓고 관광안내에 나오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설마, 그럴리가요?" 했다. 지난해 고금면사무소에서 이순신 관련 학술회의가 진행된 이후로 완도군 행정에서 월송대 안내판을 발 빠르게 교체했다며 맞받아 쳤다. 한참을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그는 원교 이광사 관련 자료가 홍보 홈페이지에 없어서 신문기사만 보고 회원들과 완도에 답사 오겠다고 했다. 순간 아찔했다. 낭패였다. 그동안 지역의 문화 관련 기사를 줄곧 써오던 내 자신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완도에 답사 일정을 잡은 그들은 해남에서 문화유산답사 모임을 결성한 회원들이다. 예전에 활동하던 회원들과 2년 전 그동안 뜸했던 모임을 재결성해 조직적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 모양이다. 같이 활동하자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회원수가 60여 명이란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외부에서 지역으로 내려와 터전을 잡은 이들이다. 

지역의 문화유산에 진심인 그들은 왜 그렇게 열정적일까? 타 지역에 와서 생활해 보니 그 지역의 특색을 알아가는 재미와 문화적 습성을 이해함으로써 지역 사회를 올바로 보는 눈이 뜨이는 것이라 짐작됐다.

나 역시도 같은 처지이다 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간다. 완도에 내려와 줄곧 지역의 문화·역사와 관련된 조사만 하고 있다. 이제는 지경을 넓혀서 사람들의 생활습관 등에 눈을 돌리려 하지만 그래도 기본 바탕이 탄탄하려면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먼저 접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지역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보다도 완도(우리 지역)에 대해서 더 잘 아느냐"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냥 웃어넘긴다. "내가 (지역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답변을 애써 참는다. 그렇다. 내가 지역 사회를 알면 얼마나 알까마는 그동안 지역에 적응하려고 제일 먼저 완도의 문화영역을 섭렵(?)했다고나 할까? 섭렵이라는 표현이 다소 건방진 표현이겠지만, 그래도 어느 누구에게라도 뒤처지지 않으려 지역의 문화유산을 많이 조사했고, 늘 곳곳을 누비고 다니고 있으며, 궁금한 것은 묻고 또 물어보고, 지역 내 문화 관련 서적은 모조리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완도군지, 각 지역 면지정도는 아예 달달달 외워 버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림잡아 10번 정도는 읽어가니 어디에 무슨 내용이 있고, 어디에 오류가 있는지 정도는 금방 파악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만의 비책이라면 비책이다. 나에게 질문했던 그들도 그 정도 하면 훨씬 지역을 더 잘 알지 않을까? 반문해 본다. 나 역시 보통의 사람들처럼 지지리도 글쓰기가 싫어서 마감직전에 어찌어찌 휘갈기다가 편집실에 넘겨준다. 그것은 무언의 보복심리인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방법을 사용하다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이제는 시대적 흐름을 느껴 본다. 

지식이 차고 넘치면 머리가 아파올 수 있으니, 흐름파악을 먼저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 하겠다. 책에 있는 내용을 달달 외워본 들 활용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에서다. 이 정도만 해도 일반인들이 느꼈을 때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그런데, 요즘은 수학의 공식처럼 대입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이해하려고 연습한다. 합집합과 교집합의 형태로, 가끔은 이차 방정식의 형태로, 건너갔다 건너왔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활용범위가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 그런 것 같다. 곁에 있는 어느 누군가가 나의 스승을 자처하면서 언젠가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도 같은데, 여전히 그가 총기 있는 모습인지는 알 수가 없다. 너무 쉬운 얘기를 어렵게 만든 것 같아서 정신을 가다듬는다.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지역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면 지역의 자원이 활성화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지역 사람이 먼저 자기 지역의 관광자원을 찾아가고 아끼면 지역은 스스로 활성화 되고 발전한다는 말과 일맥상통이다.
 
ⓒ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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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종종 신지도에 간다. 그날은 바로 원교의 숨결을 느끼고 싶을 때다. 

그럴 때면 응당 바람찬 동고리 숲속에 자리를 잡는다. 비바람 불고 폭풍우가 내리칠 때면 더욱 좋다. 몇 시간 솔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넋을 잃고 푹 빠져 보고나면 시끌시끌한 마음이 말끔해진다. 달빛 좋은 어느 날엔 근처 갯바위에 비쳐드는 달빛 물결에 넋을 놓는다. 그곳에서 나는 원교와 교감을 자주 한다. 매양 이런식이다 보니 내 마음 속에 원교 이광사는 얼마나 사무친 사람일까?

또 한 번은 군외면 갯길을 걷다가 어느 민가에 훌쩍 커져있는 아름드리나무를 발견한다. 나무의 사연을 물어보려고 서너 번을 주인을 만나려는데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곳을 지나다가 너댓 번을 찾아간 뒤 마침내 집주인을 만나서 나무에 얽힌 사연을 물었다. 80년 묵은 상왕산 자락에서 가져온 완도호랑가시란다. 그곳에서 나는 또 천리포수목원의 민병갈 원장과 교감한다. 매번 이런식이니 완도에서의 나의 삶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 가끔 만나는 나쁜 심성의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완도는 매력이 충만한 곳이다.  

그런데, 왠걸 편집방향과 다른 의도성이 다분한 기사를 써 달라는 청탁이 가끔 있다. 그 말을 못 들은 척 단칼에 베어내지만서도 그들은 지역 사회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조심한다.

원교 이광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해남 사람들은 각별하다. 이순신도 마찬가지다. 대흥사의 원교 글씨에 얽힌 이야기가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고 명량대첩의 성지의 승전보가 늘 가슴에 울리기 때문이다. 해남으로 내려와 터전을 삼은 황시인은 틈만 나면 지인을 데리고 청해진의 성지 장도를 다녀간다. 시인이 말하기를 장도는 전쟁터라기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표현을 쓴다. 장도에 조성된 석축은 어느 때 보더라도 아름다운 선의 매력이 눈에 선하다. 그 감성을 조금이나마 느껴봤기에 장도를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머문다. 

완도가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라는 건 이런 감성에 젖어 주변을 찾아보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이제는 곧 마음속에 사무치는 원교 이광사를 추모하는 문화축제라도 기획해 볼 요량이다.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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