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바른 글씨 쓰기

2024. 5. 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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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주로 말보다 사소한 행동에서 힌트를 얻곤 한다.

나는 글씨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어서 서명 본이 오면 제일 먼저 사인부터 본다.

마치 기분에 따라 글씨가 리듬을 타는 것 같다.

글씨를 쓰는 것도 마음가짐을 바르게 가다듬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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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한 사람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주로 말보다 사소한 행동에서 힌트를 얻곤 한다. 가령 목소리나 필체, 걸음걸이 등을 보고 짐작한다. 그것은 개인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지표나 마찬가지다. 습관이 될 정도로 몸에 밴 것은 한순간에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글씨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어서 서명 본이 오면 제일 먼저 사인부터 본다. 친구 P의 글씨는 ‘기분’과 같다. 어떤 때는 삐뚤빼뚤하고, 어떤 때는 반듯하다. 마치 기분에 따라 글씨가 리듬을 타는 것 같다. 또 다른 친구 D의 글씨는 자타공인 악필이다. 가지치기하다 만 나뭇가지처럼 획이 사방으로 뻗쳐서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그럴 때 D는 ‘천재는 악필’이라는 너스레를 늘어놓곤 한다. 연필로 쓴 편집자의 글씨는 개미처럼 작고 촘촘하다. 저마다 다른 개성이 필체에 스며들었다.

돌아보면 나는 여덟 살 때 ‘글씨 쓰는 법’을 정식으로 배웠다. 담임선생님은 연필을 바르게 잡는 법부터 가르쳐주셨다. 연필을 깎은 부분보다 살짝 위를 잡고 중지로 연필 뒤를 받쳤다. 먼저 직선과 곡선부터 반듯하게 긋는 연습을 시켰다. 차차 받침이 없는 글자부터 받침이 있는 글자 순으로 받아쓰기 공책을 채워나갔다. 네모 칸 밖으로 글자가 삐져나갈까 봐 힘을 세게 주는 바람에 연필심이 툭 부러지기도 했다. 선생님은 모든 글자에 배꼽이 있으니 배꼽을 찾으라고 하셨다. 배꼽은 이를테면 글자의 중심이었다. 모든 글자의 배꼽이 어딘지 찾고 획 사이 간격을 일정하게 띄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글씨를 쓰는 것도 마음가짐을 바르게 가다듬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모든 관계는 적당한 간격이 유지되어야 한다. 인생에서도 필압(글 쓸 때 누르는 정도)을 적절히 조절하듯이 힘을 줘야 할 때도 있고, 빼야 할 때도 있다. 글자의 배꼽을 찾는 것처럼 자기 삶의 균형을 이루는 구심점이 어디인지 알아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처럼.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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