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길거리 참외' 구경도 못하는 이유

이재환 2024. 5. 2.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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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가격 대폭 올랐지만 농민들은 한숨... "이상 기후, 국가가 정책적으로 대비해야"

[이재환 기자]

 지난 4월 27일 충남 홍성의 한 비닐하우스. 들쑥 날쑥한 농산물 가격으로 작물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재환
 
물가가 오르면 그 주범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농산물 가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값 875원' 발언이 논란이 된 이유도 농산물 가격이 물가 상승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이 올랐지만 농가 수익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지난 4월 26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비닐하우스의 한 귀퉁이에는 고추 모종이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옆은 밭갈이가 된 상태로 텅 비어 있었다. 비닐하우스 밭에 어떤 작물을 심을 것인지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민들은 생산량에 따라 들쑥날쑥한 농산물 가격 때문에 작물을 선택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 

총선까지 뒤흔든 대파값... 농민들은 "대파 농사 접었다"

홍동 농민 이선재씨는 "뉴스에서는 물가가 엄청 오르고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산지(농촌 생산지)에서는 크게 체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파가 그렇다. 대파는 생산까지 6개월이 걸린다. 노지(밭)에 심어서 가꾸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농민들의 대파 판매가는 2kg에 2천 원 정도다. 사실상 인건비도 안되는 금액이다. 하지만 마트에서 팔 때는 대파 300g에 3000~4000원 선이다. 농산물의 시중 가격이 오르더라도 농민들이 수익을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근에는 대파 농사를 접었다."

부여군 여성농민 신지연씨는 "비록 시장 가격이 높아도 농민들의 수익은 보장되지 않는다"라며 "요즘은 이상기후로 농작물의 생산량 자체가 줄고 있다. 덩달아 농민들의 소득도 떨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농민들은 농산물의 시중 가격이 올라도 오히려 소득이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농민들은 그 원인으로 기후변화 혹은 이상기후를 꼽고 있다.    

예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임선택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 사무국장은 "농산물 가격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올해 상반기 하우스 채소들이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 올봄에 갑자기 기온이 낮아지고, 비가 많이 오면서 작물들이 잘 자라리 못했다. 수박과 참외 토마토류가 특히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금사과라고 해서 사과도 잘 사먹지 않는다"라며 "사과가 금값이 된 이유는 지난해 생산량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과값이 비싸다고 해서 사과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큰 이익을 본 것도 아니다. 생산량 자체가 줄어서 수익이 오히려 더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20년 농사꾼도 당황스러운 요즘... 국가가 정책적으로 대비해야"
 
 지난 4월 27일. 충남 예산의 한 파프리카 농장, 농장 직거래로 농산물을 사기 위해 시민들이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 이재환
 
농업 생산자조합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부 농민들은 농협(주로 쌀)이나 농업 생산자들로 구성된 협동 조합 등에 농작물을 계약 재배로 판매하고 있다. 계약 재배의 경우, 생산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농산물 가격이 치솟을 때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한다. 

충남의 한 농업생산자 협동조합 관계자는 "농산물 가격이 쌀 때는 계약재배가 (판로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요즘처럼 일부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는 계약재배를 하는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다른 곳(유통업체)에서는 농작물을 비싸게 사겠다고 하는데, 조합(매입) 가격이 지나치게 싼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농민들의 소득이 증가해야 (농업)조합법인의 소득도 증가한다. 농업 생산량이 줄면 판매할 수 있는 농작물이 줄어서 (조합 입장에서도) 소득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상기후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최근 3~4년 동안 농사가 잘 안된다. 농사를 20년 이상 오래 지은 농민들조차도 기후변화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병충해도 증가하고 있다. 여름에나 나타나던 병충해가 초봄에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쯤이면 참외가 길거리와 시장에 싸게 풀리는 시점이다. 하지만 올해는 참외도 구경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농사가 잘 안됐다"라며 "비가 많이 와서 습기가 많다 보니 참외 농사도 잘 안됐다"라고 말했다.
 
 충남 예산의 한 농장.
ⓒ 이재환
 
농산물 가격 인상이 마치 물가 상승의 주범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이유와 그 이면을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때문이다.   

김영호(예산군) 육인농장 대표는 "올해 일조량의 경우 예년에 비해 20% 정도 적다. 일조량이 적다는 것은 수확량이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올해는 모든 작물의 생육조건이 나빠지고 작황이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생산량이 떨어지고 농산물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산물의 수확량이 떨어지면, 비록 농산물 가격이 오르더라도 전체 매출 자체가 떨어진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기후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후 문제로 먹거리 생산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언론에서도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만 할 뿐, 농산물 가격이 왜 오르는지, 그로인해 농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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