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대증원 재판, 의대생 자녀 둔 판사는 뺀다

윤지원 2024. 5.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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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 서울고등법원장이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법원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생 등이 낸 ‘의대 증원 금지’ 가처분 신청이 1심에서 무더기 각하된 뒤 줄줄이 항고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서울고등법원이 의대생 자녀를 둔 재판장은 관련 사건을 맡지 않도록 내부 방침을 세웠다. 의·정 갈등이 한껏 과열된 상황에서 이해 당사자와 혈연관계에 있는 법관이 사건을 맡을 경우 일 수 있는 ‘공정성’ 시비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당장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심문을 두고 여권에선 “편파적”이란 뒷말이 나왔다. 구 부장판사가 “항고심 판단이 나올 때까지 의대 모집 정원을 최종 승인하지 말라”고 정부의 속도전에 제동을 걸자, 1심의 잇따른 각하 판단과 달리 재판부가 원고 측에 우호적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구 부장판사의 자녀가 의대를 다니는 것 아니냐”(국민의힘 관계자)는 의구심이 흘렀다.

서울고등법원 지난달 30일 정부에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관련한 과학적 근거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한편 의대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결정전까지 최종 승인을 보류해 줄 것을 당부했다. 뉴스1


그러나 서울고법 관계자는 “진작에 의대생 자녀를 둔 재판장을 피해 사건을 재배당했다. 근거 없는 사법 불신”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이 사건을 최초 배당받았던 행정재판부 소속 A 재판장이 지난달 중순 “내 자녀가 의대생이라 사건을 맡는 게 저어된다”며 제기한 우려가 받아들여져 사건을 재배당받은 게 구 부장판사의 행정7부라는 것이다.

의대 증원 집행정지 사건들이 줄줄이 2심으로 이어지면서 서울고법 행정 재판부 재판장들은 일찍이 ‘이해당사자가 친족 관계에 있는 재판장은 소송을 맡지 않는 게 좋겠다’는 공감대를 이룬 뒤 윤준 원장에게 이런 방침을 보고했다고 한다. 2일까지 서울고법에 접수된 총 6건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에서 총 5건이 이런 이유 등으로 행정4부, 7부, 8-1부로 재배당됐다고 한다.

통상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전자시스템에 따라 재판부에 자동 배당되는 구조이지만, 예외적으로 ‘배당된 사건을 처리하는 데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어 재판장이 그 사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재배당 요구를 한 때’(‘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 14조 4호)는 재배당을 거쳐 재판부를 바꿀 수 있다. 서울고법은 의대생 자녀 존재가 관련 사건 처리에 ‘현저히 곤란한 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의 내년도 모집 정원을 결정하는 지난달 29일 오후 충북 청주 충북대에서 의대 교수와 학생 등 200여 명이 대학본부 앞에서 의대증원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의대생 자녀’를 둔 이유로 의대 증원 집행정지 관련 사건 재배당에 나선 것은 서울고법이 처음이다. 앞서 1심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도 ‘재배당 룰’을 두고 고민했지만 이런 ‘이해관계 상충’ 여지를 가진 재판부가 없었던 관계로 재배당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워낙 현재 정부와 의대생들 간 갈등이 첨예한 만큼 자칫 필요 없는 구설을 초래할 수 있는 ‘이해 상충의 외관’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며 “현재 관련 이슈가 있으면 재판장들이 알아서 재배당 요청을 하고 이를 수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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