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쉴 때 일해도 보람… 노동환경은 개선해줬으면”

나경연 2024. 5. 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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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에도 일하는 필수노동자들
보이지 않는 곳서 타인 위해 근로
대다수 고령층 노동조건·임금 열악
휴식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대다수가 휴일로 보내는 노동절이지만, 필수노동자들은 어김없이 새벽부터 분주했다. 시민 편의와 안전을 위해 일하는 필수노동자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핵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다. 보건·의료·돌봄 종사자, 배달업 종사자, 환경미화원, 제조·물류·운송·건설·통신 영역 등의 대면 노동자가 포함된다.

경기 광명 공영차고지에서 23년 차 버스 기사 김진후(53)씨가 버스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 운전대 앞에 앉은 모습.


1일 오전 6시50분쯤 경기도 광명 공영차고지에는 첫차 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버스 기사들로 분주했다. 5평 남짓한 휴게 공간에 모인 다섯 명의 기사들은 찌뿌둥한 목과 어깨를 풀며 인사를 건넸다.

버스 기사 경력 23년차인 김진후(53)씨는 오전 4시47분 운전을 시작해 7시가 다 돼서야 차고지로 돌아왔다. 1회 운행을 돌고 온 기사의 휴식 시간은 30분 남짓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온전히 쉴 수 없다. 휴식 시간에 차량 정비와 충전 업무(전기 및 CNG 충전)를 모두 마쳐야 한다. 실제 쉴 수 있는 시간은 10분가량. 김씨는 “한번 주행을 시작하면 3시간은 꼬박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며 “조금이라도 더 쉬고 나갈 수 있게 여유 있는 휴게시간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유원(57)씨는 첫차 운행을 위해 오전 2시30분에 일어났다. 김포에 거주했던 안씨는 이른 아침 출근이 잦아지며 직장 근처 안양으로 이사 왔다. 안씨는 항상 근무 도중 사고가 날까 봐 걱정이다. 그는 “사고가 나면 회사 측에서 보험으로 금전적 손해는 보상해주지만 사내 징계가 이어진다”며 “사내 징계가 쌓이면 무사고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가장인 안씨에겐 보상금이 절실하다고 한다.

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앙도서관 건물 앞에서 한 미화 노동자가 쓰레기 더미를 정리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 대학원 중앙도서관 1층에선 청소 노동자들이 미화 작업에 한창이었다. 오전 6시에 출근해 미화 작업을 하던 신정숙(65)씨는 2006년부터 20년 가까이 이 학교에서 근무했다. 그는 매일 출근하면 대학원 중앙도서관과 법학도서관 건물의 화장실과 복도를 청소하고, 쓰레기 정리를 한다. 신씨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만으로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씨가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신씨 등 고려대 청소노동자의 한 달 식대는 12만원에 그친다. 신씨가 지난달 동료들과 함께 ‘청소 노동자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에 참여하며 식대 상향을 외친 이유다. 국·공립대학노동자들은 2024년 기획재정부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14만원의 식대가 책정됐다. 이들은 같은 일을 하는 만큼 같은 수준의 14만원의 식대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식대 시위에 학생분들이 많이 동참해서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6년차 경비원인 김천명(67)씨가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분리수거함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파트 단지에선 이날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단지 내 도로를 청소하고, 간밤에 배출된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사회에서 각자의 몫을 해내다 정년 퇴임 후 경비 일을 맡게 된 이들이다.

당인리발전소에서 근무하다 정년 퇴임 이후 4년째 경비 업무를 하고 있는 경비원 조형기(76)씨는 노동절에 대해 “근로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날”이라면서도 “주민들이 집에서 쉬다 보니 우리에겐 사건, 사고가 없도록 ‘더 조심해야 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경비 업무 7년차인 박용덕(74)씨는 분리수거장에서 대형 박스를 정리했다. 그는 시멘트 회사에서 정년 퇴임을 한 뒤 경비일을 택했다. 그는 노동절에 대해 ‘무탈하길 바라는 날’이라고 했다. 주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말을 반복한 그는 “겨울철 계단이 얼지 않게 관리하거나 거리를 정비할 때,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책임 의식을 갖게 된다”고 전했다. 이들이 주민 안전을 되새기는 것은 그만큼 민원도 많기 때문이다.

필수노동자 대다수는 고령층이다. 임금도 많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필수노동자의 평균임금은 2022년 월 252.5만원이었다.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339.2만원)의 74.4% 수준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필수노동자 임금 수준은 더 열악하다. 환경미화 103만원, 돌봄종사자 161만원, 운송 183만원, 보건의료 290만원 등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웃을 위해 일하며 노동절을 보낸 버스 기사와 청소 노동자, 경비원들은 하나 같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 늘어나도록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도 시민의 안전과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 노동자의 업무가 꼭 필요한 만큼, 이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종선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대부분 필수 노동자는 사회 안전망이나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어 노동조건이나 임금이 열약하다”며 “필수 노동자들은 대면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수당 지급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대부분 휴식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진단관리 문제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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