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가서 '고소득자' 된 청년들, 그러나 [넥스트브릿지]

양승훈 2024. 5. 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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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브릿지] 22대 국회가 해야 할 과제와 정책 제안 - '피크 코리아'가 던지는 '울산 문제'②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양승훈 기자]

지속적으로 정책 칼럼을 연재해 온 공공정책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는 22대 총선과 22대 국회 개원을 맞이해서 <22대 국회가 해야 할 과제와 정책제안>을 기획하고 4월부터 6월까지 기획연재를 진행할 예정이다.

첫 번째 주제는 '피크 코리아' 담론의 실체인 한국의 생산과 재생산 문제에 대한 이해와 정책제안으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로 유명한 경남대학교 양승훈 교수가 맡았다. 양승훈 교수는 최근 출판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에서 한국의 생산과 재생산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양승훈 교수는 세 번에 걸쳐서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
 
 2008년 1월 17일 촬영한 부산의 모습
ⓒ 위키미디어 공용
  
<1편 : 정규직 뽑지 않는 엔지니어 공장, 어떻게 할 것인가, https://omn.kr/28ee8>에서 이어집니다

한국현대사 교과서는 현대사 속 한국인들의 이동을 '이촌향도'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농촌·어촌·산촌 시골을 떠나서 도시로 간 베이비부머 청년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이촌향도에 대한 해석은 주로 서울 및 수도권으로 향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국한된다. 물론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전태일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촌향도 이야기는 공부를 열심히 해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해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된 사람을 주목한다.

시골집에서 '소 판 돈', 팔 소마저 없다면 '누이'가 공장에서 일해서 부친 돈, 좀 더 진취적이라면 본인이 서울 부잣집 '입주과외'를 하면서 학비와 등록금을 조달해 고시에 합격하거나 대기업, 은행에 취업해 중산층이 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서울로 이주한 대다수가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일용직을 하거나, 영세업체에 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성공 스토리'는 대개 입신양명하여 서울에서 출세한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그러나 잊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동임해공업지구'로 간 청년들이다. 1973년 중화학공업화가 전개되면서 앞서, 시험공부를 잘 못할지는 몰라도 성실했던 수많은 남성 청년들은 시골을 떠나 울산, 포항, 창원, 거제, 광양, 여수로 향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가족처럼 피난을 온 실향민들이 부산에 정착해서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모인'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었듯이, 동남권 산업도시에는 땀 흘려 일해 먹고 살기 위해 모인 청년들이 모였다.

중화학공업화로 필요해진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한 기계공고 출신들이나, 전문대, 공과대학 출신 청년들이 주로 모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청년들은 대기업이 정부의 위탁을 받아 설립한 직업훈련소(현 기술교육원)에서 기술을 배워 제조업체에 취업할 수 있었다.

적어도 1990년대까지, 좀 더 길게는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의 청년들에게 제조업체 취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민주화 바람과 함께 1987년부터 크게 일어난 민주노조운동은 이들에게 고소득, 정년 보장, 호봉제, 질 좋은 복리후생을 선사했다. 울산은 한국의 산업수도가 됐고,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소득 중산층이 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산업이 발달하고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이촌향도' 현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영남권의 산업단지는 더 이상 고소득 중산층이 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아니며, 부산과 같은 대도시마저 청년을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나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비수도권이 수도권의 생산 하청기지로 전락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공간분업 :
영남권 생산직 노동자와 수도권 엔지니어

 
 지난 1월 1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옆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소득 정규직 노동자의 대명사인 울산을 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종속적 관계를 알 수 있다. 울산의 자동차 산업은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을 자동화, 로봇, AI, 모듈화가 대체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생산기술을 담당하는 대졸 이상 기술직(이하 엔지니어)인데, 이들은 울산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울산의 또 다른 대표산업인 조선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조선 산업에서 고객(선주)이 요구하는 선박과 해양플랜트의 사양(spec)을 공간으로 구현해 현장의 생산직 노동자가 직접 용접할 수 있도록 하는 도면을 만들고, 건조 과정에 필요한 부품과 자재의 목록을 정리하는 설계 엔지니어들은 울산에 없다.

그렇다면 현장을 자동화시키고, 조선설계를 담당하는 대졸 엔지니어는 '어디'에서 근무할까? 현대자동차 생산기술 엔지니어들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남양연구소 소속이고, HD한국조선해양 엔지니어링 센터는 경기도 판교에 있다. 현장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엔지니어들이 모두 현장과 동떨어져 수도권에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공간분업의 결과로 빚어진 이공계 대졸자들의 수도권 배치 때문이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이래로 많은 제조대기업의 공장과 조선소가 남동임해지역에 입지했지만, 본사는 수도권에 입지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실례로 1967년 설립된 현대자동차의 대공장은 울산에 있지만, 본사는 서울에 있었다. 본사가 울산에 있었던 현대중공업 정도를 제외하면 울산에 공장이 입지한 석유화학 및 비철 분야의 본사는 대부분 처음부터 서울이었다.

산업화 초기에 제조대기업의 본사가 서울에 자리 잡았던 이유는 회사 운영자금의 안정적인 조달 때문이었다. 자금 조달을 '보증'할 수 있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재무부 등 정책금융기관이나 정부기관이 모두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제조대기업의 본사는 기획, 영업, 재무 등 경영지원 부서를 거느리고 서울에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을 졸업하고 제조대기업에 입사한 엔지니어는 남동임해지역의 공장으로 배치되었다. 현장에서는 엔지니어들이 사업장 내에 위치한 설계센터, 연구개발 센터나 생산관리본부 등에서 근무하고, 생산직 노동자들과 공장에서 협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알파엔진을 개발하는 과정이나 최초의 독자생산 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생산하는 과정이 그랬다. 대부분의 '제조' 과정은 생산 거점인 울산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우수한 이공계 졸업생과 엔지니어를 확보하기 위해 광범위한 이공계 병역특례가 활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엔지니어들의 수도권 전개가 시작됐다. 첫 번째 공간분업이 시작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울산공장이 위치한 울산 북구, 용인 마북리, 전주 등에 있던 연구개발 센터를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로 옮겼다. 현대자동차는 1984년 울산에 79만 평방제곱미터의 주행시험장을 준공하고 연이어 충돌시험장 및 시험연구실을 설립했지만, 10년만에 연구개발의 중심축을 수도권으로 옮겼다.

그리고 각 공장의 생산관리자와 인사(노무)관리자 정도를 제외한 개발, 설계, 디자인과 관련된 인력을 남양연구소로 차근차근 이동했다. 남양연구소는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양산 과정 자체를 연구소에서 시험할 수 있는 파일럿센터를 갖고 있는 세계 유일의 연구소다.

연구개발과 파일럿센터까지 갖춘 남양연구소는 한국 자동차 산업 혁신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생산 현장과 분리됨에 따라 엔지니어와 생산 노동자의 분리를 낳았고, 노동이 주변화되었다. 한국 최초의 독자 개발 엔진인 알파엔진은 오늘의 한국 자동차 산업을 열어준 쾌거였으나, 울산 관점에서 보자면 자동차 산업의 혁신으로부터 배제되기 시작되었다는 상징이었다.

엔지니어들의 다수가 남양연구소로 집결하면서 현장의 상황과 의견은 의사결정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주변화되었다. 엔지니어와 노동이 함께 있어야 신차의 라인 설계와 작업편의를 조정하고 신차 일정에 맞춰 기존의 생산 중인 작업을 조정할 수 있는데, 엔지니어가 현장과 떨어지면서 지금은 탑다운으로 지시가 내려가고 현장은 무조건 지시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노동의 주변화는 사측이 현장과 협력과 조율을 통해 혁신과 생산성을 제고하기보다는 현장과 에지니어의 접촉면을 줄여 갈등을 우회하고, 생산 현장은 과부하가 걸리게 되었다. 기존 차량 생산에 다양한 신차 생산 지시가 더해지면서 현장은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요구에 무조건 적응해야 했고, 노동강도 강화와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조선 산업의 경우 자동차보다는 그 전개가 더뎠다. HD현대중공업의 경우 선박과 해양플랜트의 기본설계분야가 2010년대에 서울로 이동했고, 2020년 연구개발센터가 판교로 이전했다. 현재 나머지 설계 분야 중 생산설계를 제외한 상세설계분야까지 판교로 이전 중이다. 조선 산업 사무직의 60~70% 가량이 설계 엔지니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수의 대졸 이상 인력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셈이다.

석유화학단지의 많은 기업연구소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지 오래다. 그러나 대덕도 서울에서 멀다고 경기도 판교, 화성, 평택, 용인의 부지를 수소문하는 중이다. 울산의 3대 산업에 소재·부품·장비를 납품하던 중소·중견기업 중 '눈 밝은 기업'들, 특히 디지털·그린 전환과 연관된 납품사들이 선제적인 인재 확보와 원청과의 수월한 연구개발 협조를 위해 울산에서 수도권으로 입지를 옮기기 시작한 것은 불문가지다.

사실 제조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1960년대 후반 애초 입지를 대덕연구단지로 잡았다. 그때 과학기술처 최형섭 전 장관은 "대덕 이남이면 우수한 인재가 안 모인다"고 했었는데, 기업들은 출연연에 비해서는 늦었지만 결과적으로 '북상'을 선택한다. '천안분계선' 이남으로는 좋은 인재가 안 온다는 말은 덤이다. 제조대기업들은 진정한 '1차 공간분업'을 실현하기 시작한다. 본사의 기능뿐 아니라, 제조 과정의 상류 부문인 '구상' 기능 전체를 수도권으로 넘겼으니 말이다.

두 번째 공간분업 : 고부가가치 산업의 생산시설의 수도권 지향

2010년대에 벌어진 일은 그 이상이다. 앞서 언급한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중견기업 뿐만 아니라 원청 제조대기업의 공장이 속속 수도권으로 모이는 중이다. 즉 두 번째 공간분업으로 고부가가치 공장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중이다. 2019년 SK하이닉스의 신규 공장이 구미 대신 용인을 선택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이나 현대제철 당진조선소 등과 같이, 수도권 규제의 '칼끝'이 닿지 않는 충남권에도 많은 제조대기업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충남이 수도권 전철망에 통합되면서 제조대기업 공장의 북상을 지원했다. 요컨대 '구상'과 '실행'이 분화되는 것을 넘어서, '구상'이 '실행' 기능을 끌어당기는 형국이다.

게다가 제조대기업 관점에서는 공장을 짓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의 허들이 산업화 초기보다 훨씬 낮아졌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시기의 대규모 산단에 공장을 꽉 채워 짓거나 조선소, 석유화학 플랜트를 설치하는 일은 재벌 대기업들에게 '그룹의 명운'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해외로부터든 국민투자기금(현 주택도시기금)을 통해서든 대출을 일으켜야 했다. 그리고 정부의 지불보증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선진 자본주의 국가 금융권 관점에서 이들은 모두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제조업으로 실적을 냈던 적이 없는 '벤처 자본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부지 확보와 인력 확보 측면에서도 정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에 따라 저리 기업 대출, 해외 차관 등을 폭넓게 활용하면서 정부가 지정하는 산단 부지에 공장을 짓고 다양한 규제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재벌은 점차 정부의 규제와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현대그룹과 삼성그룹 등 정부가 아니라 대기업이 자체로 구축한 서산의 대산석유화학단지가 대표적인 예이다. 대기업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신용으로 대출을 일으키고, 자본시장을 활용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기에, 정부가 '생산량 과잉'이라는 명분으로 반대하더라도 오너의 의지에 따라 대규모 산단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비수도권의 생산 하청기지화 전락을 막을 수 있나?
 
 광양제철소
ⓒ 포스코
이러한 공간분업의 두 차례의 전개와 제조업 핵심부분의 수도권 이전이 비수도권 산업도시의 생산하청기지화를 불러일으킬 것은 자명하다. 공장에서 아직 남아 있는 (숙련의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제품을 만들고 있지만, 거대한 규모가 주는 스펙터클과 달리 울산의 공장은 '중후장대산업'이라는 별칭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여겨지는 중이다.

제조대기업은 투자 여력이 있고, 수도권 지자체는 수도권 집중과 지역불균형 문제에 아랑곳없이 대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대기업이 원하는 '우수한 인재'는 비수도권 근무를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타개되지 않는다면 끊임없는 '혁신'은 수도권 공장의 몫이 될 것이다.

고부가가치 제품들은 연구개발 및 엔지니어링, 소재·부품·장비 제작사와 신속한 협업이 필수적이기에 새로 세워지는 수도권 공장 어딘가로 배치될 것이며, 울산은 점차 '저렴한 인건비'에 기대야 하는 가치사슬 속 열위제품을 맡게 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과 전망은 비단 울산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커지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울산 등 동남권이 자동화된 완성품 조립과 가치사슬 속 열위 부품 기자재 제작만 담당하게 된다면, '저임금 경쟁' 속에서 제조업 생태계 전반이 한계에 봉착한다는 점이다.

완성품 조립 공장과 조선소는 1편(정규직 뽑지 않는 엔지니어 공장, 어떻게 할 것인가 https://omn.kr/28ee8)에서 살핀 것처럼 정규직 생산직을 뽑지 않고, 기술직 엔지니어의 일자리는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동남권에 입지한 자동차 부품과 조선 기자재 업체들은 기술혁신 측면에서 우위를 누릴 수 없고, 가격 측면에서는 지속적인 인건비 압박에 놓여 범용 부품·기자재를 자동화 설비로 찍어내는 중국의 물량 공세 속에서 경쟁의 한계에 처할 것이다. 남동임해공업지구 전체가 미국이나 유럽의 사멸해 가는 산업도시처럼 폐허가 될 수도 있다.

청년들은 본인들이 찾는 일자리가 없어 모두 수도권으로 떠나고, 장년들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불만만 쌓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제조업 강국'으로 불리는 한국 제조업의 미래는 수도권의 제조대기업 사업장만 남아서, 마치 머리만 남은 채 둥둥 떠 있는 형상이 될 것이다. 대기업은 우발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우리나라 국민의 삶과 연관성을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이 지점에서 정치와 정책 측면에서 수도권 규제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장을 함부로 수도권에 짓게 하지 못하면 몇 가지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도권'에 편입된 충남으로 진출하는 기업들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두 번째로 인구의 과반수를 넘긴 수도권 유권자가 수도권에 좋은 기업이 더 많이 입지하기를 바랄 때 어떠한 논리로 이를 반박할 수 있을까? 세 번째로 정치와 정책이 주목해야 할 대상이 오로지 완성품을 만드는 제조대기업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지역, 노동자, 협력사 모두의 구속에서 벗어나 '공중부양'하는 중인 제조대기업을 어떻게 규제할 수 있으며, 무엇이 효과적일 수 있을까? 오히려 중앙정부의 국토계획이라는 관점에서 아직은 작동하고 있는 울산을 비롯한 남동임해지역 산업벨트에 훨씬 많은 자원을 투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산업화 이후 공간분업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구축된 동남권의 산업가부장제를 다루고, 지난 1편과 이번 2편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정책적 대응이었던 메가시티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평가해 보려 한다. 최종적으로 '울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구상도 밝혀보려 한다.
  
3부에 계속됩니다.

필자 소개 : 제조업과 산업도시, 기술 혁신과 엔지니어를 연구합니다. 경남대학교에 재직하며 사회조사방법론, 통계학, 데이터사이언스, 디지털 과학기술학을 강의합니다. 정치학, 문화인류학, 과학기술정책(혁신 연구)을 공부했습니다. 조선소에서 5년간 근무하며 관찰했던 경험을 담아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산업에 대한 이야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를 썼고, 이듬해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산업도시 울산을 살펴보며 50년 전 중화학 공업화로 형성된 한국의 주력 제조업과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이 디지털·에너지 전환, 수도권 쏠림을 딛고 생존 가능할지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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