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조국위해 희생한 880여명… 독립운동가 발굴나선 전남도의회

김영균 2024. 5. 2.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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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서 찾은 무명의 애국지사
신민호(가운데) 기획행정위원장 등 전남도의원들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오아후 공동묘지를 찾아 이름없는 애국지사를 기리는 헌정비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1903년 1월 13일부터 도착하기 시작하여 정착한 5000여 한인 이민자가 하와이의 한인사회를 형성하였다. 어려운 이민생활이었지만 이들은 조국의 독립된 새나라 건설을 위해 희생하였다. 1911년 12월에 안장된 첫 한인 이민자를 시작으로 900여명의 이민자가 이곳에 영면한다. 2023년 그중 20명만이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지만 모두가 대한민국을 세운 공훈자들이다.”

지난달 27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오하우섬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해 동쪽편으로 10분 남짓 버스를 타고 달리니 초록잔디 위에 수많은 비석이 모여있는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묘지 입구에서 1만7000㎡규모의 묘지 사이길을 따라 200여m 올라가니 묘지 중간 왼쪽 끝에 어른키보다 살짝 큰 헌정비가 눈에 들어왔다.

헌정비 앞면에는 ‘고맙습니다’ 글귀가 세로로 크게 넣어져 있었고, 헌정비 아래에는 헌신의 삶을 기리는 글귀가 써져 있었다. 추모 글귀처럼 무명의 애국지사지만 하와이에 거주하는 교포들이 이들의 독립유공 공로를 인정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난해 세운 헌정비다.

헌정비 아래에 쓰여진 한인 이민자들의 조국을 위한 헌신의 삶을 기리는 추모 글귀.


다만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20명을 제외한 880여명의 하와이 오하우섬 이민자에 대한 비문이나 후손의 증언 등 증거자료가 부족해 국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함께 생활한 이민자들의 후손과 교포들이 이들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오하우섬에서 30년째 여행업을 하고 있는 권태신(67)씨는 “이 헌정비는 ‘미한인재단하와이’등 교포들이 1903년 첫 정착을 시작으로 지난해 120년주년을 기념하며 무명의 애국지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해외에서 활동하며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 역사적 숭고함을 되새기고 숨어있는 독립운동가를 더 발굴하기 위해 전남도의회가 나섰다.

전남도의회는 2021년부터 전국 광역의회 최초로 항일 독립운동가 발굴을 전남도에 건의했다. 이후 현재까지 미주지역에서 128명을 발굴했다. 이 가운데 80명이 서훈 신청됐고, 나머지 48명은 증거자료가 부족해 서훈 신청을 하지 못했다. 신청한 80여명 중 18명은 서훈이 확정됐고 20명은 심사가 진행중이다. 나머지 42명은 관련서류 준비 등의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27일부터 하와이와 LA 등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활동했던 숨은 애국지사 찾기에 나선 답사에는 신민호 기획행정위원장을 비롯 정철 부위원장, 강문성·전서현·신승철·주종섭 등 6명의 전남도의원이 참여했다.

헌정비 앞에서 만난 신 위원장은 “이들 가운데 20명을 제외한 880여명의 교포는 이곳 하와이 이민자 후손들이 독립유공의 공로를 인정해 헌정비를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도 “전남도의회의 이번 자료 수집 등을 바탕으로 전남도가 앞으로 추진하는 관련 기념사업과 선양사업 등에 대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위원장 일행은 엄숙한 표정으로 헌정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넋을 위로한 뒤 묘지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이민자의 묘지가 더 있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또 그곳을 빠져나오며 먼발치에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다이아몬드헤드 묘지에 영면해 있는 전수산 애국지사를 추모하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타고 하와이주의 정부청사를 지나 30분을 달리니 나지막한 다이아몬드헤드산이 보였다. 산자락 아래 묘지 입구에 다다르니 호놀룰루의 최고 부자들이 모여사는 카할라 타운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타운 바로 앞 10만㎡부지의 대규모로 조성된 다이아몬드헤드 묘지는 타운의 정원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의 장묘문화와는 다르게 하와이 공동묘지 대부분은 도심 한가운데의 부자마을 인근에 조성돼 있었다. 이곳 장묘문화는 우리와는 정반대로 자신들의 집 앞에 조상을 모시고 매일 인사한다고 교포들이 귀띰했다. 묘지 앞에서 가족들이 모여 자주 식사도 하면서 조상에게 좋은 기운도 받기 위해서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 지사의 묘지를 찾기 위해 묘지 사이사이로 헌화된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지나 10여분 동안 찾아 헤매다 결국 그곳 관리인의 도움울 받아 겨우 전 지사와 그의 남편이 나란히 영면해 있는 묘지를 찾았다. 신 위원장 일행은 숙연한 모습으로 한참 동안 전 지사 묘지석 주변의 잡초 등을 뽑아낸 뒤 추모했다.

신 위원장은 “미주지역에서도 활약한 전남출신 애국지사들의 활동을 확인하고 이들의 구체적인 양태와 정체성 형성 등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번 답사를 추진하게 됐다”고 다시 한번 의미를 강조했다.

다시 40분을 차로 달려 일제강점기에 사탕수수농장이었던 플랜테이션 빌리지를 찾았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도망갈 곳도 없이 움막에서 생활하며 농장주에게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한푼 두푼 소중히 모은 쌈짓돈을 자주독립의 자금으로 모아 보낸 이민자들의 아픔과 서러움이 녹아내린 곳이다.

씁쓸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농장을 둘러본 뒤 빠져나오는 길목에는 언제 그랬냐는듯 50여명의 외국인 가족과 일행 등이 왁자지껄하며 즐거운 모습으로 농장 체험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중간중간 흩뿌리던 작은 빗방울은 애절함의 흔적을 지우려는듯 금새 농장을 적셨다.

호놀룰루=글·사진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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