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방시혁-민희진 싸움에 흔들리는 K팝

한승주 2024. 5. 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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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어도어 정면 충돌
주가 급락하고 외신도 주시

K팝 취약한 기반 드러나
힘들게 쌓아 올린 위상 추락

어른 싸움에 아이돌 상처
실망한 팬들 등 돌릴까 우려

“K는 프리미엄 라벨이죠. 우리 조상들이 싸워 쟁취하려 한 품질보증과도 같습니다.”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지난해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K라는 명품 수식어는 앞서간 많은 이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K팝·드라마·영화·음식까지 세계로 뻗어간 덕분에 한국은 요즘 외국인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찾고 싶은 나라가 됐다. 그런데 K의 첨병에 선 K팝이 흔들리고 있다. 그것도 BTS를 보유한 국내 최대 기획사 하이브의 집안싸움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연간 매출 2조원 규모의 하이브와 예상 기업가치 2조원인 자회사(레이블) 어도어가 정면충돌했다. 외신은 “K팝 산업을 강타한 가장 최신 분쟁”이라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하이브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하이브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내부 사태가 곪아 터져 대외적으로 낱낱이 공개될 때까지 위기관리가 안 됐다는 것도 충격이다. 이번 일로 품질을 보증하는 K에 크게 금이 간 건 확실해 보인다.

사건은 방시혁 의장이 이끄는 하이브가 어도어 민희진 대표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면서 알려졌다. 민 대표는 하이브가 걸그룹을 키우고자 야심차게 영입한 인물로, 블랙핑크 이후 최고의 인기 걸그룹 뉴진스를 데뷔시킨 ‘뉴진스맘’으로 불린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대표에서 해임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민 대표는 지난주 격앙된 목소리로 눈물과 욕설이 범벅된 기자회견을 열고, 하이브의 신인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를 표절했다고 주장한 거에 대한 보복이라고 반박했다. 둘 간의 공방은 이미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 극적으로 화해할 가능성은 없는 듯하다. 진실은 시간이 가면 드러날 테지만 양측의 극한 대립은 여러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공들여 쌓아 올린 K팝의 위상을 추락시켰다. 외신들은 이 사태를 “수익성 높은 K팝 산업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으로 조명했다. 사태의 장기화와 하이브의 실적 악화 가능성을 염려했다. 과거 사건들까지 소환됐다. 지난해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인수로 경영진을 둘러싼 내부 싸움이 촉발된 일, 틱톡 히트곡 ‘큐피드’의 걸그룹 피프티피프티가 소속사인 어트랙트와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활동이 흐지부지된 점을 거론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탄탄해 보였던 K팝의 취약한 기반, 화려한 외양에 가려졌던 그늘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가야 할 K팝이 집안싸움으로 흔들리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 성공적인지도 의문이다. 방 의장은 지난해 K팝 위기론을 말하며 “BTS 같은 그룹이 계속 나오는 시스템”으로 멀티 레이블을 소개했다. 자회사인 여러 레이블이 독자 경영을 하되 성과를 공유하고 건강한 경쟁을 해나가자는 취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협력보다는 성과 경쟁이 치열했다. 아일릿이 뉴진스를 베꼈다는 주장이 외부가 아닌 하이브 레이블에서 나왔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해외 대형 음반사 대다수가 멀티 레이블 체제지만 대부분 장르가 겹치지 않는다. 그런데 하이브 산하 레이블은 K팝이라는 같은 장르라 차별성을 꾀하기 쉽지 않다.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담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한 바구니에 담았던 셈이다.

‘개저씨’ 같은 말이 오가는 어른들 싸움에 아이들이 받을 상처도 걱정스럽다. 2004~2008년생인 뉴진스의 이미지 훼손은 이미 시작됐다. 민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멤버들의 부모와도 얘기가 됐다며 아티스트를 갈등에 직접 끌어들인 것은 안 좋았다. 경영권을 둘러싼 양측의 다툼이 긴 소송전으로 이어지면 이들이 제대로 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소속사와 매니저의 갈등으로 결국 해체되다시피 한 피프티피프티 사태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데뷔하자마자 뉴진스 아류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아일릿은 또 어떠한가.

아티스트의 컴백과 데뷔를 기다려온 팬들 역시 피해자다.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는 현 상황을 보며 어린 팬들은 자신들이 무한한 애정을 보냈던 아이돌이 결국 자본주의 경쟁의 산물이었다는 냉혹한 현실을 체감했을지 모른다. 실망한 팬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K팝은 아티스트의 매력을 먹고산다. ‘방탄 아버지’와 ‘뉴진스 엄마’의 분쟁이 자칫 K팝 전체의 매력을 깎아먹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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