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삶이 실린 말의 무게

김현길 2024. 5. 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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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처음 보는 저자의 낯선 책을 산 건 순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목을 봤기 때문이다.

"몸이 못 가니 대신 말이 가겠노라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정리한 글로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다." 그렇게 첫 책을 낸 선생은 한국을 떠난 지 20년 만인 1999년 6월 귀국한 후 2002년 1월 영구 귀국했다.

선생의 말이 힘을 가진다면 그것은 그의 말에 삶이 실려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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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길 온라인뉴스부 차장


고교 시절 처음 보는 저자의 낯선 책을 산 건 순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목을 봤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적잖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빠리’와 ‘택시 운전사’가 한데 묶이는데 ‘나’가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니. 그렇게 기자는 책이 출간된 1995년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집어 들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제목만 보고 떠올렸던 이미지와 어긋나는 내용들이 튀어나왔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엔 처음 듣는 ‘톨레랑스’부터 ‘남민전’ ‘망명’ ‘파리꼬뮌’ 같은 낯설고 무거운 내용이 가득했지만 책은 흥미로웠다.

한참이 지나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의 글로 베스트셀러가 된 그 책의 뒷얘기를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일했던 한 소장에 따르면 그 책은 초판 2만부를 찍었는데, 초반엔 잘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유독 한 대형서점에서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모든 나라를 갈 수 있었지만 고국에는 갈 수 없었던 망명객’ 친구의 책 출간을 너무 기뻐한 한 중소기업체 사장이 다량으로 구매하는 바람에 중쇄를 찍었고, 거기에 한 신문 칼럼의 덕도 봤다는 후일담이었다.

지난달 18일 저자 홍세화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다시 펼쳐 든 책 후기에서 선생은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적었다. “몸이 못 가니 대신 말이 가겠노라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정리한 글로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다.” 그렇게 첫 책을 낸 선생은 한국을 떠난 지 20년 만인 1999년 6월 귀국한 후 2002년 1월 영구 귀국했다. 선생이 돌아갈 수 없어 고국에 대신 보낸 말이 다리를 놓아 그의 몸까지 돌아올 수 있게 한 셈이다. 그의 말이 그만큼 큰 울림을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필요한 말을 하는 어른이었다. 자신이 몸담은 진보 진영과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빠뜨리지 않았고, 그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선생은 지난해 1월 근무했던 한겨레신문에 보낸 마지막 칼럼에서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 말할 수 있는 것도 특권에 속하는데, 적잖은 입이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삶은 신자유주의를 산다. 대부분은 부자이기도 하다”고 적었다. 선생의 말이 힘을 가진다면 그것은 그의 말에 삶이 실려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삶이 실리지 않은 채 말만 앞세운 이들을 우리는 그간 너무 많이 봐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조막만 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넘어지고도 다시 뻔뻔하게 얼굴을 드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목도하고 있다. 혹여 선생과 생각을 달리할지라도 적어도 그가 몸소 보여준 태도나 자세에 대해서까지 달리 판단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선생은 돌아가기 사흘 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는 지인에게 ‘겸손’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기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접하면서 겸손이 그의 첫 메시지 톨레랑스와도 연결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선생은 생전 인터뷰에서 관용으로 흔히 번역되는 톨레랑스에 대해 “관용보다는 용인”이라며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 덮어둔다는 뜻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한다는 취지”라고 했다. 겸손해야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할 수 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이들에게 상대를 용인할 틈과 여유는 없다. 그러니 용인하려면 스스로 모자랄 수 있고, 상대가 옳을 수 있음을 열어둬야 한다. 이는 갈수록 찾기 힘든 삶의 태도다. 생각과 진영을 넘어 귀를 기울일 만한 어른들도 점점 더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김현길 온라인뉴스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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