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영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하루 47만명이 달렸다… 다시 중국 휩쓰는 마라톤 광풍

송세영 2024. 5. 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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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난 지난 14일 베이징하프마라톤 경기 장면. 중국 허제(오른쪽 네 번째) 선수가 앞서 달리던 아프리카 선수들의 노골적인 양보 속에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대회 조직위원회는 조사 결과 부정행위가 확인됐다며 허제와 공동 2위 3명의 기록·메달·상금 취소와 주최사 자격 정지를 결정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1일 中 전역 53개 대회 열려
지자체 홍보·관광수입 증대 효과
과도한 상업화 부작용 우려 커져
승부 조작·대리 출전 등 비리도

중국에서 지난 21일은 ‘슈퍼 마라톤 데이’였다. 이날 중국 전역에서 최소 53개 마라톤 대회가 열렸는데 참가한 사람만 47만명이었다. 하루 출전자 수에서 역대 최고이자 세계 최고 기록이다. 최근 베이징하프마라톤 대회에서 벌어진 승부조작 논란도 중국의 거센 마라톤 붐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현지 언론이 ‘광기’라고 부를 정도로 중국의 마라톤 열기는 뜨겁다. 지방정부들도 앞다퉈 뛰어들었고 관련 업계의 마케팅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덕분에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스포츠산업이 성장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지만, 지나친 상업화에 따른 부작용과 부실 운영, 부정 참가 등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중국에서 일반인을 중심으로 마라톤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부터다. 중국육상협회가 최근 펴낸 ‘2023 도로달리기대회 청서’에 따르면 800명 이상 참가한 중국의 마라톤 대회는 2014년 51개에서 2019년 1828개로 급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442개, 2021년 348개, 2022년 58개로 급감했던 대회는 지난해 699개로 다시 늘었다. 대회 참가자도 지난해 약 605만명으로 2019년(712만명)의 85% 가까이 회복됐다.

완주자도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풀코스 완주자 수는 전년 대비 14만2700명 증가한 64만1700명, 하프코스는 50만7500명 늘어난 185만9000명을 기록했다. 중국에서 최소 250만명이 하프코스 또는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셈이다.

15년간 난공불락이었던 마라톤 풀코스 중국 최고 기록도 1년 새 3차례 경신됐다. 허제가 지난해 3월 장쑤성 우시마라톤에서 2시간7분30초로 신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 12월 왕샤오후이가 일본 후쿠오카 국제남자마라톤에서 2시간7분09초로 이를 경신했다. 허제는 올해 3월 우시마라톤에서 2시간6분57초로 결승선에 들어와 중국 선수로는 처음 2시간6분대에 진입했다.

마라톤의 인기 요인을 찾기 위해 중국 관영 CCTV는 대회 참가자들을 여럿 인터뷰해 보도했다. ‘건강에 좋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답변 외에 달리기가 동경의 대상인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거나 전국 각지의 대회를 찾아다니는 게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방정부들은 마라톤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관광 유발 효과에 주목한다. 후베이성 우한시는 지난 3월 우한마라톤을 통해 15억 위안(2845억원)이 넘는 사회경제적 효과를 얻었다. 장쑤성 난징시도 같은 달 푸커우마라톤 기간에 48만9000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3억6000만 위안(683억원)의 관광 소비를 끌어냈다.

같은 달 열린 우시마라톤의 경우 48개국에서 26만6000명이 참가 신청을 해 중국 마라톤 사상 최다 신청 기록을 세웠다. 이 중 3만3000명만 참가할 수 있었지만, 지역 소비는 2억8200만 위안(약 535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45.5% 증가했다. 우시시 체육국 부국장 위안웨이창은 “올해 우시마라톤 참가자의 72%가 외지에서 왔다. 이런 인파가 우리 도시의 인기를 높이고 소비를 촉진한다”며 마라톤의 경제효과를 높게 평가했다.

마라톤 대회가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사건·사고와 부작용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3만명이 참석한 칭다오해상마라톤에선 참가자들이 “환불”을 외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철판새우 등의 간식이 초반에 동난 데다 번호표 오류, 코스 안내 실수, 식수 부족 등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우한마라톤에선 9명의 선수가 대리출전 등이 적발돼 성적 취소와 평생 출전 금지를 당했다.

중국육상협회는 최근 수준 이하의 대회를 막기 위해 대회 운영 표준 등을 제시하고 종합적 평가지표 체계를 발표했다. 미흡한 대회는 퇴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스포츠용품 업계의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해 조사 결과 마라톤 주자의 30% 이상이 보호용품을 구매하는 데 2000위안(38만원) 이상을 썼다. 영국의 회계·컨설팅업체 PWC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스포츠산업 조사 중국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스포츠시장은 보수적으로도 연간 5.2%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마라톤 열기에 힘입어 2010년 6개였던 베이징마라톤 후원사는 올해 22개로 늘었다. 상하이마라톤, 우한마라톤, 샤먼마라톤도 스폰서가 20개 이상이다. 마라톤 후원계의 큰손은 스포츠용품 업체 터부다. 2014년 10여개 대회를 후원했던 터부는 지난해에 샤먼마라톤 등 24개 대회를 후원했다. 터부의 주력 상품은 러닝화로 중국 마라톤 대회 참가자가 가장 많이 신는 것으로 조사됐다.

터부는 베이징하프마라톤에도 후원사로 참여했지만, 승부조작 논란 이후 이틀 연속 주가가 급락해 시가총액이 10억 홍콩달러(1700억원) 이상 증발했다. 터부는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은 상업적 의도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현지 매체 남경재경은 “스폰서가 대회를 통해 브랜드를 홍보하더라도 공정 경쟁의 경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면서 “오랜 역사를 지닌 마라톤의 문화와 정신이 상업적 이익에 침식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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