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도 한때 전국정당이었다 [김정하의 시시각각]
자민련은 1995년 김종필(JP) 총재가 창당해 2006년에 소멸한 정당이다. 1997년 첫 평화적 정권 교체에 기여하면서 정치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지만 이젠 충청권 지역 정당의 이미지로만 기억된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자민련이 소환되는 경우는 어떤 당이 특정 지역에서만 강세를 보일 때다. 국민의힘이 21대에 이어 22대 총선에서도 수도권에서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하자 ‘영남 자민련’이란 표현이 나온 게 그런 경우다.
그런데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해져서 그렇지 사실 자민련도 초창기엔 전국 정당이었다. 1996년 총선에서 자민련은 지역구에서만 41석(비례 9석)을 건지는 대박을 터트렸는데 여기엔 경기 5석, 대구 8석, 경북 2석, 강원 2석이 포함돼 있다. 대구·경북(TK)을 중심으로 한 보수층의 반YS(김영삼) 정서를 자민련이 흡수한 것이다. 당시 자민련 지역구 당선인 중 비충청권 비율이 41.5%다. 전국 정당으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참고로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지역구 당선인 중 비영남권 비율은 34.4%밖에 안 된다. 특정 지역 편중도로만 따지면 초창기 자민련보다 현 국민의힘이 더 심하단 얘기다.
자민련은 정권교체 후인 1998년 지방선거에서도 인천시장을 비롯해 서울 1곳, 인천 1곳, 경기 2곳, 경북 2곳, 강원 2곳에서 기초단체장 당선자를 배출하며 비충청권에서 일정한 존재감을 유지했다. 하지만 몰락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김대중(DJ) 정부에서 TK 민심은 급격히 한나라당으로 쏠렸고, JP는 DJ의 내각제 합의 파기에 대해 애매한 처신을 하면서 충청권에서도 여론이 나빠졌다. 그 결과 자민련은 2000년 총선에서 지역구 12석(비례 5석)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당시 지역구 당선자 중 비충청권은 경기 1석밖에 없었다. 4년 만에 완전히 ‘충청당’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자민련의 이미지는 이때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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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흐름 못 읽고 소멸한 자민련
국민의힘 재창당 수준 개혁 필요
체질 못 바꾸면 영남서도 힘들 것
」
18년 전에 사라진 자민련 얘기를 장황히 늘어놓은 것은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이 그에 견줄 만큼 위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진보 이념으로 무장한 386세대가 각 분야에서 약진하기 시작했고, 인터넷이란 신문명이 사회의 소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놨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었지만, 자민련은 과거의 정치 문법만 반복하다 낙오하고 말았다.
국민의힘은 이미 4년 전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유례없는 대패를 당했다. 그랬으면 절치부심해서 수도권을 겨냥한 새로운 전략을 짜야 했는데 그냥 관성적 패턴으로 출전했다가 똑같은 참패를 당했다. 전직 법무부 장관이 선거 지휘를 맡아 ‘조국 심판론’을 내세운 것까지 똑같다. 지금 국민의힘은 재창당 수준의 리노베이션이 필요할 듯싶다. 단순히 당 대표를 누가 맡느냐의 문제를 넘어 관료화된 당의 체질을 완전히 뜯어고치고, 수도권과 중도층을 견인할 국가 비전과 어젠다를 마련해야 한다. 저출생·저성장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보수주의 이념을 개발·보급하고, 20·30대에서 차세대 정치 인재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힘이 당 개혁을 소홀히 하면 4년 뒤엔 영남에서도 시련을 겪을지 모른다. 특히 부산·경남(PK)의 상황은 간단치 않다. 외견상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PK 40석 중 34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불어민주당은 부산에서 42%, 경남에서 42.4%의 지역구 득표율을 기록했다. PK에선 민주당의 기반이 탄탄하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물이 턱밑까지 차올랐는데 국민의힘은 그저 느긋하다. 웰빙당 체질은 잘 안 바뀐다. 비대위원장은 중진들이 전부 고사하는 바람에 8년 전 정계를 은퇴한 원로를 앉히더니, 원내대표도 하겠다는 사람이 부족해 경선을 늦추는 일까지 생겼다. 당의 무기력과 무신경이 놀라울 따름이다.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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