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항의 전화... 그 시기만 되면 화가 치민다

이미선 2024. 5. 2. 1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먹고 '사는' 이야기 - 노동절 특별기고④] 수백만 삶 흔드는 '최저임금'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날, 벌써 134년에 이른 노동절, 오늘날 우리 사회는 노동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어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한다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어떤 노동자는 ‘노동자’라고 불리지도 못한다. 저임금의 노동자는 초저임금을 강요받고, 그리고 또 어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했다고 받은 모욕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노동을 대하고 있나. 이 연재는 민주노총이 전하는 우리 사회 곳곳의 노동자들의 ‘일’ 이야기다. 우리의 일, 우리 일상의 이야기. <기자말>

[이미선 기자]

 한 초등학교 급식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학교 급식실 언니가 있다. 어느 날 늦은 밤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노조 조합비를 몇 달만 잠시 미뤄도 될까?"

수화기 너머 조심스럽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일 있어요?"

사정을 들어보니, 남편의 작은 사업이 어려워진 후 카드 돌려막기로 애써 버텼지만, 결국 빚만 남아 살기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을 방과후 교육에도 못 보내는 상황이 몇 달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언니는 "너무 미안한데 조합비를 못 내고 있다"고 했다. 울음을 참는 건지 끅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짧은 순간에 오래된 기억들이 밀려왔다. 나도 삶이 바닥을 쳤다는 느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다.

외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조합원들은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면 공과금에 월세, 대출금, 통신비까지 월급이 며칠을 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 빠져나간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고 했나. 결국 투잡, 쓰리잡을 평일이고 주말이고, 낮이고 밤이고 찾는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이 재산인데 급식실에서 힘들게 일하고 그렇게 또 일하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이런 조합원들에게 걱정의 말을 한다. 하지만 걱정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이까짓 걱정만으로는 삶이 나아질 것도 없다는 것이 더 마음 아프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우리들에게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적어도 걱정의 말이라도 서로 해 줄 수 있었으니까.

저임금에 높은 노동강도, 때마다 일어나는 산업재해 사고도 노조 안에서 힘을 모아 위로하고 투쟁했다. 더 다행스럽게 그렇게 모은 마음으로 만들어 낸 노조 활동으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환경은 더디지만 꾸준히 발전했다. 

최저임금은 우리의 삶을 흔든다
 
 2023년 6월 14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 소속 학교비정규직, 마트, 요양, 콜센터 노동자들이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시기만 되면 화가 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았다(물론 지금도 연차에 따라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는 임금을 받는 우리는 그저 '기본급이 최저임금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의 본래 의미란 것이 그것이니까, '아무리 적어도 이것보단 많이 받아야 한다'는 의미.

그러나 2018년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로 우리의 바람이 산산조각 났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는가 싶더니 일방적으로 산입 범위를 확대했다. 최저임금이 올라간다는 소식에 기대했던 조합원들은 정작 월급이 오르지 않은 급여 명세를 받아 들곤 실망했다. 조합원들은 노조에 항의 전화를 많이도 했다.

"노조 탈퇴할래요. 아니, 왜 신입직원만 보전금을 줘요? 기분 나쁘게."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쏘아붙이는 언니는 급식실에서만 십 년 가까이 일했다. 연차에 따라 발생한 수당으로 신입직원보다 급여가 높았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를 받는 신입직원에겐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만큼의 급여 보전금이 지급됐는데, 그 내용을 세세히 알지 못하는 언니들은 마치 신입들만 별도의 추가 급여를 받은 것으로 오해했다.

언니는 "일하다 골병이 들어 오늘도 퇴근하고 아파서 침 맞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월급 받아서 병원 다니느라 다 나간다"고도 했다. 현장에는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생겼다. 서로 걱정하고 위해주던 사이였는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이란 건 사람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몇 년 전, '민주'와 '진보'를 자임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정부의 높으신 분들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최저임금을 끌어올려 많은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산입 범위 확대' 탓에 실질적인 임금 인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기본급은 그대로 둔 채 온갖 수당을 다 최저임금 안에 밀어 넣고 나니, 정작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는 (신입이라 수당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노동자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보전금' 같은 급여 명세가 생기고, 앞서 말한 것 같은 불필요한 오해도 생긴다.

저 높으신 분들에게 최저임금은 탁자 위에서 퍼즐 맞추듯 짜맞추는 숫자놀음인데, 우리 같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삶이 걸린 문제다. 10년 넘게 일한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고, 아이들 방과후 교육을 못 하게 하는.

학교 급식실은 유독 몸이 힘들고 노동환경이 좋지 않다. 환기 시설도 제대로 없는 급식실에서 뜨겁고 무거운 식자재를 나르고 쉴 새 없이 일한다. 그러나 급여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퇴사자가 늘어나는 반면 신규 채용은 이뤄지지 않는다. 자연히 업무량이 늘어나고 노동환경은 열악해진다. 악순환.

최저임금 인상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다음 달의 급여 문제일 뿐 아니라, 내 일자리의 안전 문제, 일자리의 질의 문제이기도 하다. 저임금 초고강도 노동 때문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위험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삶을 '최저'만큼이라도 지켜낼 수 있도록
 
 2022년 6월 15일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소속 급식노동자 등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급식실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및 산업재해 예방 국정과제 이행, 학교급식실 적정인원 배치 등을 요구하며 '점심한끼 같이 먹읍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설 때면 언론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이들의 식사를 볼모로 잡는다"는 식의 기사가 나온다.

아이들이 급식 대신 빵을 먹고 도시락을 먹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만큼 삭발하고 단식하며 투쟁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힘들게 일하지만 도무지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해서, 그래서 법이 보장하는 최저임금만큼만은 달라는 당연한 소리를 머리 깎고 밥 굶어가며 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10년을 같이 일하고도 서로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박정한 세상에 대해서.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를 대표하는 위원으로 참여한다. 어떤 말들이 오가게 될까. 이번에도 높으신 분들의 '오더'가 있을까. 온갖 숫자놀음과 법조문이 난무하겠지.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그저 하나다.

학교 급식실에도, 요양원에도, 편의점과 호프집에도 어떤 이들의 삶이 있다는 것. 그 삶을 '최저'에서라도 지켜주는 것이 최저임금이라는 것. 그러니 고작 탁자 위의 숫자놀음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살아가는 수백만 명 노동자들의 삶을 흔들지 말라는 것.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미선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노동안전보건위원회와 최저임금위원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