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바보’ 섬세하고 날카로운 정성주 작가의 ‘시선’ [작가 리와인드(122)]

장수정 2024. 5. 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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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민낯 드러낸 '아내의 자격'·'풍문으로 들었소' 이어
종말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 담은 '종말의 바보'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1992년 드라마 ‘매혹’을 시작으로 ‘신데렐라’,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애정만세’ 등을 집필한 정성주 작가는 주로 멜로 또는 가족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만났었다. 여러 편의 주말 드라마를 집필하며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던지며 편안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2012년 방송된 ‘아내의 자격’과 2014년 작품인 ‘밀회’에서는 ‘불륜’을 소재로 파격적인 전개를 보여줬으며,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상류층의 민낯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블랙 코미디의 묘미를 보여줬다.

ⓒ넷플릭스

이렇듯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내공을 보여준 정 작가는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말의 바보’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첫 도전했다.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동명의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 섬세하게 쌓아나가는 메시지

정 작가의 초기작인 ‘신데렐라’는 한 남자를 두고 갈등하는 자매의 이야기로 주말 시청자들을 찾았었다. 당시 훈훈한 분위기로 ‘가족애’를 강조하던 기존의 주말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결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방송인 장혜진(황신혜 분)이 신분 상승을 위해 사랑을 이용하다가 파멸하는 등 인간의 욕망을 들추며 ‘신데렐라’만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후 ‘아줌마’에서는 전업주부였던 주인공이 헌신적인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립을 이뤄내는 과정을 다루며, ‘아줌마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메시지 자체는 특별하다고 할 수 없지만,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현실적으로 반영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낸 작품이었다.

최근의 작품들에선 좀 더 과감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강남의 사교육 열풍 속에서 자녀교육에 몰두하던 평범한 주부가 우연히 만난 치과의사와 격정적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아내의 자격’은 불륜을 소재로 하지만, 여느 막장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전개를 보여줘 호평을 받았다.

아픈 아들을 키우던 엄마 윤서래(김희애 분)가 치과 의사 김태오(이성재 분)를 만나며 격정적으로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설득력을 높인 것. 자식의 교육 문제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분위기에 버거워하는 모습부터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남편의 배경까지. 윤서래가 왜 엇나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충분히 납득 가능하게 설명해 내면서 시청자들을 푹 빠져들게 한 정 작가였다.

단순히 서래와 태오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불륜이 발각되고 난 이후 전개 또한 꽤 비중 있게 다루면서 사교육의 폐해, 그리고 상류층의 삐뚤어진 욕망을 차근차근 짚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아내의 진짜 ‘자격’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상류층의 진짜 얼굴을 들춰냈다.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통렬하게 꼬집는 풍자로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했다.

부잣집 아들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고등학생 한인상(이준 분)과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서봄(고아성 분)은 임신을 계기로 결혼을 하게 되고 이후 벌어지는 일을 통해 한인상 집안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또 때로는 날카롭게 그들의 위선과 허세를 표현하며 ‘블랙 코미디’의 매력을 보여줬다.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게 한 정 작가다.

‘종말의 바보’ 또한 기존의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고, 정 작가만의 개성으로 메시지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에 대해 스펙터클한 재난 드라마를 기대한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종말을 앞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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