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 논설위원이 간다] 윤석열 이탈층에 미친 영향, 명품백 > 이종섭 > 물가

김정하 2024. 5. 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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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연구원 22대 총선 심층 분석


김정하 논설위원
선거는 수천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사회과학의 실험 무대로 볼 수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필수적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손열 연세대 교수)은 4월 24일 정치학자들을 초청해 ‘제22대 총선 표심 분석과 정치 개혁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분석하는 첫 학술 행사였다. 이 자리에선 EAI가 총선 직후인 4월 11~15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유권자 15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토대로 선거 민심을 다각도로 조망한 논문들이 발표됐다. 논문들이 대부분 전문적인 통계분석이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긴 쉽지 않지만, 22대 총선 결과와 관련해 여러 가지 유의미한 시사점들이 많다.

「 윤석열 투표자 75.4% 여당 투표
이재명 투표자 79.4% 민주 투표

대선은 윤·이 호감도 〉 소속 정당
총선은 윤·이 호감도 〈 소속 정당

공천만족도 민주당 지지층 우위
조국당 지지율 자산 중상위 최고

윤석열 지지층이 총선서 이탈한 이유

박경민 기자

이번 조사에서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응답자의 75.4%만 이번 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었다고 응답했다. 10.1%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반면 대선 때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응답자의 79.4%가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고 했고, 5.1%가 국민의힘 후보로 이동했다. 여당 지지층보다 야당 지지층의 결속력이 강했던 것이다.

개별 이슈가 유권자들의 지지 후보 선택에 미친 영향력을 조사했을 때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은 ‘대선 윤석열 지지→총선 민주당 지지’ 그룹엔 영향력이 3.95(5점 척도, 1=전혀 영향 없음, 5=매우 큰 영향)로 나타났다. 이어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과 황상무 수석 실언’이 3.88, ‘물가 상승’이 3.85, ‘의사 정원 확대와 의료계 반발’이 3.54의 순서였다.

도피 출국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전 호주대사. [뉴스1]

반면 ‘대선·총선 계속 국민의힘 지지’ 그룹에 ‘김 여사 명품백 논란’의 영향력은 3.28에 그쳤다. ‘윤석열 지지→민주당 지지’ 그룹과 ‘계속 지지’ 그룹 간 영향력 지표 차이가 가장 큰 이슈가 ‘명품백 논란’이었다. ‘명품백 논란’ 하나 때문에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대통령 지지층 이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가 상승’ 이슈도 ‘계속 지지’ 그룹에선 영향력 지표가 3.26에 그쳐, ‘윤석열 지지→민주당 지지’ 그룹과 비교했을 때 ‘명품백 논란’과 비슷한 수준의 영향력 지표 차이가 나타났다. 선거 막판에 불거진 윤 대통령의 ‘대파 발언’ 논란이 미친 파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회칼 테러’ 발언으로 사퇴한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연합뉴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흥미로운 점은 이번 총선 국민의힘 투표층에서 윤 대통령 호감도의 영향이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다만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클수록 국민의힘 지지가 커진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재명이 싫어서 국민의힘을 찍는다’는 여의도의 속설이 통계학을 통해 입증됐다는 얘기다.

대선 때보다 떨어진 윤·이 호감도

박경민 기자

EAI가 2022년 대선 당시 실시한 정당·후보 호감도 조사(가장 부정적 0, 가장 긍정적 10)에선 국민의힘 지지층의 경우 국민의힘 호감도 7.2, 윤석열 후보 호감도 7.6이 나왔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민주당 6.8, 이재명 후보 7.5가 나왔다. 지지 정당보다 지지 후보의 호감도가 더 높았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선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국민의힘 7.3, 윤 대통령 6.0이 나왔고 민주당 지지층에선 민주당 7.5, 이 대표 6.3이 나왔다. 대선 때와는 거꾸로 지지 정당보다 당 리더에 대한 호감도가 낮아진 것이다.

분석을 담당한 고려대 길정아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교수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약 40% 정도가 당 호감도보다 윤 대통령의 호감도가 낮았고, 민주당 지지층에선 약 45% 정도가 당 호감도보다 이 대표의 호감도가 낮았다”고 밝혔다. 총선 참패로 곤경에 처한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이 대표에게도 잠재적 불안 요소가 있는 셈이다.

공천 평가 민주당이 더 높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진상조사 규명 촉구 집회. [뉴시스]

이번 총선에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을 정도로 민주당의 비명계 학살 공천이 큰 이슈였다. 이 때문에 한때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세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각 당 공천에 대한 평가를 해보니 민주당 공천에 대해 잘했다는 평가는 33.9% 못했다는 평가는 50.5%지만, 국민의힘 공천에 대해선 22.0%가 잘했다, 60.8%가 못했다고 했다. 이런 경향은 당 지지층 내부 평가에서도 확인됐다.

민주당 지지층은 민주당 공천에 대해 4점 척도(1:매우 잘함, 2:잘한 편임, 3:못한 편임, 4:매우 못함)에서 평균 2.14점을 매겼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층은 국민의힘 공천에 대해 평균 2.52점을 매겼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공천 만족도가 민주당 지지층보다 낮은 것이다. 무당파층에서도 민주당 공천 평가(3.11)가 국민의힘(3.25)보다 다소 높았다.

대파 모양의 머리띠를 한 야당 지지자. [중앙포토]

공천에 대한 평가는 실제 투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민주당 공천 평가를 긍정적으로 한 그룹은 56.1%가 ‘민주당(지역구)+민주당(비례대표)’ 조합으로 투표했다. 이어 ‘민주당(지)+조국혁신당(비)’ 35.9%, ‘민주당(지)+기타 정당(비)’ 3.7% 등의 순이었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층에서 민주당 공천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그룹은 ‘민주당(지역구)+민주당(비례대표)’ 37.7%, ‘민주당(지)+조국혁신당(비)’ 34.0%, ‘민주당(지)+기타 정당(비)’ 11.3%, ‘국민의힘(지)+기타 정당(비)’ 9.4% 등으로 나타났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투표에서 이탈자가 꽤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국민의힘 공천 평가를 긍정적으로 한 그룹은 87.3%가 ‘국민의힘(지)+국민의힘(비)’ 조합으로 찍었다. 이어 ‘국민의힘(지)+기타 정당(비)’ 8.8%, ‘국민의힘(지)+개혁신당(비)’ 1.8%의 순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공천 평가가 부정적인 그룹은 ‘국민의힘(지)+국민의힘(비)’ 조합이 73.7%였고 ‘국민의힘(지)+기타 정당(비)’ 14.3%, ‘국민의힘(지)+개혁신당(비)’ 3.7% 등으로 나타났다. 민주당보다 이탈 비율은 낮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이탈자가 생겼다.

성신여대 서현진(사회교육)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공천은 중앙당 공심위에 절대적 권한을 주는 방식이었다”며 “이런 하향식 공천은 민주적 대표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서 공천심사 기준 및 방식에 대한 사전 공개와 명문화를 통해 공천과정의 정쟁화를 막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산 규모와 투표 성향

수도권 응답자들을 자산 규모에 따라 5단계(상위 9억원 이상, 중상위 5억~9억원, 중위 3억~5억원, 중하위 1억~3억원, 하위 1억원 미만, 설정 기준: 2023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분류하고 자산 규모와 투표 성향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지역구 투표에선 상위 민주 37.0% 국민의힘 63.0%, 중상위 민주 55.6% 국민의힘 44.4%, 중위 민주 64.5% 국민의힘 35.5%, 중하위 민주 60.9% 국민의힘 39.1%, 하위 민주 55.6% 국민의힘 44.4%로 나타났다. 상위에서 중위까진 자산이 적을수록 민주당 지지가 높아지지만, 그 밑으로 가면 오히려 민주당 지지가 감소하는 패턴이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자산 규모에 따라 조국신당에 투표했다는 응답 비율은 21.1%(상)-34.0%(중상)-32.6%(중)-31.5%(중하)-20.0%(하)로 변화했다. 조국신당의 지지율이 자산 중상위 계층에서 가장 높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분석을 담당한 서울대 정치학과 김수인(박사과정)씨는 “자산 상위 집단은 고령층이 많기 때문에 연령 효과에 따른 착시가 생길 수 있어 50대 이상 유권자를 제외한 분석도 했는데, 여전히 자산 상위 집단에서 보수 정당 투표 성향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는 “수도권 20~40대 유권자만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선 자산을 제외하면 성별과 출신 지역 변수들의 통계적 유의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이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심화로 계층적 분열이 커질수록 보수 정당은 집권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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