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시집 못 가" "한국인은 무다리"…이런 말 견뎌낸 맏언니 [유니버설발레단 40년 上]

전수진 2024. 5. 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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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왼쪽에서 두번째), 김양현 공연사업1팀장(맨 왼쪽), 정연주 의상감독(왼쪽에서 세번째), 강낙천 조명감독(맨 오른쪽)이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미선 수석무용수는 연습 일정으로 단체 사진 촬영엔 함께 하지 못했다. 장진영 기자


유니버설발레단(UBC)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마흔살이 된 UBC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발레단체로 우뚝 섰다. 곡절을 견뎠기에 흔들리지 않는, 이른바 불혹(不惑)에 이른 UBC의 오늘과 내일을 빚는 5인을 만났다. '백조의 호수'와 같은 클래식은 물론, '심청', '춘향', '코리아 이모션 정(情)'과 같이 한국 특유의 정서와 몸짓을 발레로 엮어낸 일군의 작품은 UBC가 일구어낸 쾌거다. 발레단을 이끄는 문훈숙 단장, 지난해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를 수상한 강미선 수석무용수의 인터뷰부터 소개한다.

발레 무대의 빛과 그림자를 아우르는 5인을 통해 한국 민간 발레의 얼굴이 된 UBC의 과거와 현재, 더불어 미래를 짚어본다. 이들을 찾아간 지난달 16일 오후 유니버설발레단은 창단 40주년 공연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 열기로 후끈했다. 케네스 맥밀란 경 안무 버전으로 올라가는 공연은 5월 10~12일 예술의전당 무대를 수놓는다.

창단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 곡절도 많았다. 왼쪽부터 문훈숙 단장, 김양현 팀장, 정연주 의상감독, 강낙천 조명감독. 장진영 기자

문훈숙 UBC 단장 "韓 발레 나침반...민간 국가대표 자신감"

발레 무용수는 몸을 조각한다. 골격과 근육을 매일의 연습으로 다듬고 깎아내 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 과정은 피 땀, 눈물을 동반한다. 연습실에 반창고와 상비약이 준비되어 있는 까닭. 그렇게 빚어진 결과물인 발레 무용수들의 몸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발레리나의 클래식 튀튀가 다리 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도록 디자인 된 데는 미학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처음엔 이를 단순 노출로 곡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발레하면 시집 못 간다"는 말이 돌았던 시절. 문훈숙 UBC 단장이 이젠 미소로 추억하는 때다. 문 단장은 "창단 40주년 역사를 정리하며 보니, 가슴이 다시 벅차올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 장진영 기자.

Q : UBC의 불혹, 축하한다. 소감은.
A : "한때 한국은 발레의 불모지로 통했지만 이젠 세계 정상이다. 무용수 시절, '세계 정상을 향하여'라는 문구가 연습실에 적혀있곤 했는데, 그 목표가 이뤄졌다는 게 감격스럽다. 한국 발레의 발전 과정은 UBC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 1세대 임성남 국립발레단장 같은 분들께서 먼저 길을 뚫어주셨고, 그 길을 고속도로로 다져온 과정이 있었다."

문훈숙 단장은 여전히 리허설도 열정으로 챙긴다. 장진영 기자

Q : 40년이라는 역사 동안 곡절도 많았는데.
A : "초창기엔 무용수가 모자라서 당시 한국에 초빙돼온 (해외) 선생님들이 '한국에서 발레단 운영은 무리 아닌가'라는 걱정도 하시곤 했다. 발레는 매일 연습해야 하는데 1주일에 3~4회만 수업을 하는 일정밖에 주어지지 않아 실제 투쟁을 해서 바꾼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당시 선생님들은 '모든 게 전투였다'고 표현하곤 했다. 최근의 팬데믹도 빼놓을 수 없다. 10개월 동안 공연을 못한 건 충격이었다. 그래도 정부 지원 등 덕에 버텨냈다. 무용수들에게도 고맙다."

Q : UBC가 세계 발레계에 갖는 의미는.
A : "'춘향'과 '심청'을 해외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 반응이 떠오른다. 당시 공연 전엔 '한국인 특유의 무다리 체형으로 발레가 가능하겠느냐'거나 '한국적 소재는 발레와 안 어울린다'는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무대로 증명했다. 앞으로도 융복합 기술 등을 활용해 발레 장르의 외연을 넓혀가고 싶다. '코리아 이모션 정(情)' 처럼 한국적이면서도 새로운 작품을 계속 올리며 발전해나가려 한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이 '로미오와 줄리엣' 리허설에서 무용수들에게 지도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Q : 창작 발레 원동력은.
A : "초창기엔 아무래도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쪽 선생님들이 많이 와주셨고, (미국 발레의 아버지로 부리는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 '후 케어스(Who Cares?)' 등을 공연했다. 그러다 1990년대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과의 인연으로 제2의 도약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쳤기에 한국만의 창작발레를 만들 수 있었다."

Q : 무용수 vs 단장의 삶은.
A : "무용을 은퇴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압박감이 덜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다(웃음). 덜덜 떨릴 정도로 긴장된다. 무엇보다 기쁠 때는 무용수들이 호평을 받을 때, 슬플 때는 무용수들이 떠나갈 때다."

Q : 50주년, 100주년의 UBC는 어떤 모습일까.
A : "한국 발레가 1.0의 개척, 2.0의 성장 시대를 거쳐 이젠 3.0에 이르렀다. (국립발레단) 최태지 (전) 단장과 '언니' '동생'하며 같이 성장했던 시절도 떠오른다. 씨앗이었던 한국 발레가 나무로 우뚝 섰는데, 뿌리를 더 견고히 내릴 때다. 미국 역시 각 지역 발레단이 튼튼하기에 ABT와 뉴욕시티발레단(NYCB) 등이 탄탄한 것처럼, 민관이 함께 아름다운 상생과 협력을 통해 균형발전 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강미선 수석무용수 "UBC와 함께 성장해 행복"


강미선 수석무용수가 '돈키호테'의 시그니처 점프를 선보이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지난달 16일, 유니버설발레단의 크고 작은 연습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월 10~12일 무대에 올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 때문이다. 봄날이 무색하게 한여름 같은 열기가 가득했다. 금지된 사랑의 달콤쌉싸름함을 연기하는 강미선 수석무용수는 줄리엣 그 자체였다. 그는 발레단 스탭과 후배 무용수들에게도 인망이 두텁다. 연습 중에도 "40주년을 위해서라면"이라며 인터뷰에 응한 그의 미소는 수줍고도 밝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발레리나 강미선 수석무용수. 장진영 기자

Q : 올해는 강 수석 UBC 입단 22주년이기도 한데.
A : "태어난 해 바로 이듬해에 UBC가 생겼으니,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다. 선배들과 선생님들께서 잘 일구어 주셨기에 이렇게 춤 출 수 있어서 감사하다. 사실, 우리 무용수들은 발레단의 가장 마지막 결과물이다. 우리가 무대에 서기 위해선 무대 옆 어두운 곳에서 의상을 한땀한땀 손질해주시는 분들, 무거운 막을 이동해주시는 분들, 조명을 비춰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한다. 그런 분들의 노고가 없으면 무용수도 없다. 40년 세월 동안 무대 안팎에서 땀흘리신 분들께 감사하다."

Q : 위기도 있었을 터다.
A : "아무래도 팬데믹 시기다. 2년 넘게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체감했는데,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학교 때부터 발레와 한 순간도 떨어진 적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되다니 공허했다. 무용수라는 존재에 대해 돌아본 계기도 됐고, 관객과의 만남이 소중하다고 한층 더 느꼈다. 무대와 관객이 없다면 무용수인 우리도 없다."

Q : UBC 무용수로서 느끼는 바는.
A : "해외 무대에 나갈 때마다 특히 UBC만의 한국 발레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 '심청'과 '춘향'을 출 때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한국만이 만들 수 있는 독창적 작품이면서도 아름다운 발레를 레퍼토리로 갖고 있다는 것이 자부심이다. 더 많이 알려질 수 있으면 좋겠다."

유니버설발레단 창작 발레 '춘향'에서 해후 파드되(남녀 무용수 2인무)를 추고 있는 강미선(오른쪽)·이동탁 수석 무용수.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Q : 선후배 동료들이 유독 신뢰하는데.
A : "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발레단 무용수 모두가 다들 착하고 열심히 한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걸 못 견디고, 꾸준히 성실히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배운다. 오래 무대에 서다보니 가끔 타성에 젖을 때가 있는데, 열심인 후배들을 보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서로 응원하고, 간식거리 등 작은 선물들 서로 챙겨주는 따스한 모습이 좋다. 동료가 아니라 형제자매 같다."

유니버설발레단 유병헌 예술감독(오른쪽)과 강미선 수석무용수. 전민규 기자

Q : 무대에의 열정을 잃지 않게하는 원동력은.
A : "관객들의 환호다. 모든 무용수가 같은 답을 하지 않을까. 무용수들은 자기만족을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꾸준히 연마한 것을 무대에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갈채를 보내주실 때 벅찬 희열을 맛본다. 관객께 모든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보답받을 때, 무엇보다 보람이 크다. 출산 직후 무대에 섰을 때 그 감격은 극에 달했다."

Q : 브누아 드 라 당스도 수상했는데, 한국 관객과 정부 등에 바라는 바는.
A : "민간 발레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적극적 지원을 해주시면 바랄 게 없겠다. 차세대를 위해서도 그렇다. 인재들이 계속 배출되는데 설 수 있는 무대는 한정적이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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