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빚을 더하다…전세사기 피해자 ‘빚’만 늘리는 정부

조유정 2024. 5.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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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호소하며 절을 하고 있다. 사진=조유정 기자

# △ 기존 주택/ 타주택 구입자금 대출 지원 △ 저리 전세대출‧저리 대환대출 △ 긴급주거지원(공공임대주택 입주) △ 인근 공공임대 거주 △ 생계비 지원, 주거비 등 긴급복지 △ 저소득층 신용대출 △ 전세 대출금 20년 무이자 분할 상환

지난 1월 전세 사기 피해자 부분 인정을 받은 A씨가 받은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내용이다. A씨는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전세 사기 피해를 인정받으며 지원을 기대했으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A씨는 “피해자로 결정되기 전후가 다르지 않고 실질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지원책이 하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1일 대규모 전세 사기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방안이 담긴 법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재원 부담 등을 이유로 미루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되는 동안 피해자들의 생계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길거리에 나앉는 피해자들이 늘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빚. 빚. 빚. 피해자들은 말한다. 현재 정부의 피해자 구제 방안은 빚에 빚을 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A씨는 전날 “주택 구입자금 대출 지원을 받으려 했더니 기존 전세 대출을 전액 상환해야 한다더라”라며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기존 대출을 모두 갚아야 이용하란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도 “현재 전세 사기 대출 특별법은 빚으로 빚을 돌려받고 빚에 빚을 더해 피해 주택을 매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로 인정받기도 까다로운데 인정받아도 대책별로 요건이 별도로 존재해 실상 이용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일상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정모씨는 전세 사기 사실을 안 뒤 공황장애, 우울증 증세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정씨는 “2022년 3월에 입주했는데 6월에 집이 경매에 들얼갔단 사실을 알게됐다”라며 “이후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전세사기 대책위 활동을 병행하다 우울증 등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뒀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고 특별법이 개정됐지만 달라진 게 없다”라며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집 보증금 9000만원 중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2700만원에 불과하다”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은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방안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지난해 8월부터 선 구제 후 회수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8~9월 피해자 실태조사를 한 결과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필요한 예산이 피해자를 3만명까지 늘려 잡아도 최대 5850억원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달 30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보증금 회수 대책이 빠진 현재 특별법 내용으로는 전세사기 대란을 해결하지 못한다”라며 “전국 피해자들이 간절히 원한 선 구제 후 회수 방인이 빠진 법은 암 환자에게 영양제 주사를 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 주장과 다리 추후 회수 가능한 금액을 제외하고 약 5000억원이면 3만명에 달하는 피해자의 주거비를 보장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특별법 개정에 나섰다. 개정안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관이 피해자의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사들여 보증금 일부를 돌려준 뒤 임대인에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이 담겼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마무리 전인 다음 달 국회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 부딛히고 있다. 

정부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을 추진할 경우 최대 5조원의 재정 투입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이장원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단 피해지원총괄과장은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전세사기피해지원의 성과 및 과제에 대한 토론회’에서 "현재 전세사기 피해 추세대로라면 내년 5월까지 피해자 수가 3만6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평균 보증금이 1억4000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5조원에 가까운 비용이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 줄다리기 속 피해자들의 경공매 1년 유예 기간은 끝나가고 있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지금도 법원에서 경매중지 신청을 더 받지 않겠다고 해서 매각세대가 날마다 늘고 있다”라며 “다음 달 13일 매각을 앞두고 있다. 지난 1년간 지원을 기대하며 경매중지를 요청했으나 물거품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느긋하게 정부에 준비 시간을 주고 설득할 시간을 갖을 시간이 저희(피해자들)에게는 없다”라고 밝혔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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