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새들의 천국'... 여길 시커먼 물로 수장시킨다고?
[정수근 기자]
▲ 흰목물떼새가 알을 품기 위해 알집으로 다가서고 있다. |
ⓒ 김병기 |
"휫휫 휘히히, 휫휫 휘히히"
지난 1일 새벽, 물떼새들의 청아한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세종보 300m 직상류에 마련된 천막 농성장에서의 첫날밤. 눈 떠보니 새들의 천국이다.
농성천막이 세워진 이곳에서는 전날 세종보 재가동 중단 및 물정책 정상화를 위한 천막 농성 발대식이 열렸다. 금강유역 활동가뿐 아니라 멀리 낙동강과 영산강 유역 활동가, 서울의 활동가들까지 참가한 연대의 장이었다. 세종보 재가동을 막겠다는 결의의 장이기도 했다.
▲ 세종보 상류에 만들어진 천막농성장 앞에서 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세종환경운동연합 박창재 처장이 지난 5년 동안의 강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세종보 수문을 개방하고 5년, 4대강 사업으로 수질 악화와 녹조 창궐, 기름유출 등 사고와 물살이 떼죽음 등으로 몸살을 앓던 금강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몸을 회복했다. 모래와 자갈, 여울이 드러나고 식생이 어우러진 금강에, 토건 개발을 피해 떠났던 야생생물들도 속속 돌아왔다.
흰수마자와 미호종개가 다시 발견되고, 물떼새들이 돌아와 산란을 시작했다. 수변에는 수달 발자국, 삵 배설물들이 즐비했고 4급수 지표종인 실지렁이와 깔따구 유충이 득시글하던 하상 펄밭은 제첩이 사는 모래질로 회복됐다. 금강 인근 거주하는 주민들 또한 녹조와 악취가 사라진 금강을 즐겨 찾았다."
낙동강에서도 확인된 재자연화의 힘
수문개방 이후 금강에서 확인된 '산 강의 귀환'은 겨우내 수문을 살짝만 열었던 낙동강에서도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지난 2022년 겨울 낙동강 합천창녕보는 수문을 개방했다. 보 개방 모니터링을 위해 수문을 활짝 연 합천창녕보로 인해 그 상류 달성보까지는 아름다운 은빛 모래톱이 돌아왔다.
▲ 합천창녕보 개방으로 드러난 은빛 모래톱. 이 모래톱 위에 독수리를 비롯한 철새들과 텃새들이 앞다투어 내려앉았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합천창녕보 개방으로 돌아온 모래톱 위에서 멸종위기종 독수리가 쉬고 있다. 모래톱은 각종 새들의 중요한 휴식 공간이자 먹이터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2022년 겨울 합천창녕보 개방으로 드러난 우곡교 아래 모래톱에 멸종위기종 황새가 날아와 모래톱을 거닐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2022년 겨울 합천창녕보 개방으로 드러난 합천창녕보 상류 우산리 선착장 앞 모래톱에 멸종위기종 노랑부리저어새가 날아와 모래톱을 거닐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넓은 백사장과 같은 모래톱을 회복한 낙동강은 다양한 생명들의 쉼터이자 먹이터로 빠르게 기능을 회복했다. 그 모습은 평화 그 자체였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황새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은빛 모래톱을 유유히 거니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창공에서 활공하면서 아름다운 비행을 선보인 독수리는 내려앉아 삼삼오오 모여 쉬었다. 노랑부리저어새는 연신 부리를 휘저으며 먹이를 찾았다. 백로와 왜가리도 얕아진 강에 내려와 물고기를 사냥했다. 낙동강은 작은 세렝게티 초원을 방불케했다.
하지만 합천창녕보의 수문이 다시 닫히면서 평화로웠던 풍경과 생명체들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간장색 강물만 가득찼다. 물만 가득한, 그 어떤 생명의 흔적조차 없는, 공허한 '물 사막' 같은 모습은 황량함과 쓸쓸함만 주었다.
금강을 다시 수장시켜서는 안되는 이유
▲ 흰목물떼새 중지. 이날 알집에서 확인된 알은 한 알이 전부였다. 순차적으로 알을 낳아서 4개 정도까지 낳는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공교롭게도 이날 천막 농성장 앞 자갈밭에서 막 산란을 시작한 둥지가 발견됐다. 그 둥지엔 앙증맞은 새알 한 알이 놓여있었다. 흰목물떼새 알이었다. 다음날엔 두 알로 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대 네 알까지 산란하는 흰목물떼새의 특성상 며칠 동안 알을 추가로 더 낳을 것이다.
▲ 농성장 창공에서 목격된 새매. 금강에는 물떼새뿐 아니라 다양한 맹금류들도 살아간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비단 물떼새뿐이겠는가. 깝짝도요, 삑삑도요도 모래톱 위 자라난 풀밭에 알을 낳아 포란에 들 것이다. 수많은 생명들이 이미 자리를 잡아 생명 순환의 축제를 벌이려는 이때 좀비보를 재가동시켜 물을 담아버리면 수백, 수천의 생명들은 그대로 수장될 수밖에 없다. 생명 대학살의 제노사이드가 금강에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녕 생명 학살 정부가 되려 하는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수리해야 할 것은 세종보가 아닌 민생
이번 4.10 총선에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윤석열 정부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민생이 아닌 '4대강 망령'을 불러내 이미 국민적 심판을 받은 4대강사업을 다시 부활시켜 내려는 윤석열 정부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좀비보' 세종보를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수리해서 담수하는 것을 대체 어느 국민이 원한단 말인가. 다시 수문을 닫아걸면 올 여름에 이곳은 녹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녹조라떼의 강으로 빠르게 변해갈 것이다.
▲ "좀비보 세종보 부활이 웬말이냐! 4대강 보 해체하라!"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활동가들의 현수막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독조의 강' 대신에 국민은 생명을 원한다. 국민은 평화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민생이다. 윤석열 정부는 꼭 가슴에 새겨야 할 핵심 화두다.
그날 전국에서 모인 4대강 활동가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강은 녹조가 가득한 악취 펄밭 강이다. 생명의 온기는 사라지고 공허한 기계음만 들리는 죽은 강이다. 흰수마자, 흰목물떼새, 수달과 고라니가 노니는 생명의 강이 아닌, 의미 없는 논쟁만 오가는 더러운 정치몰이판이다. 우리는 그런 정부에 우리강을 내어줄 수 없다. 우리의 미래와 안전을 맡길 수도 없다. 이에, 우리는 필사의 각오로 세종보 상류에 천막을 짓고 정부의 악한 정책을 막아서려 한다.
윤석열 정부 환경부는 들어라. 세종보 공주보 재가동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 금강 영산강 보 처리방안과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원상복구하고 당장 이행하라! 한강 낙동강 수문을 개방하고 보 처리방안을 마련하라!"
▲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농성장의 아침이 밝아온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덧붙이는 글 | 글쓴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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