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경제] ‘차이나 쇼크 2.0’ 시대… 초저가 공세가 글로벌 산업 뒤흔든다

양민철 2024. 5. 1.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중국 이커머스 업체 알리익스프레스(알리)에서 할인 판매하는 차량용 쓰레기통과 휴대용 청소기, 스마트폰 거치대를 구입했다. 결제 금액은 제품당 500원씩 모두 1500원. 배송비는 무료였고 일주일 만에 제품이 집 앞에 왔다. 품질이 좋지 않아 오래 쓰진 못했지만, 이씨는 요즘도 틈틈이 알리나 테무 같은 중국 쇼핑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여다본다. 이씨는 “국내에서 몇만 원에 파는 제품도 절반 가격에 올라온다”며 “싼 게 비지떡이란 생각도 들지만 저렴한 가격에 자꾸 찾게 된다”고 30일 말했다.

이씨가 구입한 제품은 모두 값싼 범용 플라스틱이 주재료다. 중국에서 과잉 생산된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 범용 플라스틱은 초저가 제품 생산에 활용돼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의 가격 경쟁을 촉발하는 나비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KB증권과 원자재시장 조사기업 ICIS에 따르면 지난 2월 아시아 지역의 석유화학 공장 가동률은 85.9%로 20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 범용 화학 공장 가동률이 기존 60%에서 80%로 치솟았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알리, 테무 등을 필두로 한 중국 초저가 소비재 판매가 아시아 범용 플라스틱 수요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원재료 과잉 생산에 따른 초저가 완제품 수출이 세계 무역 시장을 뒤흔드는 ‘차이나 쇼크 2.0’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과거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값싼 중국산 제품이 글로벌 시장을 휩쓸던 ‘차이나 쇼크’와 유사한 상황이 20여년 만에 재현되는 것이다.

당시 중국은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철광석, 석탄 등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생산하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플라스틱, 철강 등 원재료부터 전기차용 배터리, 완성차까지 공급망 전반을 손에 쥐고 세계 각국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고물가·고금리에 신음하는 주요국에 중국의 초저가 공세는 위협적이다. 가격 경쟁에서 밀린 자국 기업이 무너지며 궁극적으로 ‘산업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석유화학 과잉 생산의 직격탄을 맞은 롯데케미칼은 올 1분기 1660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LG화학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7.1% 급감한 2646억원에 그쳤다. 산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던 시절은 중간재를 수출하던 한국 경제에 절호의 기회였다”며 “이제는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도리어 경쟁에 밀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이나 쇼크 2.0’의 배경엔 중국의 경기 침체가 자리한다. 자국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른 건설·산업 생산 침체에 무리한 설비 과잉 사태가 겹치며 내수에서 소화 못 한 잔여 물량을 해외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중국 철강의 수출 규모는 9500만t에 달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전체 철강 소비량보다 더 많은 규모”라고 보도했다.

정작 수출 공세를 펼치는 중국의 수입은 줄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소매판매 규모는 전년 대비 7.2% 늘었지만, 같은 기간 소비재 수입액은 5.2% 줄었다. 무협은 “중국 자체 브랜드의 자국 영향력이 커지며 수입 제품을 대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공세는 전기차·배터리 등 신산업 분야로 뻗어간다. 중국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자동차 수출량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올해 자동차 수출 증가율도 20%대에 이른다. 특히 중국산 전기차의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은 12.5%로, 사상 최초로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중국 비야디(BYD)는 미국 테슬라와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를 다툰다. BYD는 7만9800 위안(약 1500만원) 전기차를 출시하며 저가 경쟁에 불을 당기고 있다. 배터리 역시 비(非)중국 시장에서도 중국 CATL이 점유율 26.3%(올 2월 기준)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국내 배터리 3사 합산 점유율은 45.5%에 달하지만, 중국 기업과의 격차가 갈수록 줄고 있다.

고물가·고금리 속에 세계 각국의 공포감도 확산하고 있다. 나날이 뛰는 물가에 중국의 ‘초저가 침공’을 막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자국 산업의 붕괴 현상을 지켜만 볼 수도 없는 처지다.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최근 잇달아 중국을 찾아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과 과잉생산이 세계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값싼 상품이 수요가 아니라 공급을 창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 3배 인상 등의 조치에 이은 추가 타격도 예고했다. 브라질 인도 멕시코 등 신흥국도 중국산 철강, 석유화학 제품 등의 수입 규제에 착수한 상태다.

중국의 반발도 거세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8일(현지시간) “독일 완성차 기업 BMW가 200억 위안(약 3조8000억원)을 추가로 중국에 투자한다”며 “이 자체가 미국 등의 ‘과잉 생산’ 주장에 반박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세계적 물가 상승을 중국이 완화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각국의 ‘대(對)중국 보호무역’ 장벽에도 차이나 쇼크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이 차이나 쇼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과거보다 줄었다”며 “중국의 수출 홍수는 이미 여러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